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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니 Aug 16. 2023

나는 P다. (3 파리 그리고 바젤)


3


저녁 7시가 되서야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의 첫 식사는 에펠탑 야경이 보이는 시내의 어느 레스토랑. 3월의 쌀쌀함을 녹여줄 어니언 스프와 유럽식 앙증맞은 피자로 배를 채웠다. 



짧은 일정에 여행 내내 한국시간으로 눈을 뜨며 여행을 했다. 이유인 즉슨 내 배꼽시계가 파리시간으로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배가 꼬르륵 했다. 한국의 점심 시간 이었으니깐. 아무튼 이런 피곤한 컨디션이 었지만 신혼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순간 순간을 즐겼다. 밤새 뒤척이다 조식당이 오픈 되길 기다렸다. 배고픔에 못 이겨 한국인 답게 우리가 일등으로 호텔내 아침식사를 했다. 빵보다 밥인 나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란 말도 있지 않는가. 아침부터 이 빵, 저 빵 기웃거리며 바게트를 자르고 빵을 굽고 버터와 잼을 발랐다. 그리고 시리얼, 요거트와 삶은 계란에 커피까지 전부 섭렵하며 배를 채운 뒤 호텔 밖을 나왔다.



아침8시. 쌀쌀한 바람이 부는 3월의 파리의 아침. 트렌치 코트 위로 머플러를 둘렀다. 에펠탑 앞 공원인 샹드막스 (Champs de mars) 공원에서 봄을 알리는 붉은 자목련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남편과 손잡고 에펠탑 주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여유롭게 조깅을 하는 파리지앵을 보며 바쁜 일정을 뒤로한 채 우리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는 듯 했다. 그렇게 파리 시내를 가볍게 산책하고 골목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라떼 한잔을 했다. 그닥 맛있는 커피는 아니었지만 카페 안의 우드한 가구에 적당히 노란 조명이 반사되어 따뜻하고 아늑한 그 분위기가 좋았다. 또 무심한듯 머리를 질끈 묶고 커피를 내리는 주인이 멋있어 보였다. 우린 이날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여유로운 산책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것 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오전 10시 반. 파리에서 바젤로 넘어가기 위해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아쉬운 마음에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치겠는가. 먹을 수 있을 때 맘껏 먹자 라는 이상한 생각이 지배하면서 우린 또 역 내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랑 커피를 마실까 해서 주문했다. 그런데 아뿔사. 한국이 아니라 파리인 것을. 아메리카노로 나온 건 우리나라의 에스프레소였고 샌드위치라고 주문한 바게트 샌드위치는 이가 들어가지 않을 만큼 딱딱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친절하지 못한 그 빵은 내 그 많던 식욕을 뚝뚝 떨어뜨렸다. 내 맘대로 되지 않던 건 아마 이때부터 였을까…? 


아무튼TGV 를 타고 스위스 바젤로 향했다. 셀카를 찍으며 어제의 비행기 안과 달리 tgv 안에서 우린 걱정1도 없이 마냥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자다가 창밖을 보며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의 경계를 지나가는 걸 보기위해 구글 맵을 켜기도 했다. 어찌 시골의 풀 밖에 없는 지역을 지나가니 구글맵이 없었다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무튼 아무 경계 없는 그 유럽의 땅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려갔다. 

스위스 북쪽 바젤에서 남쪽 체르마트까지 별다른 플랜 없이 이동만 하는 반나절 일정이었다. 역시 뭐든 닥쳐야 빠른 판단력과 망설임이 없어지는 마법이라고 할까. 여행책을 펼쳐 그제서야 이러쿵 저러쿵 여행지를 알아보는 우리 부부. 항상 그래왔다. 큰 틀은 한국에서 계획을 세우지만 세부일정은 밤에, 다음날 여행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그 재미. 우린 그건 참 잘 맞았다. 역시 우린 둘 다 극강의 p의 피가 흐르는 게 분명했다.



남편: 우리 여기 가볼래 ? 

나  : 오 좋다! 그래 좋아 고고 



3시간 뒤, 바젤에 도착했다. 바젤 역을 나오는 순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잊을 수가 없었다. 바젤 역 앞으로 장난감 처럼 지나가는 트램들, 얽혀 있는 트램 선, 그 사이를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하늘은 너무나 쾌청했고 3월의 적당히 차가운 공기가 내 콧 속으로 들어왔다. 그 차가운 공기에 조금 더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버거킹을 테이크 아웃 한 후 렌터카 회사로 향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6시. 렌터카 회사 앞에는 차량 두 대 주차 되어 있었다. 둘 중에 우리 차는 어떤 걸까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렌터카 회사의 문을 잡아 당겼다. 

응? 

다시 한번 잡아 당겼다. 



나  : 오빠 안 열려! 

오빠: 그럴리가..  잠시만.. 뭐지? 



그제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유리 문에 얼굴을 눌리듯 붙였다. 

사무실 안을 보았더니 불은 다 꺼져 있고 아무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순간 눈을 마주치며 머리카락이 바짝바짝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순간 우리의 시선은 주차된 차량 앞 파란색 전화부스로 향했고 곧장 달려갔다.



나 : HELLO?

$%^YTFGHJ



수화기에선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 나왔다. 독어라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있어야지 원. 흐름상 영업시간 종료를 알리는 멘트 외에 나머지 긴 메세지는 도저히 해석 불가였다. 어찌되었건 이 기계는 더 이상 우릴 도와줄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하…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어찌 할 바를 모르며 발을 동동 굴리는 사이 뉘엿뉘엿 지던 해는 이제 얇은 어둠을 깔고 있었다. 그리고 배고픔에 샀던 버거 세트의 프렌치 프라이 기름은 종이 포장지를 하늘의 노을이 지는 것 마냥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응답하지 않는 수화기를 여러 번 들었다 놓길 반복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얘기하고 싶은데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이 1도 없는 한적한 길목. 한 순간에 국제미아 된 우리 부부 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세상에 우리 밖에 없는 것 같은 공포감 마저 들었다. 먼저 이성을 찾은 남편, 그리고 멘붕이 와서 온통 머릿속이 하얗게 된 나.



남편: (상기된 얼굴로 땀을 흘리며) 일단 이 시간이면 다른 데도 마찬가지 일꺼야. 일단 제일 가까운 공항으로 가보자. 공항은 늦게까지 하지 않을까? 

나 : 응응 ㅜㅜ 



남편이 일단 바젤 역으로 가보자고 했다. 솔직히 공항에 가도 렌트를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확신이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볍게 끌고 다니던 캐리어가 그 순간 너무나 무거운 짐짝이 되어 몸도 마음도 한 짐 이었다. 유난히 더 울퉁불퉁한 돌 블록을 지나 다시 바젤 역으로 되돌아 갔다. 우린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고 당장 오늘 묵을 호텔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길바닥에 앉아 울고 싶었다. 사실 한국 이었으면 여행이고 뭐고 바로 집에 갔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되었건 예약해 둔 숙소엔 늦지 않게 체크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짧디 짧은 우리의 4박6일 여행엔 여유 따윈 사치 였고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 하마터면 한국을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남편 말 대로 너무 짧은 여행의 폐해인가… 오늘 무조건 바젤에서 체르마트에 있는 Magali house로 가야한다. 무려 230KM를 내달려야 하는데 이 무슨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냥 난 체르마트가 너무 가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무리한 플랜이 되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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