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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Apr 07. 2024

64. 중증 치매여도 아들 걱정뿐인 우리 엄마

괜찮아, 모두 잘 될꺼야. 걱정하기 말거라.

거실에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대각선으로 길게 들어온 햇살이 내 눈을 주변을 자극했다. 딱 정당히 일어나기 좋은 시간이라는 신호이다. 엄마가 있는 동생집에 가면 나는 거실에서 잠을 잔다. 작은 매트리스를 깔고 머리를 베란다 쪽으로 향하게 한 후 누우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든다. 


대부분 금요일 퇴근 후 서울로 올라가기에 도착하면 11시쯤 된다. 언제나처럼 동생은 야식을 준비해 두고 나는 동생과 새벽 2시 정도까지 이런저런 엄마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늦게 잠이 든다. 내 집에서 할 수 없는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더 그리운 그런 금요일을 넘긴다. 최근에 올라갔을 때도 마찬기였다. 도착해서 현관 바로 옆에 엄마 방을 살짝 들어가면 주무시거나, 때로는 멀뚱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엄마에게 밝은 목소리로 "엄마 큰 아들이 왔찌."라고 어설픈 애교를 부린다. 


동생은 그 모습을 그냥 말없이 넘기고 야식 먹을 준비를 한다. 


나는 동생에게 최근 꿈자리가 너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매번 실신하듯 깊은 잠에 빠지는 복 받은 잠꾼이라서 꿈도 거의 꾸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고, 기억도 생생히 나는 것이 여건 찜찜했다. 만약 꿈이 기분 좋은 추억이야기였다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겠지만 불행히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었다. 


꿈에서 나는 엄마를 잃어버렸다. 미친 듯이 찾고 또 찾았지만 엄마를 결국 찾지 못했다. 엄마를 잃어버린 그 배경이 되는 동네는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언덕이 많고 빨간 벽돌집들이 촘촘히 경쟁하듯 붙어있는 배경이었다. 그 배경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살아왔던 서울의 빌라촌 골목이었다. 꿈에서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엄마를 찾았던 거 같다. 


소리치고, 뛰고, 걷고 물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결국 엄마를 찾지 못했다. 처음 이 꿈을 접하고 기분이 며칠 동안 좋지 않았다. 그냥 요즘 민감하니까 이런 꿈자리가 사나운가 보다 넘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불편한 것은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것이었다. 반복된 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엄마를 읽어 벼렸다는 것이다. 


몇 번 반복이 되면서 알아보기 싫었지만 꿈해몽이 나온 인터넷 글들도 몇 개 찾아서 보았다.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좀 봐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대략 참조하지 않아도 좋은 일에 대한 길몽은 아닐 거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대부분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은 이러했다.


소중한 것을 인생에서 잃어버리는 꿈, 상실감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 돈이나 재물 등이 빠져나가는 꿈 등등 해석마다 조금 차이는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아끼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숙면도 못하고 정신도 못 차리는 상태로 지내면서 무엇 때문일까? 곰곰해 생각했다. 왜냐면 엄마의 건강 상태나 기타 다른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차분히 시간을 두고 기억하니 참 묘하게 최근 내가 잃어가는 것 또는 잃어버린 것이 꽤 많았다. 첫째는 21년 다닌 군대에 전역지원서를 낸 것이다. 곧 교육입소로 이제 출근도 며칠 안 남은 상태에서 나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했다. 강제로 퇴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랜 시간 습관보다 더 강하게 잔존한 그곳을 떠나는 것은 큰 변곡점이자 부담이었다. 분명 이것도 내 삶에서 무엇인가 잃어버린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충분했다. 21년 동안 열정 없이 직장에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미친 듯이 최선을 다했던 시기도 많았다. 인정받아서 이름을 알렸던 적도 있었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에 영향력도 미치고 있었다. 이런 모든 것이 전역이라는 두 글자에 사라지는 것이 이내 마음 불편했다. 그래서 꿈에 영향을 주었구나 싶기도 했다. 


두 번째는 돈이었다. 갑자기 돈이라니 조금 어색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먹고살기 위해서 20대 후반부터 목돈으로 투자한 아파트 투자는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갔다. 다행인 것은 거기서 번 돈으로 나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공부도 했고, 집안에 큰 사고도 몇 번 막아냈고, 지금 아픈 어머니 병원비도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장밋빛만 있는 것은 아닌 것이 공평한 인생일까? 잠시 무리한 투자를 위한 결심을 했고 그에 대한 대가를 요즘 치르고 있다. 그중에서 조금 일찍 알았다면 내지 않을 수 있었던 세금을 폭탄 맞아서 최근 마음이 여간 불편했다. 내야 하는 세금을 망설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나라가 존재해서 내가 투자를 하기에 어쩌면 기쁜 마음으로 냈다. 그런데 무지에서 온 실수로 가산세를 많이 내게 되는 이 상황은 내게 조금은 억울하면서 스스스 자책하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엄마를 진짜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에 반복되는 이 꿈에 엄마의 건강이 악화되는 암시일까 봐 두려웠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이 나빠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는 건강상태를 가진 엄마이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치매로 내가 알던 엄마의 영혼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건강하실 때 엄마의 말투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참으로 그리웠다. 짧은 잔상만 그냥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말이 없어져서 대화를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웃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위안하곤 했다.


동생은 내 이야기를 그냥 가만히 들어줬다. 언제나처럼 새 출발을 하는 것을 응원해 줬고, 돈에 대한 부분도 담담하게 괜찮다고 그동안 벌었으니 이런 일로 배우면 된다고 다 큰 형을 격려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속사정을 서울까지 올라와서 다 털어놓고 잠을 잤다.


동생집은 오래된 구축이지만 참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아늑한 곳이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아니면 엄마가 있어서 그런지 나는 이곳에서 참 잘 쉬다가 간다. 그래서 아침햇살이 반가운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욕심부린다면 지금 엄마가 자는 방에도 햇빛이 들어왔으면 좋을 텐데 구축이라 2 베이라서 항상 어둠이 함께 한다. 그게 조금은 아쉽다. 그렇게 나는 눈을 떴고 이 편안한 곳에서도 꿈은 이어졌다. 하지만 엄마를 잃어버리는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동생 집에서 꾼 꿈은 포근했다. 꿈에서 엄마는 춥게 자고 있는 내게 계속 이불을 덮어주셨다. 내가 더워서 이불킥을 하면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나는 칭얼거리며 계속 잠을 자는 그런 꿈이었다. 나는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의 기억을 가지고 숙취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주말의 한적함을 23평 작은 아파트를 누비며 즐기고 있었다.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가 거실 소파로 와서 누웠다. 나는 앉아서 엄마랑 눈을 마추한 채 한 동안 말없이 엄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얇은 이불을 가져다 소파에 누운 엄마에게 덮어 드렸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걱정되었나 보다. 엄마가 건강하셨어도 표현 못해도 많이 내 걱정을 하셨을 것이다. 아들을 믿기에 언제나 내가 하겠다고 하는 일에 단 한 번도 No를 말한 적 없는 엄마지만 그래도 마음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내게 위로와 응원을 주려고 꿈에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조금 추워져도 괜찮다고 엄마는 언제나 너를 믿는다고 그러니까 마음껏 이불을 걷어차라고 말이다. 

  

한참이 지나고 동생이 부시한 꼴로 거실에 등장했다. 나는 어린 딸처럼 동생에게 쪼르륵 어젯밤 꿈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머리를 만지며 내게 한 마디 했다. 


"형 아마도 그게 꿈이 아닐지도 몰라. 엄마가 밤에 우리가 잠들면 몰래 스파이처럼 활동을 하거든.. 진짜로 엄마가 이불을 덮어줬을지도 몰라.."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났다. 근데 꿈이던, 현실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이 있었다는 게 그리고 우리 가족이 아직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게 미치도록 감사했다. 하루하루 이렇게 넘어가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무겁지만 행복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

https://brunch.co.kr/brunchbook/mymathe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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