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 시간이었다. 나의 큰 아이 만삭일 즈음 처음으로 이상함을 느꼈고, 이제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가 되었으니. 아이를 낳고 우리 서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괜찮은 것 같았는데 조금 지나 또 이상함을 느꼈다. 치매는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었다.
보통의 치매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몰라 본인은 괜찮고 주변인들만 고통을 받는다던데. 엄마는 인지능력만 떨어지고, 기억력과 사고가 모두 가능한 채로 굉장히 오랜 시간을 지냈다. 환갑 즈음 찾아온 무서운 병을 받아들이느라 엄마는 혼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엄마는 엄마대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하루하루 무너지는 마음으로 살았고, 아버지는 퇴직하고 엄마와 즐겁게 여행을 다닐 계획을 세웠었는데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단 한번도 좋아지지 않는 병
치매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너무 젊은 엄마는 치매지원센터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고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데 누군가에게 병을 고백하기도 어려웠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그 오랜 세월을 무엇으로 말할까. 마음이 무너지고 무너졌다. 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데 내 안의 모든 것이 바닥날 때까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엄마의 모습은 정말 바라보기 어려웠다. 함께 있는 아버지는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두고 싶은 아버지는 결국 엄마의 임종을 집에서 함께 하셨다. 엄마 살아계실 땐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던 아버지가 엄마의 옷을 보면서 울고 우리에게 잘 커줘서 고맙다며 우신다.
모든 장례 절차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가까운 추모공원에 모시고 싶었던 내 마음과 달리 아버지는 결국 시골 선산에 엄마를 모셨는데, 가보니 정말 좋았다. 특별히 유골함이 올라오는 그 순간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따스하게 비췄다. 예배를 보고 엄마를 모시는 모든 과정에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정말 크고 붉은 해가 지는 모습을 봤다. 내 평생 처음 보는 정말 아름답고 큰 붉은 해였다.
우리는 서로를 정말 사랑했다. 때로 사랑의 방법이 달라서 부딪히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엄마는 싸움을 싫어하는 수선화같고 소녀같은 아름다운 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엄마를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해주신 엄마. 이건 너의 일이 아니라며 넌 아이들 돌보라고 했던 우리 엄마. 눈만 마주치면 '아이 예쁘다' 해주셨던 우리 엄마. 마지막 입원하러 들어갈 때 “엄마 잘 다녀와.” 했더니 “어~”하며 들어가셨다. 대답해주신지 오래되었을 땐데 그것이 엄마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나의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도 하고, 둘째 생일파티도 하고, 토요일 가족들 모여 식사까지 다 하고 일요일 새벽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엄마를 못 본 것이 내 마음에 한으로 남았지만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엄마를 마주하지 못한 내 마음까지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
우리 곁에 없어 마음이 아프지만 천국에서 환하게 웃으며 육신의 고통이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평안하고 즐겁게 계실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부족함을 절절히 느낀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지만 그 또한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심을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버지 친구들은 온전히 아버지를 위해, 엄마 친구들은 온전히 엄마를 위한 마음을 전했다. 내 친구들은 당연히 나를 위해준다. 연락을 주자마자 달려와주고, 밤늦게까지 대화하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매일 카톡을 보내주고 커피를 사다주는 친구들. 장례를 마치고 연락하니 그 날들 온 마음으로 함께 내 연락을 기다려준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나도 내 친구들에게 그렇게 해줘야지.
너무 빨리 괜찮으려 하지 않고 너무 슬프려고 하지도 말고 웃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친구도 만나고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노력할 거다. 건강을 위해서도 애쓰고 기쁘게 웃으며 생을 보내려고 한다. 그게 하늘에서 지켜보는 엄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