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선정 하나로 전 일본을 사랑에 빠지게 만든 뉴진스의 디렉팅
전 일본을 뒤집어놓았다. 흔히 말하는 국뽕TV의 어그로성 제목이 아니라 진짜 뒤집었다.
이틀간 진행된 뉴진스의 일본 첫 팬미팅이 도쿄 돔을 양일 합쳐 무려 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끝났다. 무려 도쿄 돔. 한때 J-POP을 덕질하면서, 일본 가수들에게 어떤 공연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무도관(부도칸)은 일본 가수들에게 메이저 음악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첫 계단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통 요코하마 아레나, 사이타마 아레나를 거쳐 도쿄 돔에 입성한다. 일본에서도 아주 극소수의 티켓 파워를 가진 슈퍼스타만이 입성하는 닛산 스타디움 (이쪽은 이틀 대관한다고 치면 12~14만명을 동원해야 한다!) 을 제외하면, 뉴진스는 기초 단계를 다 건너뛰고 도쿄 돔에 입성한 셈이다.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하기도 전에 이미 일본 내 뉴진스의 영향력이 대단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겠다.
나는 팬미팅에서 어떤 멤버가 어떤 곡을 불렀는지 실시간으로 알면서도 바빠서 보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일반적으로 한국 아이돌이 일본에서 첫 팬미팅을 진행할 때와는 사뭇 다른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정말로 다음날 일본 다수의 신문의 1면이 뉴진스로 대서특필됐다고 한다. 사실 고백 하나 하자면, 난 이때까지도 이런 뉴스들이 호들갑인 줄 알았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나는 각을 잡고 앉아 팬미팅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보자마자 반하고 말았다.
뉴진스 멤버들한테야 이미 반한지 오래고, 민희진의 미감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박수친지도 오래지만, 멤버들의 일본 노래 커버 영상을 보고 나는 또 한번 이들의 감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찔하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혜인은 80년대 일본 시티팝의 대표곡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를 커버했고, 민지는 상대적으로 훨씬 최신곡인 바운디의 <무희(Odoriko)>를 불렀다. 그러나 일본을 제대로 뒤집어놓은 무대는 따로 있었으니...바로 하니의 <푸른 산호초>였다.
<푸른 산호초>는 일본의 '국민 아이돌'로 불렸던 마츠다 세이코가 1980년에 내놓은 싱글로, 그녀는 이 곡을 통해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1980년대 일본 호황기 '아이돌 붐'의 왕좌에 오르기 시작한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푸른 산호초>는 마츠다 세이코의 대표곡임과 동시에,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 황금기를 대표하는 곡으로 남아있다. 때문에 일본의 중년층에서는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다. 아무래도 1980년대 미국 빼고는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일본의 황금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으니, 이 곡의 위상은 대중적 신드롬으로 비교하면 아이유의 <좋은 날>이고, 세대를 넘나드는 보편성으로 따지면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정도, 그 둘을 합친 것의 만 배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의 황금기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 하나를 통으로 내놓은 소재로 다루어질만큼 일본인에게 있어 굉장한 향수로 남아있지 않은가?
그런 <푸른 산호초>를 하니가 부른 것이다. 이런 곡을 선곡한 것은, 일본에서 뉴진스와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의외로 일본에서는 뉴진스를 향한 40대 중년층의 지지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다른 K-POP 아이돌은 좋아하지 않지만 뉴진스는 좋아하는 아저씨들을 "뉴진스 아저씨"라 부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본래는 "그냥 아저씨들이 뉴진스를 성적으로 소비하고 싶은 거 아니냐"는 멸시의 의미가 담긴 용어이지만, 어쨌거나 기존 아이돌들이 어필할 수 없었던 세대에서 이렇게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단순히 "음침한 성적 취향"으로 치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뉴진스는 심지어 우리나라 중년층까지도 팬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레트로의 감성을 누구보다 섬세하고 세련되게 주무를 줄 아는 뉴진스에게 그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민희진은 이 지점을 아주 정확히 파악한듯 보인다. 만약 뉴진스의 팬층이 10대에 몰려있다면, 과연 이런 노래를 불렀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희진과 하니는 40대가 그리워하는 부분을 정확히 찔렀고, 일본이 간지럼을 타는 부분을 정확히 간질였다. (하니는 마츠다 세이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영상을 계속 돌려보고 제스처까지 분석하고 연습했다고 한다. 잘했다 아주!) 그 손짓 하나에, 일본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 좋아하는 곡을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세련된 스타일링으로 아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일본의 현대사, 대중음악사, 그리고 그 문화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선곡이었다. 선곡 하나만으로 한 나라를 뒤집어놓는 능력. 이게 기획의 힘이다. 이제 뉴진스는 일본에서도 전 세대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비록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푸른 산호초>였지만, 다른 곡에서도 세련된 연출이 돋보였다. 독보적인 음색의 혜인이 <Plastic Love>를 부를 때는 전광판을 흑백으로 처리해 혜인의 모습이 한층 더 고전적이고 향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혜인의 노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은 가창력이 돋보이지는 않는 민지인데, 먹먹하고 무심한듯 몽환적인 바운디의 <무희>는 아주 적절한 선곡이었다. 나는 평소 민지의 낮고 보이시한 음색을 좋아하는데, 이런 사람에게 높은 곡을 주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 목소리가 가진 최대한의 매력을 뽑아내려면 그 음색과 음역대에 맞는 곡을 주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무희> 무대도 만족스러웠다. 나머지는 민지 얼빡샷이면 다 개연성이 된다. 이런 게 디렉팅이지, 하고 오랜만에 미적 측면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만족한 무대들이었다. 정말 일본 문화를 정확히 꿰뚫어 본, 그들이 뭘 좋아할지 정확히 꿰뚫어 본 기획이었다. 도쿄 돔에서의 팬미팅이 마치 꿈에서 그리던 이상형이 수줍게 내미는 러브레터와 같았고, 일본은 뉴진스와 사랑에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