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을 잡는 손은 떨려왔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그냥 두었다. 무슨 이런 개떡 같은 인생이 다 있냐고 가슴속으로 고함을 쳐보았다. 1년 전 요양원에서 더 이상 약해질 것도 없는 엄마를 동생집으로 모시고 왔을 때 나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 짐을 고스란히 동생에게 주는 것이 마음 아팠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는 치매가 미웠다. 엄마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치매로 변해버린 엄마를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냥 그 모습도 엄마라고 괜찮다고 도닥이고 이해하려 했다. 그게 유일하게 하루하루를 잘 넘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동생집과 새로운 주간보호센터에 금방 적응하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의 정성으로 몸에 살이 조금 오르고 차츰 새로 이사한 집에도 익숙해지셨다. 점점 밝아지기도 했고 때로는 음악소리에 혼자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셨다. 무엇보다 삼키는 것이 안되어 치매약을 줄이면서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엄마가 노출되면서 많이 웃기도 했다. 과자를 달라고 할 때도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살인 미소로 당당히 요구했다.
'모든 인지기능이 망가져도 이토록 식욕에 대한 본능이 남는구나' 우리는 참으로 원초적인 동물이 맞구나 싶었다. 엄마에게 유일한 행복은 마가렛트 과자였다. 자식도 못 알아보고, 말도 못 하고, 대소변도 혼자 처리하지 못하는 모든 문명과 기억에서 완벽한 탈출을 했지만 생존을 위한 먹이질은 계속되었다.
나는 엄마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토록 바둥바둥 거리며 사는 우리 인생이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이 아닐까 싶었다. 결국 남는 것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하나이고, 그 작은 과자 하나에 모든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데 이렇게 더 많은 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순간 전부인 듯했다. 욕심으로 가득 찬 내게 엄마는 마지막으로 조금은 가볍게 살라고 조언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엄마와 이런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가지고 싶었다.
어석하게도 하늘은 허락하지 않았다. 동생 말대로 엄마랑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최고였다고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오고야 말았다.
중환자실로 향하던 나는 차를 돌려 동생집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8시간 넘게 기다려서 엄마는 중환자실로 가셨다. 그 응급실은 처참했다고 동생은 전했다. 연휴 전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나는 누군가와 함께였고, 의료진은 부족했다. 어떠한 조치를 기다렸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나 오지 않자 응급실 이곳저곳에서 고함과 항의 그리고 울부짖음이 끝없이 반복되었다고 했다. 나름 차분하게 대처했을 동생이지만 어떤 심정이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의식이 거의 없는 엄마의 침대는 CT실로 들어갔고, 결과는 뇌출혈이었다.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뇌의 중앙 부분에 피가 있었다. 출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였지만 경과를 지켜봐야 하기에 중환자실로 가게 되었다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면회가 제한되어 있어서 이곳으로 와도 소용없다고 집에서 보자고 했다.
중환자실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가슴에 구멍이 난 듯 찬바람을 느꼈다. 살면서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빠와 엄마를 이미 경험했었다. 그래서 그 단어가 듣기 싫었다. 머릿속에서 출혈이 있는 상태로 홀로 차가운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그 인생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했다.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실까?
지금 당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인지하고 있을까?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데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을까?
엄마는 강한 여자다. 자기 자신보다 아빠와 우리를 더 사랑하며 한평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언제나 과묵하면서 표현에 서툴렀다. 11년 전 처음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그러했다. 악성이라서 위의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엄마는 그 두려움을 감추고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엄마가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그렇게 고통 속에서 많이 우셨다고 했다. 그 말을 한 참 뒤에 동생이 내게 말해줬다. 어떤 고통이 엄마를 지배했을지 감히 상상이 안되었다. 동생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암 수술을 하자고 강하게 주장한 자신을 원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는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아빠를 보내고 그 고독함과 외로움을 느낄 아주 잠깐의 시간도 허락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몸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 동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멀리 살고 바쁘다는 이유로 관심을 더 많이 못 가진 것이 미치도록 후회스럽다. 아무리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배우자와 결혼했다고 하더라고 핑계 뒤에 숨지 말았어야 했다.
그 당시 엄마는 참으로 무서웠을 텐데....
그 무서움을 홀로 감당하였기에 치매가 더 빨리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현관문을 열자 동생은 평소처럼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얼굴과 행동에서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오늘 아침이 동생에게는 지옥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우리 둘은 산꼭대기에 있는 아파트를 슬리퍼를 신고 터벅터벅 내려와 화려한 까치산역의 식당가로 접어들었다. 평소 가던 골목이 아닌 조금은 조용한 구석으로 발걸음에 이끌려 걷다가 코너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정육식당이 보였다. 우리 형제는 서로의 마주하고 말없이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은 4개가 전부였고 식당은 그냥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주인 부부는 적어도 일흔 살은 넘어 보이셨다. 허리는 구부정했고 손과 얼굴에는 이 식당에서 보낸 그 오랜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메뉴로 살겹살을 시키고 소주 한 잔을 따르고 말없이 마셨다. 사장님은 집에서 만든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주시고 우리 옆 자리에 앉아서 가게 구석에 있는 TV를 보셨다.
동생은 오늘 있던 일을 차분히 내게 말해주었다. 아침에 엄마를 발견한 순간부터 119에 전화를 해서 엄마와 함께 대학병원으로 이동하는 과정 그리고 응급실에서 어떠한 조치도 받지 못하고 기다린 시간과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엄마를 바라봤던 그 눈길까지.
어느덧 눈가가 촉촉하게 변해있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냥 눈물을 흘렸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도 감히 이 상황을 위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익어가는 고기 앞에서 조용히 울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이상했을까? 남녀가 앉아 있었다면 무슨 이별이나 다툼으로 생각했을 터인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님은 조금씩 엉덩이를 우리 쪽을 이동시켜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주인 할머니에게 짧지만 지금의 상황을 그냥 이야기했다. 사장님은 무슨 말로 우리를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아이고.. 아이고 만 말씀하셨다.
평소라면 타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 성격인데 우리 형제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너무 무서워서 무너지는 스스로를 부여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그 마음. 살다 보니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싶었다.
다시 예전처럼 엄마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며 냉장고 시위를 하는 모습은 영영 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바로 후회할 것을 참으로 미련하게 나는 아픈 엄마가 신경전을 벌이고, 과자를 가지고 엄마를 유인해서 목욕시키고 과자를 주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것들이 모두 미안했다.
나는 동생과 엄마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서 곱게 다시 간직했다. 술잔이 오가면서 우리는 말하지 않았지만 다시 기운을 내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아직은 살아 계시니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사랑하자고 말이다.
잔인한 인생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라도 엄마에게 따뜻한 빛이 되자고 다짐했다. 치매로 안 그래도 이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잃어가는 엄마에게 뇌출혈로 신체의 반을 빼앗아가는 그 이유를 누군가에 묻고 따지고 싶은 욕망을 억누고 마비되지 않은 반쪽과 마비되었지만 엄마와 같이 살아가는 남은 반쪽까지도 온전히 엄마로 받아들이자고 말이다.
시간은 부여잡고 애원해도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소중함을 지나고 나서 겨우 깨닫는 미련한 존재라서.
연약한 눈물을 흘리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지나고 나면
이 순간이 그리워 질 것을 알기에 감사해 보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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