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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데리온 Aug 28. 2024

아빠는 왜 눈물을 보였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전부 알아차리지는 못할 만큼 어렸을 적에도, 어렴풋이 그우리 집안의 중심이라는 것은 감지할 있었다. 그건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친가의 형제들 친척들이 그대하는 방식과, 집안의 여러 행사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그행동과 몸짓을 보면 있는 것이었다.


아빠는 모난 곳이 없는 사람이다. '나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곧 60을 바라보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아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시도해 보아도 같은 결론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리더십, 따듯한 마음과 온정, 다방면의 지식과 통찰력까지 두루 갖춘 사람이다. 장남에 장손이라는 사실보다, 그러한 그의 성품과 능력이 그가 집안의 기둥으로 존재하게끔 한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반에서 열심히 자습을 하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급히 나를 찾았다. 그리고 어서 집에 연락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전하는 선생님의 얼굴에서 뭔가 나쁜 일이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서 집에 전화를 했고, 친할아버지가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어서 집 근처 병원으로 와 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본가에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나는 소리 죽여 울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나를 너무도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첫 번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를 집안 어른들이 종종 해주곤 하는데, 첫 손자였던 나를 할아버지는 너무 사랑하셔서 - 내가 당신이 신문을 볼 때 사용하던 돋보기 안경을 장난 삼아 똑 부러뜨려도 그저 '허허' 하고 웃으셨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해 할아버지를 뵙고 난 후로 몇 시간 동안은 병원 중환자실 복도에서 그저 엉엉 울었다. 매일 같이 비통한 울음을 듣는 청소 직원 아주머니들마저 '어린 학생이 너무 서럽게 운다' 면서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지실 만큼 울었다. 그런데 아빠는 한 번도 슬픔을 보이지 않았다. 딱 한 번, 담당의가 사망선고를 내리던 순간 우연히 옆에 풀썩 앉아있던 내가 아빠의 표정을 보았다. 아빠는 잠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이내 일어서서 다른 가족들을 위로했다. 슬픔은 그 찰나의 순간 뿐이었다. 그날부터 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아빠의 울음은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사이에 나는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도 조금은 익숙해졌고, 성숙하게 슬퍼하는 방법도 약간 알게 되었다. 장례식 둘째 날 입관식에서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떠나보낸다는 사실만큼이나 내 마음을 후벼팠던 것은 아빠의 눈물이었다. 이후로 몇 일 동안은 그때 보았던 아빠의 눈물에 대해 생각했다. 왜 본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순간에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흘리는 것일까. 그저 나이가 들어서 여성호르몬이 증가하신 것에 따른? 혹은 본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신 것인가? 아니면 예전에는 더욱 열심히 참으셨던 것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날 본 아빠의 눈물은 내 감정을 매우 격정적으로 흔들었고, 나는 온갖 생각들이 모호하게 뒤섞인 채로 조용히 화장실 구석 칸에 앉아 흐느꼈다. 아버지 -. 아빠 -.


언젠가 (이왕이면 빠른 시일 내에) 내가 쑥스럽고 낯간지러운 대화를 더 잘 할 수 있게 되면, 아빠한테 왜 예전 그날에는 울지 않았고 또 이번에는 울었던 것인지 물어보리라. 그리고 당신이 보였던 눈물이 아들 마음 속에 깊이 남게 되었음을 고백하면서, 마치 부모 품에 안겨 울던 갓난아기 시절처럼 다시 한번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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