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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해월 Nov 08. 2023

열아홉, 홀로 유럽여행

베를린에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다.

여행을 간 이유

 올해 9월.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출국하기 2주 전에 부다페스트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이유는 간단하지만 묵직했다.

"단지 혼자이고 싶어서"

 나는 늘 혼자인 게 무서웠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혼자서 보내는 밤이 두려웠고, 과한 불안감에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래서 더더욱 혼자가 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떨어지기 싫다며 울었던 시절은 이제 보내주고 싶었다.


혼자 집에서 나는

 부모님이 없는 집에서 나는, 모든 문을 닫고, 잠그고, 커튼을 친다. 종종걸음으로 온 집 안을 돌아다니며 집 안을 정리하고, 과하다 싶을 만큼 일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낸다. 정말 한시도 편안하게 쉬지 못한다. 이미 잠겨진 문을 이중, 삼중으로 다시 점검하지만 안심하지 못한다.

 어릴 때 부모님 없는 집은 '자유'의 상징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된 지금은 '위험'이라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 하지만 누구도 날 도와주지 못할 거라는 공포. 이 것이 내가 혼자일 때 느끼는 공포다.


출국 전 일상과 사람들의 조언

 출국 전,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한국에서의 삶을 즐겼다. 어느 때처럼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웃고, 노래를 만들고, 슬슬 출국 날이 가까워지고, 나는 주변이들에게 여행을 통보했다.

 공통된 반응은 부러움+대단함이었다. 그들은 네게 여행 갈 시간과 돈, 체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어려서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부러워했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두려움이 많은 인간인데 말이다.

 모두가 네게 한 마디씩 덧 붙였다.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은 해외 헬스장을 꼭 가보라는 조언을, 연기 선생님은 직접 경험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작곡 선생님은 여행 가서 떠오르는 영감을 잘 기록해 오라는 조언을 남겼다. 그렇지만 나는 사실 무언가를 이루고 올 생각이 없었다. 나의 목표는 오직 생존뿐이었다.


 어떤 공포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나에게는 비행기가 그런 존재다. 공포 그 자체다. 사실 나는 종종 내가 감당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 삶을 포기해 버린다. '죽어도 괜찮아'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내 기억 속 가장 죽고 싶었던 기억을 골라 뇌에 밀어 넣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행기가 아무런 사고 없이 도착하면 지금 내 목표를 이루는 것이고, 비행기가 사고가 나서 내가 죽는다면, 과거의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미친 생각을 하고 비행기를 타면, 흔들리는 비행기를 롤러코스터 마냥 즐기게 된다. 난 살아도,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공포와 두려움과 함께, 비행기로.
베를린에서

 사실 그전 여행지 (부다페스트, 프라하)에서 느꼈던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데, 참 이상하게도 단순히 맛있는 거 먹고, 예쁜 거 보고, 편안한 숙소에서 잠을 자는, 그런 행복한 순간들은 재밌는 기억으로 남진 않는다. 그래서 베를린으로 나의 여행기를 기록해보자 한다.


 베를린에서는 일주일 가까이 머물렀다. 아름답고 따뜻했던 동유럽을 건너 베를린에서 도착했을 때는 얕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칙칙한 도시 속 은근하게 흐르는 광기는 뭐지?' 베를린의 첫인상은 이랬다. 단지 몇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이상한 쇼가 일어나는 곳, 누구는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디제잉을 하고, 누구는 불 쇼를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나누고, 노래하고, 누구는 촌스러운 기능성 티셔츠를, 그 옆에는 고양이 꼬리를 달고 맨발로 서 있는, 성별을 유추할 수 없고 유추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있는, 그런 이상한 그런 곳이었다.

 나는 이곳이 싫었다. 그들이 내뿜는 차가움이, 보이진 않지만 선명한 선들이, 과하다고 생각할 만큼 자유로운 영혼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과는 반대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이곳의 문화가 살짝 괴로웠다.


 몇 년 전 인간관계로 힘들어할 때, 엄마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싫은 건 아니고 이상하게 불편해. 나한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존재 만으로 나에게 이상하게 자극을 주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그런 거." 지금 내가 베를린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그리고 엄마의 말. "불편한 건 네 안에 그게 있어서 그래. 부러운 거지.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질투인거지. 나는 못 하는데 그 사람은 네가 못 하는 걸 하고 있으니까. 너는 할 용기도 없는데"

 엄마의 말을 떠올려보니 독일에서, 베를린에서 느끼는 내 감정도 부러움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은 자꾸 나를 자극했다. 내가 얼마나 불편하게 살았는지, 어떤 무례함의 시달렸는지, 내 몸을 얼마나 학대했었는지, 타인에 맞춰 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정말로 자유로웠던 순간이 있었는지.

 결국 불편했던 감정은 모두 나를 향한 것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내가 믿었던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베를린에서.


베를린 혼성 누드스파

 이곳은 네게 처음으로 '몸'을 알려준 곳이었다. 성별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모여서 스파를 즐기는 곳. 알 몸으로 별을 보며 수영하고, 물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곳.

 한국에서 나는 늘 내 몸이 싫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자 연예인의 몸매가 되기 전까지는 나의 몸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렇지만 이곳에 와서 생각이 완전히 변했다. 처음으로 몸에 대해 해방감을 느꼈다. 실제로도, 마음으로도.

몸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 그저 신체로서 기능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배웠다. 나의 세상에서 몸은 늘 평가대상, 성적 대상화가 되는 것이었기에 그 시선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몸은 그저 몸 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내부 사진 촬영 금지로 외부 사진 첨부합니다.


공항을 공원으로, 템펠호프 공원

베를린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꼽자면, 단연코 템펠호프 공원이다. 이곳은 과거 공항이었다가 시설을 철거하고 녹색지대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아주 넓고 평온함을 준다. 주로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스포츠를 즐긴다. 그리고 가족 단위로 모여 바비큐를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자전거와 바비큐는 모두가 한번쯤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주로를 자전거로 달리던 기분이 어찌나 짜릿하던지, 온 마음 가득 행복과 해방감을 느꼈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하루를 마무리했다.


독일인은 개인주의라는데, 왜 환경문제에는 왜 모두가 분노하는가

 기후위기 총파업 시위를 갔다. 가서 든 생각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다니'였다.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피켓을 들고 이곳으로 모였다. 그들은 많은 환경 문제 중에서도 자신의 주된 관심 분야 그룹에 모여 행진을 시작했다. (펭귄, 꿀벌, 핵오염수, 채식주의, 정부 비판, 산림 파괴 등등) 듣기로는, 또 느끼기로는 독일은 개인주의 성향이 아주 강하다고 들었는데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가 함께 일어서는 게 신기하고, 경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히려 공동체, 정을 강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무관심한 이들이 아주 많은데 말이다.

 사실 나는 이 행진 길이 반성의 길로 느껴졌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내내 환경 동아리, 환경부를 운영하며 환경 문제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해 왔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았다.

 채식을 포기하고, 크루얼티프리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더 이상 환경 관련 뉴스나 책을 읽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곤 했다. 그럼에도 나름의 변명도 있었다. 내가 살기도 바쁘고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주위를 둘러보냐는 말이었다. 우울증을 겪고는 모든 것에 무기력 해지며 간단한 분리수거를 하는 것 마저도 괴로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모두가 간절하게 행동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안 되는 거였다. 다시 한번 스스로를 자책했고, 반성했다. 다시 공부하고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일인의 차가움이 자신과 타인을 향한 존중과 배려임을 깨달았을 때

 독일 하면 그런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불친절함, 차가움, 개인주의.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는 무관심함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때가 있다. 독일은 여행하러 왔지만, 여행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모두가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애쓸 필요가 없었다. 네가 뭘 하든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위로의 말은 이곳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관심 없는 척 하지만 남에게 관심이 많고, 정이라는 이유로 간섭도 심하고, 명절에는 불편한 잔소리를 견디는 것이 예의였기에 이곳의 문화는 더 새롭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이곳에는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베를린에 살면 철학자가 되거나, 우울증에 걸린다는 말.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칙칙한 회색 도시 때문인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말에 동감한다. 이곳에 지내는 동안 이틀은 우울했고, 3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긴 여행을 모두 끝 마친 지금 이 시점에서도 베를린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 어쩌면 가장 나 답게 살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나도 남에게 친절한 사람이기 보다 나에게 먼저 친절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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