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어서 좋았던 점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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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제가 20대에 망해도 젊을 때 망하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플랜비라는 홍보에이진시를 창업해서 나름 탄탄한 IT솔루션 업체와 스타트업 회사 두 개를 클라이언트로 영입해서 연간 계약을 하고 매월 월 fee를 받아 고정적인 수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이때 창업 3년 차인 29세에 연간 벌어들인 수익이 지금 회사 15년 차에 받는 연봉과 비슷합니다. 놀랍죠?
그러니까 처음 입사할 때 이미 원래 벌던 돈의 3천만 원 이상을 깎고 들어갔습니다. 여러분들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가실 거예요. 회사에서는 연봉 기준으로 매년 정해진 비율만큼 올라가기 때문에 월급은 오래 일해도 (크게) 올리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조직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년 인사 평가에 따라 가장 높은 등급 S를 받아도 7%, 여기에 승진이나 직급을 달게 되면 승진인상이 3% 정도 더 붙어서 10~12% 가 최고 상승률입니다. 굉장히 성과가 좋아서 임원이나 대표가 직접 별도의 조정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하지만 형평성 때문에 이런 일도 쉬이 일어나기 힘들죠.
그래서 부끄럽지만 네, 그렇습니다.
의문이 드실 겁니다. 아니, 왜 애초에 연봉을 3천만 원이나 깎으면서 회사에 들어갔나요?
굳이 구질구질한 변명을 해보자면 입사 연봉 자체는 그 당시 제 나이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사팀에서 '네가 제시한 연봉이 (당시) 너의 팀장보다 높기 때문에 다소 조정이 불가피하다'라고 했으니까요. 당시 팀장보다 높은 월급이었죠. 월급 상승폭은 평가에 따라 비율이 정해져 있고 결국 오래 일할 수록 같은 연차 동일 직군 평균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간에 입사한 연차가 적은 경력직이 더 높은 연봉을 받게 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연봉은 알면 마음만 상하니까 타인의 연봉은 궁금해하지 않는 게 상책 입니만 경주마처럼 트랙을 달리다 잠시 정신을 차려보면 현타가 오기도 하는 법이죠.
(잊지 마세요. 우리는 더 많이 받는 만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면 혼자 일할 때와는 다른 장점도 분명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창업할 때 보다 회사 연봉이 훨씬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일원이 되니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는 안정감입니다. 아마도 제가 혼자 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안정감이 더 큰 베네핏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릅니다. 회사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 들어간 소속감이 알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비교하긴 뭐 하지만 작은 회사도 큰 회사와 마찬가지로 기초가 되는 시스템은 동일하게 필요합니다.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한 영업을 해야 합니다. 영업을 하여 클라이언트를 영입하면 기획, 서비스 등 실무를 하고 보고 자료를 만들며 정산을 하고 세무 신고를 해야 합니다. 회사를 창업해서 운영하는 것은 그 크기가 아무리 작다 해도 나름 사장(?)이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고민을 합니다. 회사 안에 들어가 조직의 일원이 되니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고 혼자서 결정할 일보다는 그룹 안에서 고민하고 리더나 동료와 함께 코웍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전에 혼자 일할 때보다 훨씬 축소된 범위의 일을 (물론 성과를 고민해야 하지만) 하니 마음이 좀 더 편했습니다.
두 번째는 매월 규칙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입니다. 월급이 줄었음에도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영업하는 과정을 겪지 않고 담당하는 업무만 하면 되니 (이 당연한 사실이) 홀가분하고 편했습니다. 창업을 했을 때는 항상 다음 분기, 어떤 때는 당장 다음 달 수입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조직에 들어가 따박 따박 매월 들어오는 월급은 회사원들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겠지요. 시간이 지나 월급에 익숙해지면 회사가 아닌 방법으로 그만큼의 소득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회사원 7-8년 차 까지는 그래도 창업했던 경험이 좋은 에너지원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습니다. 직장생활에서 고비가 오더라도 '그래, 난 창업을 해봤으니까, 회사 아니라도 다시 창업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회사원 생활을 나름 오래 하고 버틸 수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약발이 떨어지고 노화되는 것을 30대에는 몰랐습니다. 창업할 수 있는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게 관리해야 합니다. 업무 연장선상에서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고, 또는 직무와 다른 취미생활이나 자기 계발을 하면서 꾸준하게 뇌를 자극해야 합니다. 동시에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건강한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저는 어느 순간 밸런스가 깨지면서 한꺼번에 번아웃이 왔습니다. ㅠㅠ
세 번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입니다. 제 경우는 외롭게 일하다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반대로 회사에서의 사람 문제는 (동료든 후배든, 상사든) 퇴사의 원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를 맺기 때문에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스트레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안에서 팀워크로 일하면서 (한 사람이 내는 퍼포먼스보다) 더 큰 프로젝트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팀워크도 생기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은 친밀도가 높은 친구로 남기도 합니다.
(장점 찾기 참 어렵네요. 후후 퇴사 주저리는 다음 회에도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