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위에서 선명해지는
나는 번역가 지망생이다. 사실 처음부터 번역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미드와 영드를 좋아했다. 그 속의 주인공처럼 한국 바깥의 세상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흐릿한 꿈일 뿐이었다.
성인이 된 순간부터는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선택은 고역이다. 나에게는 그게 대학과 전공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공부하고 싶은 게 없을 때 전공을 고르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하기 싫은 것들을 걷어냈고, 그렇게 식품공학과를 진학했다.
식품공학도라고 해서 식품연구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꿈은 여전했다. 그렇게 나는 리투아니아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처음으로 내 영어가 형편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얼버무릴 때면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나중에는 꼭 영어로 할 말을 다 하리라 마음먹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했다. 덕분에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일하며 영어를 자주 사용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질 때쯤, 해외에서도 영어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1년간의 회사 생활 후, 영국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2년간의 영국 생활은 애매하던 내 꿈과 맞닿아 있었다. 영국의 티 레스토랑부터, 카페, 한식당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현지 회사 취직에 성공했다. 한국과 영국을 잇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담당했는데, 그중에서도 KBS와 협업했던 가드닝 다큐멘터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어로 섭외하고 인터뷰를 하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보람차고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영어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흐릿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명하지 않았던 탓일까? 영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나는 여러 회사를 방황했다. 그러다 우연히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 번역 업무를 맡게 되었다. 번역이 주 업무는 아니었지만 밤을 꼬박 새워 웹사이트를 번역하기도 하고, 홍보물의 영어 문장을 다듬으며 난생처음 내레이션 작업을 하기도 했다. 번역을 통해 회사가 외국에 연결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일이 보람찼다.
회사 생활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문득 1인 사업가에 대해 꿈꾸곤 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소신 있게 일하는 자유로운 삶.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번역으로 밥 벌어먹을 수 있을까?
그렇게 이상과 현실을 오가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방송국에서 국제 뉴스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국제 뉴스를 번역하다가 운 좋게 다큐멘터리 제작의 통번역까지도 맡게 되었다. 내가 번역으로 돈을 벌고 있다니. 순간 흐릿하기만 하던 꿈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듯했다.
지금은 번역가를 꿈꾸며 번역을 공부한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다가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싶다는 내 흐릿한 꿈은 현실의 도화지 위에 조금씩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