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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7화/25화)

17. 병원

17. 병원


 처음 가본 곳은 이비인후과였어요. 하지만 염증도, 다른 이상도 안 보인다는 이야기만 들었죠. 의사 선생님께 저만 냄새를 맡게 되는 증상이 정말 있다고 재차 말씀드리니, 일단 약을 먹어보면서 콧속에 항생제 연고도 발라보자고 하시더군요. 겁이 많아서 그런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콧속에 연고는 바를 땐, 혹시나 연고가 따갑거나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까지 했었죠. 그래도 병원 진료를 받고 있어서 나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감을 잠시 가졌지만, 아무런 효과도 못 봤어요. 몇 차례 진료를 더 받아 보던 중, 한 번은 진료실에서 그 냄새가 나는 증상이 재현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전 급하게 지금 냄새가 난다고 말씀드렸고, 의사 선생님도 이상이 있는지 살펴봐주셨죠. 그러고 나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무언가를 생각하시는 듯하더니, 저에게 아무래도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인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신경 정신과 진료도 한번 받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잠깐 갈등이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라 한번 가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막상 신경정신과에 갔을 때는 엄청난 걱정이 밀려오더군요. 혹시 심각한 정신질환이라도 진단받으면 일을 못 하게 될까 봐서요. 더군다나 냄새가 시작된 그날, 퇴근길에 직원들 앞에서 이상행동을 보인 적이 있던 터라, 이비인후과에서 상담할 때보다는 소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저만 맡게 되는 정체불명의 냄새에 대해서는 설명했지만, 일상생활엔 거의 지장도 없고 증상이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다고요. 혹시나 해서 와본 것처럼 말씀드렸었죠. 그리고 상담을 받으면서 그저 사람 상대하는 일에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야기, 밤새는 일의 어려움, 외로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환취"라는 증상에 대해 설명해 주시더군요.


"실제로 없는 냄새를 맡게 되는 '환취'라고 불리는 증상인데, 흔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에요. 보통 환각 증상들은 조현증이나 조울증 또는 우울증이 심하신 경우 나타나시는 게 일반적인데, 따로 병력이 있으신 것도 아니고, 생활하는데 지장도 없으시다고 하시는 걸 봐서는…, 착각이거나 일시적인 증상일 가능성도 있어 보이네요. 혹시 일하시는 곳이나 주거지 주변에 악취가 나는 환경이 있나요?"


"근처에 공장들이 많아서 조금 냄새가 나긴 하지만 시설들이 다들 최신식이라 심한 악취는 없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흡연자라 담배 냄새 말고는 특별히 다른 냄새가 날 만한 건 없습니다. 제가 맡는 그 냄새는 생선 썩은 비린내와 느낌이 조금 비슷합니다."


"음… 그럼 아까 말씀하신 경비원 하시면서 겪는 난처한 일들이나, 혼자 지내시면서 겪는 외로움이나 이런 것 외에 어떤 마음에 걸리는 반복되는 상황 같은 건 없으신가요? 과거에 안 좋았던 일이 떠오른다거나, 어떤 껄끄러운 사람과의 마주침이라든가, 주변 소음같이 일상에서 신경 쓰일만한 것들이라도요."


"그런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냄새가 저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그러면 일단 약을 일주일 정도 처방해 드릴게요. 그러고 나서 호전이 되는지 관찰해 보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로 혼자 생활하시면, 자신도 모르게 외로움이 만성이 돼버리거든요. 그게 또 알게 모르게 몸이든 마음이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운동을 하는 동호회라든가 종교활동도 좋고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주변에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를 잘 관찰해 보시는 게 필요해요. 냄새가 맡아질 때마다 반복되는 자극원이 될 만한 게 주변에 있는지를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게 주변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현재는 심하진 않다고 하시지만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병이 어딘가 작게 자리를 잡고 있다가, 어떤 심리적인 자극을 받고 발전하면 조현증이라던가 조울증, 우울증 증상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게 또 지금의 증상을 심해지게 만들거나, '환시', '환청', '환미', '환촉' 같은 다른 환각 증상을 나타나게 할 수 있고요. 헛것이 보인다거나, 실제론 소음원이 없는데 소리가 들린다든가, 미각이나 촉각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 자극원이 없는데 맛이나 촉감이 느껴지거나 하는 것들이죠. 일단 약을 드시면서 그렇게 해보도록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을 받아먹었더니 효과가 있긴 있더군요. 단지 절 계속 재워서 문제였지요. 원래 잠을 자는 시간이 냄새의 기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이었어요. 깨어있을 때 듣지 않는 약은 저에겐 소용이 없었죠일을 할 때 정신없이 잠들면 안 돼서 약을 계속 먹을 수도 없었고요. 


 긴 고민 끝에 신경 정신과 진료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다른 약을 처방받아보거나, 약을 증량해서 먹어보거나, 상담치료, 최면치료 등 다른 방법들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결정을 하게 된 신경 쓰이는 이유가 하나 있었어요. 


 혹시라도 제가 신경 정신과에 다니는 걸, 직원들이 우연히 보게 되거나 알게 될까 봐서요. 근무 중 차량이 들어올 때 마주친 분들도 근무기간이 길어진 만큼 꽤 많아진 상태였죠. 그분들 중 누군가 병원에 다니는 절 알아보고, 지나가는 말로 직원에게 제 이야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것 같았어요. 과연 직원들이 멀쩡한 저를 심각한 정신질환이 있는 걸로 오해하게 되면, 밤에 혼자 근무하는 저에게 회사 건물들과 고객들의 차량을 안심하고 계속 맡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더라고요. 그런 일이 정말 벌어졌을 때, 단순한 환취 증상이며 업무에 전혀 지장 없을 거라고 얼버무리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어요. 이미 한번 운 좋게, 제가 퇴근길에 이상행동을 보인 사건을 아무 말 없이 넘어가 준 상황이었으니까요. 조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먹고살려면요.    


 그래서 병원에 다니는 대신 의사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종교활동을 해보기로 했어요. 물론 그건 외로움이 심해지지 않도록 바깥 활동을 하라는 의미의 추천이었고, 전 제 나름대로 종교활동이 필요한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어요. 저의 증상이 영적인 문제일 가능성도 있어 보였거든요. 냄새가 시작될 때부터 의심이 되는 존재가 있었어요. '땅콩이의 영혼'이 그것이었죠. 그래서 신의 힘을 통한 종교적 치유를 시도해 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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