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친구가 물었다.
“둘이 어떻게 친해졌어? 학교 다닐 때 서로 싫어했을 것 같은데…”
너는 빵 터졌고,
나는 “난 얘 싫어했지.”라고 말했다.
나는 널 분명 싫어했는데 우리 진짜 왜 친해졌지?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야, 돼지. 안녕?”
복도를 지나던 네가 내 친구를 향해 말했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쟤는 뭐야?”라고 물으며, 속으로 너에 대해 욕을 했다.
내 친구한테 함부로 말하는 이상한 애. 그게 너에 대한첫인상이었다. 복도에서 어쩌다 널 보면, 나는 속으로 네 욕을 했다. 시간이 흘러 2학년이 된 첫날, 기대와 걱정을 안고 들어선 교실에 네가 앉아 있었다. 게다가 너는 그 해 나의 첫 번째 짝이 되었다. 쉴 새 없이 떠들기 좋아하는 너는 쉬는 시간에도 나를 붙들고 시답잖은 이야길 잔뜩 늘어놓았다. 그게 웃겨서 같이 시끄럽게 웃었다. 하지만, 단짝이 되기엔 너무 달랐던 우리는 곧 각자의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짝이 된 날 네가 했던 얘기까지 선명히 기억나는데 그다음을 모르겠다. 우린 친해지기엔 너무 다른 사람이었고, 각자의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지냈는데 왜 너는 아직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아있는지, 어쩌다 고등학교 추억의 대부분은 너와의 일들인지 도통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제주도로 간 수학여행에서 기필코 술을 사 오겠다며 택시를 타고 나간 너를 왜 나는 물도 없는 수영장에 앉아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는지,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방황하며 고3을 보내던 네 마음을 잡겠다며 왜 그리 시간을 쏟았는지.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 뒤늦은 방황을 시작한 나를 선배 마냥 챙기던 건 왜 너였는지. 분명 너보다 더 믿음직하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속상함만 가득했던 내 스물의 생일에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전활 걸어 나를 웃겨준 건 왜 너였을까.
아직도 네가 싫었던 이유는 생생한데, 결국 너와 친구가 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한참을 생각했다. 근데 계속 생각해 보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다. 이유를 찾아낸다고 해도 지금의 우리는 열여덟 그때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유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세상 속에서 다른 속도의 삶을 살아가며 자연스레 멀어질 수도 있었을 우리가 여전히 친구라는 게 더 중요하니까. 친구가 전부이던 시절을 지나, 바쁜 어른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까지 여전히 친구로 남은 우리의 선택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겠지.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뜸해지고, 이제는 공감할 이야기가 없다는 푸념 속에 멀어지는 인연들 앞에서, ‘어쩔 수 없지. 다 시절인연이야.’ 되뇌는 날들이 많아진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에 더 자주 공감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과 선택을 쌓아 만들어진 너와의 우정에 미래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