헤어질 결심
- 프레임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 은유적인 장면들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보다보면 좋은 영화
- 영화 표값에 대한 생각
헤어질 결심은 참 할 말이 많은 영화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영화인들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이 오지 않는 목요일 밤에 차를 몰고 영화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밤에는 영화를 잘 보지 않았었는데, 헤어질 결심은 내가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니 잠시 짬이라도 났던 시간의 밤이라도 달려가서 빨리 보고 싶었다.
미장센은 당연히 최고였고, 앵글 또한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만드시는 감독님이니 말할 것도 없다.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뭔가 디지털 액자에 있는 그림 작품을 보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만큼 미술과 인물의 배경에 신경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준다.
마지막에 파도 장면을 서래의 옆모습으로 CG에 담았다고 하니 역시는 역시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나는 영화가 어땠냐고 전여친에게(지금의 아내) 꼭 물어보곤 한다.
사실 예술영화를 보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눈치를 보며 물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전 여친님의 한 줄평은 "좀 옛날 영화 같아"였다.
영화평을 제대로 즐기려면 영화관 화장실을 들어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래서 스포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영화관 화장실을 잘 안 간다. 만약 가더라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들어 가던가, 혼자 미친 사람처럼 계속 뭔가 흥얼거리면서 화장실에 다녀온다.
영화광이라던가, 영화를 전공한 사람들이나, 영화의 예술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도 대화하는 걸 좋아 하지만, 일반 관객의 표현이 듣고 싶을 때는 전 여친의 한줄평이 최고다.
가끔은 개운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나는 헤어질 결심은 여러 번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박찬욱 감독님의 위트는 무표정하게 농담을 던지는 느낌이라서 다른 사람들은 이게 농담인지 잘 모를 때가 많은 것 같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님의 오마주라는 책에서 잘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본인은 축구에 열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한창 월드컵이 열리거나 하면 어디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거나 하신다고 했던 글이 생각난다. 온통 나라가 시끄러워지니까 말이다. 그 부분이 본인의 아내와 잘 맞아서 축구를 집에서 관람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밤에 거실에 잠시 나왔는데, 아내분께서 한국 축구를 보고 계신 게 아닌가.!
감독님은 큰 충격에 빠지셨고,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한다.
이런 식을 코미디를 좋아하시고, 점잖은 성격이시라 그런지 이번 헤어질 결심은 나는 조금 마음이 아팠다.
제발 영화 좀 봐달라고 애원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영화 관계자들은 지금 실험을 거듭하다. 결론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흥행 감독 하면 떠오르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 흥행 참패 했을 때 관계자들도 그럼 도대체 뭘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전히 코로나로 켜켜이 쌓아 두었던 작품들을 하나씩 낼 때마다 계속해서 참패하고 있다.
헤어질 결심은 그래서 상징성이 있다.
작품성,감독의 연출,배우, 소재 등등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이 참패를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까? 가 이제 어떡하지? 가 되었다.
얼마 전 최민식 님이 영화관 표값 좀 내려 달라고 했다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난 이렇게 생각해 본다.
영화 표값을 내린다고 헤어질 결심을 볼까?
난 아니라고 본다. 굳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한국영화는 아직도 영화관 장사가 잘 되던 조폭마누라 시절에 머물러 있다.
이쯤 만들면 사람들이 보겠지? 이 정도면 뭐 장사되겠지 하는 공식들이 사실 존재 한다.
배우들의 인지도나 연기력, 괜찮은 감독과 소재면 돈 벌기 참 좋은 게 한국 영화였다.
당시는 영화의 장르나 소재도 유행이 있던 때였다. 참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타임루프 영화가 흥행하면 갑자기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스포츠 영화가 뜨면 마구잡이로 스포츠 영화를 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OTT+코로나 시기가 나는 비단 한국 영화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의 영화 산업을 축소시킨 환장의 조합이라고 본다.
개인극장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때가 되었으며, 예술 영화는 영진위의 지원 축소로 그 시장이 설자리 마저 잃어 가고 있다. 결국에는 영화관의 독과점은 계속해서 우리나라 영화의 다양성을 잡아먹는 괴물이 된다.
극장은 당연히 장사를 해야 하니 돈이 되는 한 편의 영화를 9개관 10개관씩 틀어 놓게 된다.
가끔 아무도 보지 않을 시간에 독립 영화 한번 틀어 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이건 너무 오래됐다)
어떤 영화인들은 영화를 제대로 만들면 극장을 찾아온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관객은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무언가 찾아가서 보는 것조차 귀찮아한다.
OTT로 조만간 나올 테니까 말이다.
"이건 보면 돈은 아깝지 않아" 정도 하면 극장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도 영화는 데이트코스였고, 지금도 데이트코스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가 계속해서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영화는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
어릴 적 외국에 있는 테마 극장이 참 부러웠었다.
로맨스 극장, 레트로 극장, 호러 극장들 말이다.
다양성을 존중받지는 못할 망정 이제는 다양성은 돈이 되지 않으니 만들어질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스타일" 이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나는 최근 개봉한 파묘라고 생각한다.
집요하게 공부한 흔적이 있고, 관객이 작품을 볼 때 연출의 강박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이건 영화 시작 몇 장면만 보면 바로 느껴질 만큼 그 작품들은 진하고 진한 향이 밀려온다.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일본 축구가 지금 왜 잘 나가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무지막지하게 유소년 축구에 투자를 한 일본 축구를 보고 부러워만 하지 말자.
제2의 오징어게임, 기생충이 나오려면 지금 이 기형적인 구조에서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폭탄이 무엇인가? 하면서 극장에 영화를 던지는 실험은 멈추고, 영화를 만들 돈을 집요하게 영화를 배우고 싶어 하고, 강박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학도들에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난 아직은 한국영화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