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정을 찾기는 어렵다
"너 공부랑은 거리가 멀잖아"
나는 서울시 서초구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온 강남 8 학군의 아이였다. 그리고 스스로도 지긋지긋한 학벌주의에 사무쳐서 살고 있으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입시에 미쳐 달에 최소 120만 원은 학원비로 가져갔던 그런 사교육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출신에 아주 자랑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 기준에 부끄럽지는 않은 대학을 진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말은 우리 아빠가 극도의 예민 시기를 거치고 있는 고3의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때 당시 나는 아침 6시에 기상, 7시에 등교해서 새벽 1-2시에 귀가하는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며, 수능이 끝나고 나서 내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이라는 후회가 남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응원해 줬어야 할 부모님은 나를 '공부랑은 거리가 먼' 아이로 평가했다.
나는 2녀 중에 막내로, 국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있다. 아버지는 Y대, 엄마는 H대. 강남 8 학군에서는 흔해 보이지만, 전국적으로는 흔하지 않은 똑똑한 부모님을 뒀다. 그리고 나와 언니의 학업을 위해, 우리는 빠듯한 살림을 이끌고 내가 8살이 되던 해 강남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지금 되돌아보면, 나의 학창 시절이 아름답진 않지만 후회스럽지는 않다. 20년간 행복하다고 느낀 추억은 몇 없지만, 덕분에 지금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냥 과거에 고생하면서 스트레스받던 내가 고마울 뿐이다.
엄마는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발레 학원, 레고 카페를 다니게 했다. 초등학교 때는, 스포츠 학원, 플루트 학원,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논술 과외, 수학 및 영어 학원을 다니게 했다. 생각해 보면 이 수많은 학원과 보조 교육 기관 중에 나는 발레와 레고, 스포츠, 피아노, 논술 수업만을 좋아했는데, 이 모든 공간의 공통점은 내가 친구들과 놀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은 학원에 가지 않아도, 집 근처 놀이터에만 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왜 엄마는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내가 학원에 가길 바랬을까? 아마 엄마는 학원에 다니던 세대가 아니라서, 학원이 내게 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것이다.
한 번도 고백한 적 없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참 쉽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수학 학원을 가야 될 시간은 다가오는데, 내가 숙제를 안 했을 때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럴 때의 긴장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학원을 빠지고 싶었다. 물론 갖은 핑계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나는 답지를 보고, 문제를 읽지도 않은 채로 베끼는 행동도 스스럼없이 했다. 어느 날은 그걸 엄마에게 들켜서 혼이 나기도 했지만.
중학교 때는 학교 활동하는 걸 참 좋아했다. 3년 내내 학급 임원을 맡았고, 선도부도 했었고, 과학 동아리의 부장도 맡았었다. 봉사 활동도 좋아했고 학교 축제 기획도, 학급 미화 활동도 재미있게 했었다. 엄마는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지만, 못 미더워했다. 엄마의 생각에는 이런 활동들은 '노는 것'에 해당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볼 수많은 시험들에 내가 미리 대비하기를 바랐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 내가 정말 다니기 싫어하던 영어 학원을 땡땡이친 적이 있다. 그 학원은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고도 그날 본 단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10시 이후에 남아서 자습을 하고 가야 하는 학원이었다. 나는 학원에 전화해서 오늘 아파서 못 간다고 하고는, 집을 나와서 당시 등록했던 독서실로 향했다. 죄책감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가서 이미 했어야 할 영어 숙제를 하고 단어를 외웠다. 30분쯤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학원에서 확인 차 집에 전화를 해서 땡땡이친 게 들켜버린 상황이었다. 그 날, 엄청 혼나면서 사용하던 휴대폰도 뺏기고, 모든 학원을 그만두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교육 없이 학교 중간고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엄마는 만족하지 않았지만. 국어나 영어, 수학 등은 유지하거나 조금 떨어졌지만 그 주변 과목들은 전부 크게 올랐다. 처음으로 자율 학습을 했던 한 달 남짓의 기간이 끝나고, 기말고사 준비 기간이 되면서 엄마는 나를 다시 학원에 보냈다.
얼마 전, 엄마에게 왜 나의 성적에 한 번도 만족하지 않았냐고, 왜 나를 칭찬해 주지 못했냐고 물었다. 엄마도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주변 치맛바람에 휘둘렸는지, 언니로 인해 엄마의 기준이 높아졌는지 그건 이제 알 수 없다. 어린 마음에 나는 성적이 엄마를 기쁘게 해 줄 유일한 수단임을 알았고,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지만 꽤나 열심히 했다. 엄마는 내가 학급에서 회장이 되어도, 동아리 부장이 되거나 선도부가 되어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다. 엄마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내가 좋아하던 학교 활동들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점점 더 소심해졌고, 예민해졌다. 친구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시가 된 듯 아플 때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무시를 당하면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울고 화를 냈다. 어떤 부정적인 말도 용납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얼른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고 싶단 생각으로 버텼다. 대학교에 가면 연애도 하고, 놀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학교 활동도 실컷 하면서 즐기겠거니 했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 오면서 드디어 우물 안의 개구리를 벗어났다. 어머니가 성적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으셔도 스스로 공부했던 친구들도 만났고, 나보다 훨씬 똑똑한 친구들, 활동에 알바에 성적에 연애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는 사기캐 친구들도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부러운 친구는 자율적이었던 친구도, 똑똑한 친구도, 완벽한 친구도 아니다. 나와는 다른 교육과정을 겪은 친구이다.
이 친구는 여러 국가에서 거주하고 중, 고등학교는 말레이시아에서 나온 친구이다. 말레이시아 교육 과정은 초등학교는 오후 12시쯤, 고등학교 조차도 오후 2시쯤 끝난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스포츠라던가, 학생회라던가 등의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친구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좋은 대학을 남들보다 1-2년 빨리 입학했다.
이 친구와 학창 시절을 얘기하면 참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나에게 항상 너무 재미있었다며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때는 자기 학교 시간표, 학교 행사, 했던 스포츠 사진들을 보내주면서 본인의 추억을 소개해 주고는 한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종종은 그 좋은 시간들이 질투 나기도 한다.
대학교에 오면, 엄마도 나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더 이상 나를 돌봐야 할 어린아이, 자꾸 공부하라거나 이거 해야 한다 저거 해야 한다 하지 않아도 될 어른이 될 것을 기대했다. 여전히 우리 엄마에게는 나의 취업이라는 숙제가 남아있나 보다. 엄마는 끊임없이 걱정하고, 나에게 이걸 배워라, 저걸 공부해라 한다. 엄마의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최근의 취업란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내가 모르는 건 내 꿈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바쁘게 학교를 달려온 사람들은 고민해 볼 시간이 없었다. 이 고민에 대한 결론으로 어쩌면 향후 30년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다면 4년의 고민 시간이 과연 길다고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내 꿈을 물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