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심히 덤벙대는 날 보고, '구멍'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구멍이라고. 허술하다고. 그때는 매우 충격적이고 부끄럽고 창피했는데(지금 생각해도 딱히 명예로운 말은 아니지만) 나를 나대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주자고 생각한 이후부터는 그 말이 왠지 좋게 다가왔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허술합니다. 뭐든 두 번 세 번 말해야 알아 듣고, 길도 두 번 세 번 가봐야 헤매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여전히 나를, 사람들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서도 말이에요.
예전에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말이요. 어쩌면 제 삶의 모토는 복세편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게 안 된다면, 내가 그리는 그림, 내가 쓰는 글이라도 쉽고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잠시 쉬어가는 쉼표 같은, 호숫가 같은 느낌을 얻고 또 주고 싶어서요.
내 그림이, 글이, 나라는 사람이 심플한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심플하기보다는 느슨합니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등하교하던 예나, 그때와는 다른 책이 든 가방을 들고 출퇴근하는 지금이나,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빡셉니다. 그래서 오늘도 느슨한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립니다. 이 글과 그림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이 잠시라도 미소지을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게도,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