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마지막 날

그 기록과 내가 느낀 슬픔과 비참함

by 감성 개발자

2018년 8월 14일 오후 11시경, 나는 알바를 끝내고 10시쯤 집에 돌아와 삶은 달걀을 먹고 있었다. 그 달걀은 당시 전업주부셨던 아빠가 친구들과의 술약속을 가기 전에 내가 알바하고 돌아오면 먹을 수 있도록 삶아두신 거였다. 아빠 번호로 내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


모르는 목소리로 누군가 'XX 딸 맞나요?' 물었다. 나는 맞는데 누구시냐고 물었다.


아빠가 병원에 있다면서 의사가 얼른 오셔야 된다고 했다며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오란다. 순간 이거 누가 장난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전화를 넘겨 받았다. 급성 심근경색이 왔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얼른 오라는 얘기를 반복했다. 주변 가족들에게도 전화해서 얼른 오라고 하랬다. 전화는 침착하게 끊고, 옆에 있던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가 병원에 있대. 마음의 준비하고 얼른 오래. 얼른 가자 엄마.


상황은 당황스럽고, 이게 실제인가 구분은 안 갔지만, 지갑도 챙기고 휴대폰도 챙겨서 나왔다. 집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손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택시에 탔다. 무조건 강남 성모 병원 응급실이요, 제발 빨리 좀 가주세요 외쳤다. 그러는 와중에 아빠 번호로 전화가 한 두 번 더 왔다.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얼른 오라고 재촉하는 전화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하는 것, 그리고 택시 기사님께 빨리 좀 가달라고 부탁드리는 것 외에는 없었다.


당시 독립해서 살던 언니에게 전화했다. 아빠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있고, 위급하니까 최대한 빨리 와야 한다고. 오래도록 연락한 적 없는 고모에게도 전화했다. 지금 오라고. 그리고는 엄마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인 이모에게도, 외삼촌에게 전화했다.


택시 탄지 약 40분쯤 후 병원에 도착했다. 다른 가족들은 아직이었다. 아빠는 볼 수 없었고, 아빠 친구분들을 만났다. 별 말 없이 기다리시던 응급실 대기실을 비워주셨다. 의사는 현재 CPR 중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정확한 상태는 확인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곧 언니가 왔다. 그 이어서는 이모가, 고모, 그리고 외삼촌이 들어왔다. 이모가 엄마의 손을 잡고 울었다.


병원에 온지 약 한시간쯤 지났나, 의사가 나와 아빠가 CPR을 통해 두 번 정도 호흡이 돌아왔으나 결국 상태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빠를 보러 들어가도 된다고 말했다. 아빠는 어떤 방 안에 표정 없이 눈 감고 누워 있었다. 아빠 볼을 만졌다. 조금 생기가 없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집에 가면 아빠가 있을 것 같았다. 끊임없이 눈물이 났지만 대성통곡하지는 않았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후로는 장례식부터 시작해서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슬펐지만, 엄마와 언니가 모든 순간에 함께 했다. 장례식은 피곤했고, 사람들이 와서 위로해주니 이게 진짜 현실이구나 싶기도 했고, 일부러 극히 일부 친구들에게만 소식을 전했는데, 그 친구들이 주변에 나와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같이 왔을 때는 이게 이 친구들한테는 경험이라서 온 건가? 싶은 예민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로가 되지 않는 구나. 아빠를 잃기엔 어린 나이어서 그런 짧은 생각을 했을지는 몰라도, 내가 진정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위로는 마음에 와닿고 정말 힘이 났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장례식장에 와준게 고마울 뿐, 그 이상의 위로는 되지 못했다. 장례식 기간이 아니면 펑펑 울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많이 울었다. 곡소리 나는 울음보다는 삼키는 울음이었다. 그래도 친척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견딜 만 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아직은 믿기지 않고 아빠 생각만 해도 눈물은 나지만, 이제는 혼자 삼킬 수 있을 정도의 슬픔이 되었다.


이 장례식에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친해진 친구가 왔었다. 내가 주변에 이 소식을 알리기 싫어서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더니 혼자 왔다. 나도 그 친구도 장례식은 잘 몰라, 대부분 사람들이 같이 온다는 사실을 몰랐다. 장례식 후에 와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힘들면 언제든지 털어놓으라는 말을 해줬다.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이 사람만큼은 진심같았다.


그래서 정말 정말 힘들 때, 내 슬픔을 표현할 곳이 없을 때 오늘은 아빠가 보고 싶네 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한 두 번쯤. 그 날 그 친구가 술을 마신 상태였다. 그랬더니 나한테 왜 이러냐는 말을 했다. 그리곤 다시 위로를 해주긴 했지만, 나한테 왜 이러냐는 말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그 때 깨달은 것 같다. 사람들은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위로를 참 쉽게 하고, 그 말들을 나는 순진하게 믿었구나. 그렇게 나의 슬픔은, 다른 곳에서 흔히 드러내지 못하는 금기시된 감정이 되어 버렸다. 원래도 친한 사람 몇 없는 내가, 정말 극소수의 친구들과만 감정을 교류하게 된 계기였다.


20살에 아빠를 잃은 스스로를 불쌍히 여겼는데, 사람들은 쉽게 날 불쌍히 여겼다가 또 쉽게 날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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