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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미 Jul 03. 202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난해하다구요? 미야자키 하야오를 위한 작은 변호

대체불가능한 ‘거장’의 영역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들이 마법사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그들은 그들만이 빚어낼 수 있는 감정을 자아낸다.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기도, 식빵이 되어가는 이스트 반죽처럼 부풀게 하기도, 숨이 가빠질 때까지 두근거리게 하기도 한다.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조종할 수 있을까? 고도로 발달한 예술가는 마법사와 구분할 수 없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독창적인 감성이 있다고 믿지만, 그걸 다루고 형태를 빚어내 타인에게 선물하기까지의 과정은 여간 재능 있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지브리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렇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CG로 상상 속의 존재를 현실 세계에 마치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불러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불러낸 존재들은 정말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차갑게 다가온다. 나는 아이언맨의 슈트와 해리포터의 지팡이에 가슴이 뛰고 설레곤 했지만, 그 장면을 보고 어떤 따스함을 느낀 적은 없다. 이런 시대에 오히려 지브리가 그들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그림은, 여전히 그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고 특별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니까, 수많은 2020년대의 영화들이 그래픽을 통해 자신들의 상상력을 현실로 불러내는 데 애를 쓰고 있다면, 지브리는 붓 터치만으로 아직도 자신있게 관객들을 반대 방향인 자신들의 세계로 초대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관객들은 몇십 년에 걸쳐서 그들의 특별한 세계를 기억한다. 설령 그 동화가 이번 영화처럼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지브리의 감성을 좋아한다면 우리 마음 속 어딘가를 간질이는 것은 동일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는 무려 1941년에 시작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을 함축한 영화다. 이게 뭐 <개쩌는 인생>을 자랑하려고 한다거나 <어떻게 살 거냐>고 훈계하는 영화는 아니고, 아마도 할아버지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 안에 자신의 경험, 자신의 주변인들과 한 대화, 자신이 만든 작품, 심지어 자신의 후배들(특히 신카이 마코토)이 만든 작품까지 모조리 집어넣었다. 영화의 플롯은 관객들을 납득시키고 감독의 의도를 수준 높게 전달해야 하기에, 스토리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심지어 개인의 마음 속은 더하다. 우리는 한 상황을 마주치고도 이율배반적인, 복잡한 감정을 자주 느끼지 않나?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퍼즐이 아니라, 그저 감독이 정리하고 싶었고, 전달이 아니라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어떤 감정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뭔가를 팔고 싶은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회고록을 쓰고 싶었는데 그 매개체가 자신이 평생 매달려온 영화였을 뿐이고, 그냥 관객들과 ‘난 이런 삶을 살면서 이런 마음을 느꼈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말하자면 당근 무료나눔 같은.



인생의 전진은 모두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왜?’가 없는 사람은 움직일 필요를 못 느낀다. 살아가는 데 있어 ‘왜’를 충족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말은, 어떤 악의가 담긴 말이 아니라, 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불씨와도 같은 질문이다. PTSD를 겪었다면, ‘그걸 어떻게 극복하지?’ 


그것에 대한 대답은 각자에게 다르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당연히 보는 사람에게 재미나 교양을 강요할 수 없다. 재미 없다면 없는 것이다. 다만 정답이 되는 해석을 찾으려 하지 말고, 정말 인생이 흘러가듯 영화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볼 것을 권한다. 기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어느 정도 첨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인생이나 과거 작품들을 알고 가면 당연히 이 사람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가 더 재밌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걸 모른다고 하더라도, 분석을 하기보다 그저 따라갈 때 더 영화가 와닿는 것 같다. 살다보면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눈치’와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그런 거다. 스토리 자체는 오마주 묶음 치고는 진부하고 정석적이라고 느꼈는데, 그냥 분석하고 평가 안 하는 게 낫다. 2시간동안 기분 좋은 꿈 꾸고 오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일생의 역작을 내놓고 전성기에서 내려온 경우, 그냥 하던거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모노노케 히메>부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이 정도 해줬으면 이제 하고 싶은 말 대충 엮어서 내도 퇴물 소리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성기에 비해 역량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창의력에도 에이징 커브는 오기 마련이다. 예술 업계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의 작품은 과거의 그 감성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팬 서비스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역량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박수칠 일이고, 아니어도 나는 지브리라는 브랜드의 향수를 진열장에 하나 더 둘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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