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속도, 쓰는 호흡
집을 나서면 발걸음이 문장을 부릅니다.
빠르게 걸을 때는 호흡과, 문장도 짧아지는듯하고
쉼표조차 아끼듯 단숨에 내달리는 느낌입니다.
반대로 천천히 걸을 때는 시선이 더 머뭅니다.
나무 한 그루, 벤치 위 읽다만 신문, 길가의 삐딱한 고양이.
문장은 길어지고 여백이 생깁니다.
걷는 속도와 쓰는 호흡이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글은 꼭 책상 앞에서만 쓰이지 않음을 이젠 압니다.
길 위에서도, 발자국 사이사이에서도 문장은 피어납니다.
걷다가 떠오른 한 생각은 메모장에 남았다가
저녁에 글의 첫 시작이 됩니다.
앉아서 억지로 꺼내려할 땐 나오지 않던 낱말들이,
걸을 때는 바람과 소음에 섞여 스며들듯 다가옵니다.
걷기는 글쓰기에 두 가지 선물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리듬이고 다른 하나는 관찰이더군요.
발을 옮기는 규칙적인 속도가 글의 박자가 되고
평소엔 무심히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걷는 동안 글감으로 변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비로소 문장은 제 호흡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 멈춰 서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긴 호흡의 문장을 쓰듯,
잠시 숨을 고르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 정적이 곧 마침표이더군요.
다시 걷기 시작하면, 다음 문장이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오늘도 걷습니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젖은 도로,
지나가며 스치는 풀냄새,
길 위에 남은 대화 조각들.
발자국은 문장이 되고,
문장은 나를 앞으로 이끕니다.
그렇게 걷는 동안, 글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듯,
저 역시 저만의 보폭으로 오늘도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