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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Kim Dec 27. 2022

인수위로금? 회사가 인수되고 난 후..

위로금으로도 위로가 안되네요 

"한국경제티브이에서 그 당시에 만약에 저한테 팀장을 시켰어

그리고 한 7천만 원 줬어 

그럼 저는 안 나갔을 거예요. 

엄청 열심히 일했을 거예요. 

당시에 회사에서 저한테 팀장 달아주고 

페이는 한 300만 원 줄게 

그랬으면 정말 일 열심히 하고 안 나갔을 거예요.  

그 당시에 그 돈이면 정말 감사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나이에 제가 부장을 달았다?

그랬다면 더 더 못 나갔을 거예요.

왜냐면 부장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거거든요. 

연봉 인상이 12%, 10% 8% 6% 뭐 이렇게 정해진단 말이에요. 

그럼 몇 년이 지나면 내가 얼마 벌게 될지는 엑셀표로 딱 나온단 말이죠. 

그러니 비전이 안 보여.  

물론 회사에서 잘하는 인재에 대한 뭔가 다른 지원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근데 전 못 느꼈고, 그래서 제가 회사를 나갔고 그게 저의 첫 번째 행운이에요." 

(주언규 PD (前신사임당) 지식인사이드 채널 인터뷰 영상에서) 

 

어느 날 새벽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이 영상에 데려다주었다. 저 사람이 말하는 '만약에 그 당시에 팀장 달고 월급 한 300만 원 받으면서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부장 근처까지 가서 더 회사에서 못 나오게 된' 사람이 바로 나다. 


회사가 인수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이 회사를 왜 이렇게 오래 다녔을까'




회사가 인수되면 피인수기업의 직원들은 이유 없이 괜히 기가 죽는다. 

직원들이 뭔가 잘못해서 회사가 인수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업력이 적은 회사의 경우는 직원들이 회사 가치를 올려준 것이라 그 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수합병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마음이 뜨고 불안함은 기본으로 장착되며 개인에 따라 (짜증, 구토, 미열, 두통.. 이 아니라) 불안정함, 나태, 회의감, 자괴감 등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이 동반된다. 외부 자극 민감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적어도 내 주변에서 회사가 인수되어 흥분되고 설렌다는 사람은 없었다. 


내 경우는 우울감이 찾아왔다. 

인수 이후 당연한 수순으로 조직 구조 변화가 따라오는 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2008년 발간하여 14년 된 공연 전문지 미디어 폐업신고를 해야 했고, 업무 중 코스트 부서에 해당하는 콘텐츠마케팅은 접고 라이브커머스 100프로로 업무 전향을 했다. 업무야 한 회사에서 16년 차인 만큼 이것저것 해본 게 많아 사실 뭘 해도 업무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아닌데, 조직만 그대로지 인수회사의 시스템과 보고 라인, 일 하는 방식 등 갑자기 바뀌었고 스타트업에 갓 입사한 느낌이었다. 분명 한국말을 쓰는데 언어가 달랐다. 하다 못해 판매매수, 주문건수 등 늘 쓰는 단어들조차도 서로 이해하는 의미가 달랐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맞춰야 할 것이, 정리해야 할 것이.. 정말 끔찍하게 많았다. 


인공지능 그림 AI Midjourney에서 미래도시, 마츠모토 타이요 스타일 키워드로 그린 그림 


법률적인 인수합병 절차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겪은 인수합병을 보면, 기업실사(물론 계약 전에 이미 선행되지만)를 통해 사업구조, 회계, 조직 등 매우 구체적인 실사를 진행한 이후, 불필요한 사업에 대한 정리 또는 흡수, 병합 등 조직 변화가 수반된다. 인수자는 피인수 기업의 사업, 서비스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각 사업리더들과 미팅을 갖는다. 그 과정은 자연스레 기존 임원들에 대한 인터뷰이기도 한 모양이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가 결정되고 동시에 새로운 경영진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임원들이 아니어도 자발적 퇴사도 이어졌다. 


일부부서는 인수회사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그들도 힘들었던 모양인지 거기서도 퇴사자가 수두룩 나왔다. 모두가 각기 다른 이유로 힘들어 보였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동료들이 매일매일 떠날 때마다 수시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래 다녔지? 공무원도 아닌데 무슨 철 밥그릇이라고'

창업주인 회장과 대표이사가 회사를 팔고 나가는데 

꼴랑 월급은 이거 받고, 

열심히 일했는데 

인수돼서 괴로운 이 과정들을 겪어야 하는 건지 

내가 이 회사에서 지낸 시간들을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서 즐거워서 재미있게 일했는데 그렇게 일한 16년이 왜! 

한순간에 제 때 이직도 못해서 커리어도 박살 나고 연봉도 제자리인 못난이 같은 시간이 돼버린 건지.  


그러다 어느 순간 회사에서 가슴이 콩콩콩캉 띄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맨날 보는 동료, 팀원들과 눈을 못 마주치게 되었다. 어느 아침 출근길은 가슴이 너무 띄고 심장 부위가 아파서 병원을 찾아야 했다. 과거에 농담처럼 '아 놔 힘들어서 그만둘까 봐' 할 때마다 남편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는데(진짜 그만둘까 봐) 이번에는 저러다 병 생기겠다 싶었는지 하루는 회사에 데려다주면서 '들어가서 사표 쓰고 와'라고 했다. (또, 그런 말이 위로가 된다)  



팀원들과 면담하는 경우가 간혹 생기면 

본인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적당한 시기,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이직하는 것도 커리어와 연봉 인상에도 좋다는 말도 한다. 

- 팀장님 저 나가라는 거예요? 

- 아아니~~ 


오다가다 타 부서 직원들을 만나 인사하면 선 한숨부터 내쉬고 비슷한 답들을 한다. 

인공지능 미드저니로 그린 그림

- 요즘 어때요? 

- 별로예요. 

- 잘 지내세요? 

- 알면서 뭘 물으세요. 

-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요? 

- 에휴.. 


인수위로금 얘기로도 한참 웅성됐었다.  


- 위로금이나 많이 주면 좋겠네요. 

- 음, 위로금이 뭐예요?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 나) 

- 왜 그거 있잖아요. 인수되면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위로금 같은 걸 준대요. 기사 한번 찾아봐요. 

- 우리도 과거에 IMK 인수할 때 삼성이 위로금을 연봉만큼 줬다고 하기도 하고.. 








인수위로금을 받은 후에 나와 동료들은 알게 되었다. 

위로금이 정말 위로금이구나. 위로가 필요한 일이었구나.  

(그리고 이 정도 돈으로는 위로가 안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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