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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다

글방

작가님, 다시 친해져요.

by 춤추는 금빛제비

요즘 뜸하던 브런치 관심 작가의 '글방'에 오랜만에 들렀다.
스크롤을 다 내릴 즈음, 마지막에 툭 놓여 있던 한 편의 시.
힘을 주지도, 설명하지도 않은 그 무심한 배치가
문득 나를 붙잡았다.
이 시가 다시 그분의 글방을 찾게 할 것 같다.




석불
장석주

죽산 가는 길목,
머리 없는 석불
둘이 서서 비에 젖는다.

사그막골 두 노인네
점심 끼니로 찐 감자 두어 개
종일 오시는 비나
내다본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멈춤’ 같은 게 바로 왔다.
짧고 담담한데,
어쩐지 마음 한쪽이 훅 파이고 들어오는 정적이 있었다.

머리 없는 석불 둘.
그리고 사그막골 두 노인.
설명도 비유도 거의 없는 이 장면은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다.
비에 젖는 돌과
점심으로 감자를 나누는 두 사람의 풍경이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는데,
그 흐름이 너무 단단해서
괜히 내가 조용히 숨을 고르게 된다.

이 시의 힘은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설명을 덜어내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남는다.
두 노인의 눈길에는 무엇이 스치고,
비에 젖어 선 석불의 돌숨에는 어떤 시간이 깃들어 있을까.

시인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다 보고 느끼게 된다.
그것이 이 짧은 시의 울림이었다.

말 대신 작은 적막이 스며들었다.
'고요'가 한동안 나를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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