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밍키 Mar 16. 2021

무언의 대화

프라하의 기억 1

                                                                                                                                                                            



                                                                                                                                                                                                           'Nádraží Holešovice'


  기숙사에 가려면 나는 항상 그 역에서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112번 버스를 타고 10분을 더 가야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 노선표나 버스 배치표를 처음 살펴본 날에는 현기증이 났다. 난생 처음 보는 단어들이 점과 점사이에 콕콕 박혀있었다. 처음 버스를 탄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려야 할 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안내 방송을 듣는데, 외계어 같은 말이 흘러나와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이 맞는지 고민하다가 결국 지나치고 말았다. 많은 정류장이 'nádraží '로 시작했고, 'nádraží' 뒤에 나오는 흘러나오는 단어를 나는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nádraží'가 '역'을 뜻한다는 것은 몇 주 후에 알게 되었다. 영어만 할 줄 알면 되겠지, 하는 오만한 생각으로 도착한 프라하에서 나는 체코어의 벽을 마주하고 좌절했다.


  프라하는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다면 짧은 영어로 불편 없이 수일을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머무르는 것과 산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기숙사 직원들은 대부분 중년의 나이였고, 체코에 사는 40대 이상 사람들은 대개 영어가 서툴다고 들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만 떠올려 봐도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체코어 회화책 한 번 들춰보지 않고 낯선 나라에서 살아보겠다고 떠나 온 건방진 자신을 탓해야 했다. 그래도 자꾸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오만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속으로 되넸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입주 절차를 거치며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기숙사 직원들에게 크게 데이고 난 뒤, 나는 이곳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기숙사에는 동양인이 별로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나에게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룸메이트 한 명이 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교환학생이었는데, 말레이시아 대학에서 단체로 온 친구들이 기숙사 다른 호실에 흩어져 사는 바람에 그녀는 자주 방을 비웠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프라하로 교환학생을 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왠지 학교는 그 사실을 알고 동양인인 그녀와 나를 같은 방에 배정하는 친절을 베푼듯 했다.


  그 기숙사에는 특이한 빨래 절차가 있었다. 1층 데스크에서 직원에게 돈을 내고 열쇠를 받아서 빨래방에 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처음 빨래를 하던 날, 나는 비닐백에 가루 세제 박스와 빨래를 한가득 담고 1층으로 향했다. 리셉션에는 풍채가 좋은 중년의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어두컴컴한 리셉션 방에서 그의 옥색 눈이 빛났다. 푸릇한 두 눈이 나는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리셉션에 간 나는 "laundry?"하고 물었다. 그는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은 탓에 나는 그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오늘은 또 어떤 문전박대를 당하려나 지레 겁을 먹었다. 그는 옥색 눈을 더 크게 떴다. 구글 번역기로 대화를 시도하려고 휴대폰을 찾았는데, 그날따라 하필 방에 두고 내려왔다. 빨래가 마구잡이로 담긴 비닐백이 왠지 민망해 보여주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리셉션 턱이 높은 탓에 나는 무거운 빨래 봉지를 위로 끌어올리며 아저씨가 볼 수 있도록 흔들었다.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아저씨는 천천히 일어나 열쇠를 건넸고, 얼마를 내야 하는 지 모르는 탓에 나는 동전 뭉텅이를 내밀고 거스름돈을 돌려받았다.


  빨래를 돌리고 방으로 돌아오니 룸메이트가 있었다. 그녀에게 오늘 처음 빨래를 했으며 리셉션 아저씨는 영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웃으며 자기도 다 겪었던 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빨래하러 갈 때 꼭 가루 세제를 따로 손에 들고 간다고 말했다. 그 리셉션 아저씨에게 가루 세제 통을 흔들기만 하면 바로 알아차리고 열쇠를 건넨다고 했다. 팁을 얻은 나는 그 후 룸메이트가 하는 그대로 따라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빨래를 하러 간 탓에 리셉션 아저씨의 얼굴은 금세 익숙해졌다. 아저씨 면전에 대고 세제 박스를 양옆으로 흔들면, 아저씨는 조용한 미소를 짓고는 열쇠를 내밀었다. 가끔 동전을 잘못 내면 아저씨는 고개를 젓더니 내 손바닥 위에 있는 동전을 두툼한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걸러내어 맞는 금액의 돈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또 한 번 조용히 웃었다. 그 후 나는 빨래가 체코어로 뭔지 검색해보긴 했지만, 늘 세제 박스를 들고 리셉션으로 갔다. 멀리서 세제 박스를 들고 오는 나를 보면, 의자에 파묻혀 있던 아저씨는 자동으로 손을 열쇠로 뻗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아저씨와 나는 그렇게 몇 달간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기숙사 퇴실을 몇 주 앞두고, 나는 빨래를 하러 평소처럼 세제 박스를 들고 내려갔는데 아저씨가 없었다. 아저씨를 대신해 학생처럼 보이는 안경 쓴 젊은 여자가 리셉션에 앉아있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평소처럼 세제 박스를 흔들었고, 'laundry?'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무표정이었다. 그녀는 귀찮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체코어로 길게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당연히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그때 마침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고, 구글 번역기로 빨래를 해야 하니 열쇠를 달라는 말을 적어 체코어로 보여줬다. 그녀는 화가 난 표정이었다. 또 체코어로 빠르게 말했다. 지금 빨래방을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해서 한참을 서 있었는데, 기숙사에 사는 다른 체코인 학생이 리셉션에 오더니 손쉽게 빨래방 열쇠를 받아 갔다. 나는 황당해서 영어로 화를 냈다. 그녀는 체코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질 수 없어 한국말로 나지막이 욕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문득 아저씨의 옥색 눈과 조용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저씨가 보고 싶었다.



레이먼드 카버 단편집 <대성당>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수록되어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가 등장한다. 아이는 여덟 번 째 생일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아이 엄마는 미리 주문해 놓은 생일케이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슬픔에 빠진다. 그 사실을 모르는 제과점 주인은 부부에게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가라며 독촉 전화를 하고 화를 낸다. 부부는 결국 제과점을 찾아가고, 제과점 주인은 아이의 죽음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무지함을 사과하며, 며칠 아무것도 먹지 못한 부부에게 빵을 건넨다.


  "내가 만든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아이가 죽고 슬픔에 가려 허기를 느끼지 못했던 아이 엄마는 그 롤빵을 세 개나 집어 먹는다.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낯선 사람이 건넨 따뜻한 롤빵 몇 조각은 그렇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


  유독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기숙사에서, '별것 아닌 것 같던' 아저씨의 그 미소가 나에겐 무엇보다 큰 '도움'이었다. 프라하 생활을 하며 겪은 체코 사람들은 대부분 무뚝뚝하고 불친절했다. 그 나라에서 체코어 한마디 못하고 영어로 질문을 쏘아대는 이방인에게 어쩌면 당연한 대우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가뭄에 단비 같은 리셉션 아저씨의 미소가 나는 늘 반가웠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눈 적 없는 이름 모를 그 아저씨가 프라하에서 사귄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세제 박스와 미소로 나누었던 그 무언의 대화는 삭막한 기숙사 생활에서 나도 모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가장 큰 위로는 그렇게 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리 없이 등장한다. 그 소리 없는 위로의 잔상은 큰 울림이 되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이름 모를 그 아저씨의 행적이 문득 궁금하다. 어디선가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 무표정으로 옥색 눈을 크게 뜨고 빤히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고는 이내 '롤빵'같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겠지. 내가 잘못 건넨 동전을 찬찬히 세던 아저씨의 퉁퉁한 손가락이 어쩐지 롤빵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Děkuju (뎨꾸유).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2021년을 시작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