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며 배우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아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겠다고 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평소에 아내가 퇴근하면 옷도 못 갈아입고 침대로 직행하는 저질 체력이다. 팔과 다리에 문어 빨판이 달려있는 건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제발 외출복만이라도 갈아입고 누우면 안 되겠냐고 매일 같이 사정한다. 저녁 식사를 할 때는, 아내가 숟가락을 뜰 힘도 없어서, 철퍼덕 엎어져서 식사를 할 때가 많다. 당연히 주말에는 피로를 풀고 체력을 보충하느라, 어두운 굴속에 잠든 문어처럼 늦잠은 기본이다. 아니, 여보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시겠다고요?
아들이 각종 탈 것을 좋아한다. 주말이면, 각종 탈 것을 트렁크에 가득 싣고 공원으로 간다. 아들이 킥보드, 자전거는 잘 탄다. 초등학생이 되더니 제법 체력도 늘어서, 나랑 같이 라이딩을 하면 왕복 10킬로쯤은 충분하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는데, 아직은 초보다. 나랑 아내가 인라인 스케이트는 탈 줄 몰라서 알려주는 게 어려웠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따로 배우려고 알아봤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로 결심했나 보다. 본인이 같이 타면서 알려주려고 말이다. 아빠가 빠질 수 없지. 당근마켓에서 인라인 스케이트 알림 설정완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아들 덕분에 얼마 전부터 6킬로 마라톤을 준비 중이었다. 이제는 인라인 스케이트까지 도전이다. 6킬로 마라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데 ‘도전’이라는 말까지 붙이기가 민망하지만, 나는 운동 신경이 제로에 가깝다. 학창 시절에 슬램덩크 만화 때문에, 농구를 좋아했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 그 처럼, 멋진 포즈로 슛을 쏘고 싶었다. 철썩! 골이 들어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면, 멋지게 주먹을 불끈 쥐며 하늘로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를 상상했지만, 내 몸은 냉정했다. 뇌에서는 분명히 명령어를 내렸는데,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은 정대만이지만, 현실은 연체동물이었다. 멋진 슛? 꿈도 못 꿨다. 드리블하는 팔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흐느적흐느적. 다리는 또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건지, 어기적어기적. 가관이었다. 언제나 친구들이 놀렸다. 야, 너 문어야?! 그래! 문어다. 문어도 꿈이 있어!
아들 덕분에, 문어가 다시 꿈을 꾼다.
아빠 문어가 달린다. 엄마 문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