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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an 09. 2021

한국어 학원 첫 면접 기회와 첫 시강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의 마음은 부풀었다. 전혀 오지 않을 것 같은 기회가 나에게 왔다는 게 기뻤다. 학원 경험이 전무한 나의 이력서에 잡다한 사회 경험을 어떻게든 어필하고, 내가 한국어 강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와 하고 있는 노력들을 한 달 내내 자기소개서에 담아낸 결과인가 싶었다. 



학원에서는 내가 바로 일할 수 있는지, 맡을 수 있는 수업의 시간대는 자유로운지, 그리고 시급을 말해주며 괜찮냐고 물었다. 시급을 듣고 당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신입이고 아직 자격증 취득을 하지 않은 상태임을 고려해서 무조건 괜찮다고 했다. 거기서 안 괜찮다고 해봤자... 면접 기회가 날아갈 뿐이라는 걸 우린 모두 아니까. 


생각 없이 바로 다음 날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고는 시강 생각해서 며칠 뒤로 잡을 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발등에 불은 떨어졌다. 


실습수업에서 준비했던 문법은 ‘-기 때문에’였고 새로 교안을 짤 시간은 부족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시강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10분 정도의 시간 안에 얼마나 보여줘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완성했던 교안의 내용은 꽤 많았고 ‘도입-제시-연습-활용-마무리’를 조금씩 보여줘야 할지 도입 제시만 하면 되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학원 담당자는 내가 신입인 것을 고려하여 태도나 수업할 모습을 보는 것이니 부담을 갖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한국어 강사에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면접 날 단정한 옷을 입고 (회사 면접처럼 정장 느낌을 입진 않았다.) 교안 파일과 ppt 자료가 담긴 usb를 들고 학원으로 향했다. 


면접은 작은 교실에서 3명의 면접관이 학생처럼 앉아 시작했는데 몇 가지 질문을 받고 바로 시강을 보자고 했다. 긴장과 불안은 많아도 낯을 안 가리고 텐션을 올릴 줄 아는 성격 덕에 바로 면접관들의 외국 이름을 부르며 도입을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 때문에’는 서강대에서는 중급, 경희대에서는 초급(후반)으로 다루는 문법이다. 유사 문법은 ‘-아/어서’, ‘-(으)니까’와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보니 형태 제시부터 마음이 급해졌고 내가 생각해도 말이 굉장히 빨랐다. 긴장해서 원래도 비음이 섞인 목소리가 점점 더 하이톤이 되어갔다. 


제시에서 유사 문법과 제약을 설명하는 중에 ‘거기까지만 하세요.’라는 말과 시강이 끝났고 나는 열심히 준비한 연습 문제와 활용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주절거렸다. (사실 이걸 어필하는 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학생 역할을 해주지만 날카롭게 바라보는 면접관들 앞에서 시강을 하는 일이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땀이 삐질삐질 났다.



신입 강사 면접에서의 시강은 태도와 표정, 친화력과 센스, 목소리 톤과 발음, 그리고 얼마나 문형을 제대로 공부해서 연구해왔는지를 보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난생 첫 시강인데 강사처럼 하고 싶다는 욕심 자체가 너무 컸던 거지...)


그 후에 사회경험과 가르쳐본 경험에 대한 질문을 받다가 한 선생님이 물었다. “지금 시강하신 문법이 몇 급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실습을 받은 대학교 어학당에서는 초급 후반으로 배웠기에 곧바로 초급 2라고 말했다. (교재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또 다른 질문은 “신입이지만 갑자기 3급, 4급 정도를 가르치게 된다면 어떻게 준비할 건가요?”였다. 나는 “사용하는 교재를 보며 이전에 배운 문법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아직 안 배운 문법과 표현은 뭔지 체크하고 준비해야 하는 문형에 대한 공부를 하여 학생 수준에 맞는 교안을 준비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 질문은 ‘시강을 준비할 때 어떤 교재들을 참고했는지’였는데 오래전에 준비한 교안이기도 하고 하도 이것저것 참고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어떻게든 대답은 했지만) 나도 질문을 했다.  혹시 시강에 대해 바로 피드백을 해주는지, 하지만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여기에 떨어지면 다음 면접과 시강에 참고하려고 했는데 아쉬웠다. (당연히 면접의 후기를 알려주고 떨어트리진 않을 테니...)


별 질문이 없어 정적이 흐르다가 나보다 훨씬 윗세대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 결혼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시간 강사를 뽑으면서 (그런 형태의 채용이 아니더라도) 불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동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왠지 떨어질 것 같다는 마음에 준비한 마지막 말을 해도 되냐 묻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버렸다. 한국어 강사를 준비하게 된 계기, 그래서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 앞으로 어떻게 임할 것인지 간절함과 열정을 어필하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면접을 마치고 짐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한 선생님이 조언을 해주었다. “판서를 할 때 좀 크게, 정확한 획수와 순서로 판서하셔야 해요. 외국인은 그걸 보고 그대로 배우니까요.” 내가 빠르게 쓰느라 익숙지 않은 화이트보드에 ㄹ이나 ㅂ같은 철자를 획 대로 쓰지 않고 막 쓴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준비한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든 생각만 가득해서... 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선생님이 유일한 남자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장이었다.) 


면접을 보고 나왔는데 허탈하고 허무한 기분이 몰려왔다. 어떤 회사 면접을 보든 비슷한데 아주 별로인 경우엔 ‘시간 아깝다.’ 하고 말지만 붙고 싶은 곳 면접을 열심히 준비하고서 면접 당일에 온 힘을 다 해 애쓰고 나오면 왜 그리 서러운지 모르겠다. 한 정거장을 걸으며 잠시 울었다. 나는 나인데 나를 증명해야 하는 기분. 



경력자가 아닌 이상 시강에서 프로처럼 할 수는 없다. 대신 차분하게,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걸 잘 상상하면서 판서와 목소리 톤, 정확한 발음 그리고 발화 속도에 대해 신경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냥 선생님 한 번 하고 싶어서’, ‘난 한국어 원어민이니까 해보지 뭐’ 정도로 오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 같다. 내가 설정한 반 급수(수준)에 맞는 표현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 면접관은 학생 연기를 해주지만 ‘한국어 원어민’ 그리고 ‘강사 경력자’라는 것에 말리면 안 되는 것 같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고 9월 1일이 지나 학원 개강을 했을 텐데 연락이 없어서 불합격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찾아둔 온라인 코리안 튜터 사이트에 강사 등록을 위한 자기소개 영상을 준비했다.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면서 한 달 그냥 더 놀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9월 2일 저녁에 생각지도 못한 합격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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