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 오웰

너는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by Godot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인데 글로 정리하려고 하니 머리가 아프다. 완벽하게 정리하려는 생각을 버리자. 애초에 불가능하다. 정리가 되어야 쓸 수 있다는 생각도 버리자. 그런 때는 오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중사고'부터 말해보자.


조지 오웰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내부 검열의 문제다. 빅브라더는 초자아의 비유다.


주인공은 초자아에서 약간 벗어나기 시작한 존재다. 사회가 내재화시킨 검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과 욕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왠지 일기를 쓰고 싶다. 거기에 뭔가 쓰려한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활달하게 행복해하고, 분노하며 산다. 기억은 사회가 만들어준다. 진리와 진실은 스스로 찾지 못하는 세계. '당'이 말해준다. 그것이 진리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의 기억은 편집되기 때문이다.


나는 1년 전과 다르고, 어제와 다르다. 새로운 경험과 책이 꿈을 꾸며 과거를 재해석한다. 나는 매일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기억을 편집한다. 역사란 그렇게 고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기억의 존재이고, 그 존재 기반은 이렇듯 흐리멍덩하고 유동적인 모래처럼 놓여 있다.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유연한 기억은 적응에 적합하기 위한 인간의 강점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이렇게 되면 정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진실이 존재함을 안다. 그러나 현실과 사회가 요구하는 진리와 진실도 존재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이중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알지만 알지 못한다. 이걸 '자기기만'이라고 하는 것일까. 사르트르가 그랬던가. 자기기만을 하기 위해서는 '모르고 무시하고 있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알아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억압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 놈의 사회와 세상이 내 안으로 침투한다. 내재화되어 '초자아'를 만들고, 나를 검열하고 억압한다. 나는 검열되고 억압된 진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알고 있었다. 분명 사랑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윈스턴은 분명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부정했다. 마음으로 배신했다. 술을 마신다)



<1984>의 마지막 문장


"그가 저 검은 수염 속에 숨은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는 데 40년이 걸렸다. 오 잔인한, 불필요한 오해여! 오, 사랑이 가득한 품 안을 떠나 고집부리며 스스로 택한 유형(流刑)이여!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내면의 갈등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으로 종결된다.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초자아와 화해했다는 것인가. 난 이 문장을 읽으면서 공자가 연상됐다.



공자가 말하는 70세의 경지


공자는 70살이 되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종심소욕 불유구'라 하여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 공자가 나이 70에 이르렀다는 경지다. 이게 경지라니. 초자아에 먹혀 버린 것인가. 법도는 세상의 이치와 규범일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라니. 세상이 모두 내재화되고, 자기는 사라진 것인가. 공자의 진짜 사상이 '자기'를 죽이는 것은 아니겠으나,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은 이렇지 않을까.


유교는 내재화시키는 규범이다. 영리한 방법이다. 바로 빅브라더를 만드는 것이다. 일일이 법률로 만들 필요가 없다. 네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긋나지 않도록 만들어 주마. 너는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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