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희 씀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책의 제목이 사뭇 매력적이었다. 흑이 아니면 백, 진보가 아니면 보수, 친구가 아니면 적 등등과 같이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사회. 다수는 정상이 되고 소수는 비정상이 되며, 다름이 틀림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야 할지가 늘 고민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이 말속에는 인간이 사람들과 어울려 서로 돕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이외에, 사람들에게 휩쓸려 주체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문화와 관습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생각당하며' 살게 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바쁜 일상의 과제들을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 살아가다 보면 적당히 사회화되며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느 순간 혐오를 혐오하며, 비판을 비판하며 나 자신이 잘못된 관습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언어의 의미를 면밀하게 탐색하고 삶을 깊이 있게 돌아볼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이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와 브라운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현재 시카고 대학교 철학과와 로스쿨, 신학교에서 법학과 윤리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학문적 탁월성을 인정받아 미국 철학 회장을 역임했고 미국 외교 전문지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지성에 두 차례나 선정되었다. (출처: 출판사 소개글)
이 책의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 (The Monarchy of Fear: A Philosopher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이다. 마사 누스바움이 현대 사회의 문제를 관통한다고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두려움’이다. 누스바움은 이 책을 2016년 11월, ‘로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그날 쓰기 시작했다. 걱정과 불안으로 쉽게 잠들지 못했던 그날 저자는 두려움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며 모호하고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이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려움은 분노, 비난, 시기 등 다른 감정과 뒤섞이기 쉽다. 두려움은 이성적인 사고와 희망을 막고 협력을 방해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리라는 확신이 사라진 이 시대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사회적 두려움이 생기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민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의 소수자와 같은 외부 집단을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현재 미국도 이와 같은 모습이며 타자화(othering)로 전환하여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유용한 분석을 내놓고 해결책을 찾는 대신 공격적인 타자화 전략을 사용하여 ‘우리’가 아닌 ‘그들’을 비난한다.
이러한 모습을 누스바움은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 그들이 그리워하는 미국 사회는 결코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의 노력과 협력, 연대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정의롭고 포용적인 미국은 현실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둘째, 지금 이 순간이 최악인 것처럼 보이지만 대재앙과 맞닥뜨린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희망과 노력으로 공공선을 완수해가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현실의 어려움을 과장하여 공포를 조장한다면 과장이 실제 재난으로 이어지는 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의 이러한 진단은 미국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작금의 현실과도 닿아있다. 저자는 두려움의 위험성에 대해 “민주주의는 우리가 두려움에 굴복할 때 무너진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 연설을 들어 경고하고 있다. 두려움에 굴복하여 흐름에 휩쓸리며, 회의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것은 위험한 일며 두려움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해 한 발 물러난 숙고를 통해 이해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스바움은 루소와 정신분석의 이야기를 들어 인간이 태어났을 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갖게 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논하며 인간은 민주주의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군주제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생애 초기 인간은 무력하기만 하다. 생존을 위해 양육자에게 의지하고 요구해야 한다. 돌보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생애 초기에 생기며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성장하며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나에게 사랑을 주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성숙해 간다. 누스바움은 이것을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으로 보았다. 즉, 두려움은 타인의 독립성에 대한 믿음보다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과 비슷하며, 희망의 정신은 타인이 독립성에 대한 존중, 군주적 야망의 포기, 마음의 확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넘어 타인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는 능력,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원할지 상상하게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타인과 연대하는 인간' '타인의 고통을 연민하는 인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마사 누스바움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떠한 현상을 보이고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평화와 진보를 추구하기 위해 예술과 논쟁, 공동체, 종교, 타인에 대한 믿음, 사랑, 희망을 이야기한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많은 사회 연상들과 연결 지으며 다양한 각도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타인에 대한 믿음, 사랑, 희망이라는 너무도 모호하고 커다란 주제로 마무리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에 단 하나의 또는 단 몇 가지의 간단한 해결책으로 풀어내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너무도 자명하기에 어쩌면 그의 마무리가 가장 현명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며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옮겨 본다.
"나의 고통은 결코 타인의 탓이 아니다"
"철학은 적을 존중하는 법은 알려주지만 적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두려움 뒤에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행동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동료 시민들의 말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과 비난, 보복을 통해서는 타인에게서 어떤 선함도 찾을 수 없다."
"여성 혐오는 “빌어먹을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영리한 전략은 아니다. 이는 아이들이 싫다고 외치며 발로 바닥을 치는 것과 비슷하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여성 혐오자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 여성 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정치에서 희망은 혐오를 멈추는 것부터 시작된다. (중략) 상대의 온전한 인간성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동과 그 행동 뒤의 인간성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인종차별주의를 비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