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팔리면 생기는 일
몇 년째 지지부진하던 회사 주가가 갑자기 상한가를 쳤다.
증권가는 내부 직원들보다 소문이 빠르다더니 직원들이 웅성 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상한가로 거래정지가 된 오후 2시경이었다.
- 무슨 일이야? 우리 회사 무슨 호재라도 있어?
- 인수합병된다잖아요. 팀장님
- 그래?!
- 기왕이면 노란색이나 초록색이 샀으면 좋겠네요. (ㅋㅋ오/ ㄴㅇ버)
- 글쎄. 산다는 데가 많을까?
- 회사 주식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요?
- 스톡옵션으로 받고 제때 팔지 못해 반에반토막 난 주식이 아직도 마이너스 40%네요.
괜히 고가에 사지 말고 조심해요.
누구는 그 와중에 주식을 사서 얼마 벌었다더라.
뒤늦게 들어가 고점에 물렸다
노란색이 산다더라. (카**)
초록색은 관심 없다더라. (네**)
인수되면 우린 어떻게 되냐.
근데 왜 파는 거냐.
모이기만 하면 혹은 채팅창에서 웅성웅성 되기 시작했다.
회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새 주인을 만난다니 별별 소문들과 함께 직원들도 마음이 확 뜨는 게 보였다.
소문이 한바탕 돌고 난 후
이삼일이 지났을 때쯤 팀장이상 직급자 대상으로 타운홀이 소집되었다.
카더라 소문이나 기사로 알게 되는 것보다 직접 사실 확인을 해주고자 했던 의도 같았다.
사장님은 IR팀과 HR팀 리더들을 대동하고 타운홀에서 최근 사내에 파다하게 퍼진 인수 관련 별별 소문들에 대한 사실 확인과 함께 현장에서 다양한 질문을 받고 답변했다.
왜 우리 회사가 시장에 나오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절차로 진행하게 될지
어떤 회사들과 이야기가 오가는지 (정확한 회사명은 말하지 않았고, 몇 개 정도)
등 등에 대해 설명했다.
회사재정이 위협받는 상황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매물로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 요약하자면,
'우리 회사는 커머스가 기반이 되는 플랫폼 기업인데 최근 몇 년간 커머스 시장이 과도한 출혈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그 와중에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지만 시장 파이를 키우기 위해 엄청나게 투자하는 쿠팡 같은 회사들과 더 이상 경쟁이 힘든 상황이 된 지 오래됐다.
커머스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000 정도의 자금 투입이 필요한데 과감한 투자를 할 것인가의 검토 단계에서 자금력이 좋은 회사에 자사를 매물로 파는 옵션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라는 설명이었다.
당시 사장님은 2-3년째 사업 비전을 담은 새해 메일과 인사에서 '쿠팡이나 티몬 같은 소셜 커머스가 엄청난 적자를 안고 덩치 키우기를 하는데 이는 분명 한계가 있으며 언젠간 망할 것(정확하게 '망한다'는 아니었지만)'이라고 말해왔다. CEO가 회사의 미래 전략을 경쟁사 망하는 것에서 찾는 데 대해 그 당시 난 큰 실망을 했다. 남이 망한다고 준비되지 않은 우리에게 기회가 오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리 경쟁사라도 타사가 망하는데서 기회를 찾는다는 건 빈약한 전략부재를 입증하는 것일 뿐이었다.
또한 그 시점에 시장에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의 흥행도 이런 결정에 한몫한 것으로 보였다. 롯데, 신세계 등 대형 유통사들이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을 펼치는 모습은 분명 이러한 결정에 모티브를 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부 경영진이 아닌 외부 투자컨설팅업체의 제안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그러한 과정을 거쳐 회사가 매물로 나오게 된 것이 사실이며 회사 인수설명서를 작성하고 7개 정도의 회사가 그걸 받아갔다. 는 얘기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떤 회사가 인수협상자가 될지는 아직 모르며 가장 최우선으로 고용승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처음엔 이러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 회사와 그 속에 있는 자신에게
스스로 쇄신을 하지 못한다면 강제적으로라도 쇄신을 겪는 것이 낫다고 (살아남으려면)
변화하지 못하면 결국 인수와 같은 거칠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겪게 되는구나,
차라리 잘됐다고 위안 아닌 위안을 했다.
이런 일을 겪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직원들은 그냥 회사 주인만 바뀌는 거지
하는 일은 비슷하지 않나 별 상관없다고 얼핏 느낄 수도 있다. (게다가 고용도 승계된다잖아).
나 역시 내일이 아닐 때는 비슷했다.
결론적으로 다니는 회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주인을 찾는 과정은 개인에게도
불필요한, 엄청난 엄청나게 큰 피로감과 불안감을 준다.
설명회 이후에도 소문은 여전히 무성했고, 그 소문들은 네이버 종토방에 공유되었고, 주식도 출렁거렸다.
인수자로 거론되던 회사들은 점점 그 수가 줄기 시작했고
초록색과 노란색은 관심 없다는 확인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올라가던 주가는 다시 내려가고 매일매일 뉴스와 소문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탔다.
가장 최악은 인수 무산 시나리오.
기존의 이미지 실추에 인수까지 무산되면 타격이 클 것이 뻔했다.
그 와중에 초반부터 스멀스멀 나오던 인수자 후보 중, 가장 강력한 인수자의 실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최근 3년간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하며 유니콘으로 등극한 숙박 스타트업이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에게 2조 투자를 받아서 화제가 되었던 기업이었고
하니와 테크놀로지 등의 광고로 일반인들에게도 친근한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니콘이라고 해도 업력으로 보나 사업 포트폴리오로 보나
모두가 놀랠만한 인수자인 건 확실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 너희 회사가 야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야가 너희를 인수해?!
- 고등어가 고래를 먹는 거네
- 공공장소에서 꺼내보기 부끄러운 앱인데..
- 투자받았다더니 돈이 많은가 보네
- 대표가 엄청 스마트하고 대단한 사람이래
그 이후의 상황은 정말.. 기록하기가 힘들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멘탈이 약해져서 인지력도 떨어진 것 같다)
소문만 무성할 때 보다 되려 모든 것이 결정된 이후,
단계별로 지나쳐가는 상황들이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C레벨이 물갈이되고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오고
또 하루가 멀다 하고 퇴사 메일을 받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수도 없이 회사를 떠났다.
(자의와 타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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