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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Apr 24. 2021

가까스로 한국어 강사가 되다

한국어 강사 되기 3


9월에 출근한 학원은 코로나19 단계 격상으로 기존에 오프라인 수업을 듣던 학생 일부도 온라인 수업(스카이프)으로 전환하며 한 수업에 오프라인 수강생과 온라인 수강생이 혼합되어 진행되는 달이었고, 개강이 첫 주에서 두 번째 주로 미뤄져 보강 스케줄을 잡아야 해서 굉장히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9월 첫 주에 트레이닝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에 9월은 적응 기간으로 교육만 받고 10월부터 일하려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고 두 번째 주부터 바로 수업에 투입되는 것이었다. 아무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준비하고 직접 진행해야 한다니 얼떨떨하고 긴장이 됐다. 하지만 당연히 기대도 됐다. 드디어 시작!


트레이닝을 받던 날, 1급 한글 가르치기



내가 다니는 학원의 시스템이 잘 짜여 있고 프로세스가 잡혀있는 곳이냐 묻는다면 강사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등록하는 학생들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수업 스케줄을 강사에게 배정해주는 것이 개강 하루 전(빠르면 이틀 전 저녁)이기 때문에 한 달 내내 내일의 수업을 오늘 준비해야 하게 된다.


출근 며칠 전에 막연하게 "1~3급 중에 수업을 맡게 될 테니 준비하세요."라는 문자를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학원에서 쓰는 교재로 치면 각 8~9 과로 구성된 교재가 6권,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란 건지 감이 오지 않고 스트레스만 쌓였다. 결국 아무 준비도 못하고 기다렸고 출근 이틀 전 밤에 내가 출근해서 맡을 수업을 카카오톡으로 알려주었다.


급한 마음과 돌아가지 않는 머리, 텅 빈 경험통을 들고 나는 부랴부랴 수업을 준비했다. 실습수업에서 배운 교안작성법을 떠올리며 도입, 제시, 연습, 활용 마무리까지 열심히 만들었다. 한 수업을 준비하는 데 대략 6시간쯤 걸렸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그 수업 말고 다른 수업을 맡으라는 문자가 왔다.



출근 전날부터 난 눈물을 쏟았다.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으면 다음 직업 물색은 또 어느 세월에 해야 하는지에 대한 두려움, 이곳이 어떤 곳이든 붙어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데 모여 내 정신을 두들겼다.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나 나 한 명을 챙겨주기 위한 섬세한 배려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출근 전부터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이건 비단 한국어 강사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프리랜서, 아니 근로자라고 다를까? 근로자가 회사의 도구라면 프리랜서는 일회용 젓가락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나의 첫 수업을 잘하고 싶은 욕심과 환경 탓을 하기보다 내 것을 두둑하게 챙겨 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학원 가는 길, 숨 돌리기



이때부터 9월은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도 잠을 4시간 이상 자지도 않으면서 매일 같이 열심히 교안을 준비했다. 출근을 해서 수업을 하고 공강에 밥을 먹고 저녁 수업을 하고 퇴근하면 10시에 집에 왔다. 그때부터 또 다음날 수업을 4-5개씩 준비했다. 교안은 사수와 관리직을 겸하고 있는 듯한 10년 차 강사분에게 보내서 피드백을 받았고 문법서와 국립국어원을 열심히 들어가며 예문을 모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상황을 설정할 여유는 없었다. 가르치기 위해 내 뇌에 문법을 정리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한 교안을 만드는 데 여전히 4~6시간 정도 소요되었지만 하다 보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동료 쌤들의 도움이 정말 컸다.  출근한  작은 강사실에 자리도 노트북도 부족한 곳에서 와글와글 모여 있지만  인사에 제대로  맞춰줄 틈도 없어 보이던 비슷한 또래의 강사분들에게서 피로감이 느껴졌다. 가장 오래된 강사  분이 1, 나와 함께 들어온 신입 강사가 나까지 2, 다른 분들은 겨우 2~3 혹은 오래된 분이 6 정도  곳이었다. 학원은 생긴  4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내가 들어간 첫 수업은 1B 급수의 반으로 학생은 독일에 살고 있는 스무 살의 앳된 마리 씨였다. 내가 한국어 강사 일이 잘 맞고 앞으로 잘 해날 수 있을 거란 용기를 얻은 건 이 학생의 덕이 크다. 착하고 성실하고 심지어 실력도 좋던 학생. 다정한 성정에 나와 취향이 통하는 것이 많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많은 것을 교류했다. 한국어 원어민이라는 것과 국어학을 조금 공부했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곧 나온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던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구나, 느끼게 해 준 착하고 미안한 학생. 지금도 스카이프로 간간히 연락 중이다. (따로 수업을 하는 것은 계약상 불가능하다.)


나의 첫 학생, 마리 씨가 보내준 독일 사진들


한국어 강사가 되어 꾸준히 일을 하게 된 분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첫 1년 동안 가르친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만큼 그들에게 주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간 지 모르겠다. 교안을 준비하고 맞는 자료를 찾아 연습지와 활동지를 제공하고 숙제를 검사하고 나조차 모르는 규칙과 불규칙을 공부하며 어떻게 어떻게 수업을 이어 나갔다. 학생의 수준에 맞게 설명하고 그들이 이해할 때에는 보람과 쾌감을 느꼈다. 내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대만, 영국,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그들은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첫 2주를 보내면서 살이 4킬로 정도 빠졌다. 그래도 그 조차도 열심히 한 증거 같아서 좋았다. 한국어 강사로 현장을 뛰어 가르치고 소통하고 내가 설명한 것을 이해하여 사용하는 학생을 보면 기운이 났다. 동료 쌤들과도 빠른 전우애가 생겼다. 우리끼리만 있는 강사실은 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와 문법에 대한 궁금증이 넘쳤고 사사로운 이야기들로 웃어댔다. 대표나 사수 선생님들이 있을 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좀비처럼 일만 했다. 그 모습 조차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다섯 달 째 같은 학원에서 일을 받고 있다. 물론 매일매일 수업 준비와 수업만 하고 일하는 시간만 따지면 12시간이 넘어도 한 달 생활비가 나오지 않는다.


한국어 강사의 현실, 시급과 시수, 학원의 갑질, 보호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라는 직업, 코로나19가 흔드는 미래, 석사 준비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등의 여러 가지 문제는 아직 이야기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


강사들끼리 공유한 한 블로그의 글, 사설 한국어학원의 현실


*잡플래닛에서 학원들의 후기를 볼 수 있다.


우선 나는 지금 '한국어 강사'이다.  그리고 아마도 계속 '한국어 강사'를 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학원에서 다루는 교재에 대해, 수업을 준비할 때 참고하는 책과 자료, 예문과 상황을 통해 교안을 만들고 PPT자료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더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 스스로 체크도 해 보려 한다. 모든 한국어 강사분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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