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어른이 된 걸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보자고 마음 먹은 건, 순전히 언니에 대한 질투심이었다. 나이가 20대 중반인데도 아직까지 언니를 질투하다니. 마음 한 켠에선 유치하다고 투덜대지만, 평생 나의 라이벌이면서 자랑이면서 부끄러움인 우리 언니가 곧 소설가가 될 지 모른다고 하니 존경스러움과 동시에 질투가 피어 올랐다. 나는 언니처럼 소설가는 되지 못할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감정에 깊게 공감하는 사람도, 특별한 소재의 영감을 마구 떠올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얘기를 하기로 했다.
2020년도에도 이런 바람이 불었었나 보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 그래서 언제 썼는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두 개의 글이 남았다. 어린 마음에서 쓰는 글, 디테일은 잊고 있었던 사건의 전달, 감정의 표현들이 어리숙하지만 그래서 그것대로 좋았다. 다시 그런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건 어디에 어떻게 표출해야 할 지 모르는 나의 감정들을 적어 흘려 보내는 것이지, 대단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글을 안 쓴 것은 아니었다. 짤막한 일기들을 쓰면서 내 감정에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항상 '감정의 정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 글은 대부분,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을 정의하는데 집중한다.
2023년이 거의 다 지난 올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올해는 내가 더 어른이 되는 한 해 였다. 내면의 성숙도가 올라갔다는 뜻보다는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 많아졌다는 지점에서 그리 말할 수 있다. 엄마의 지병을 처음으로 실감한 해였고, 집에서 독립해 나 혼자의 삶을 꾸려 나가야 하는 해였고, 나와는 무척 다른 성향의 친구를 만나 부딪히기도 한 해였다. 그리고 커리어적으로도 고민이 많은 한 해였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은 괴로웠다. 나는 엄마에게 의지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고, 엄마가 나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제일 먼저 달려가 조잘대던 막내딸은 이제 힘든 일은 쏙 빼고 가벼운 농담이나 나누고 건강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나와 제일 친한 친구였던 엄마와 조금 멀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출퇴근 왕복 3시간이 버거워서 시작한 회사 근처자취는 매일 수다떨던 저녁들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엄마와 나의 심적인 거리도 멀어졌다. 지난 번 엄마랑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다 마주친 알 수 없는 어색한 정적은, 그 어색함이 어색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친구의 성향이 나와 다르다는 점이 날 더 외롭게 만들었다. 나는 뭐든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성격이라면, 그 친구는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친구다. 내가 엄마라는 제일 친한 친구와 조금의 공간이 생기자 그 공간을 이 친구로 메우고 싶어했다. 이 친구는 부담을 느꼈고 그걸 표현하진 않았지만 사실은 말을 제외한 모든 수단으로 표현했다. 나는 결국 그 공간을 혼자서 눈물 흘리는 우울함으로 채워 버렸다.
커리어는 내 우울함에 한 몫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함을 걷어내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 나는 취업 이전의 내가 좋았다. 무엇이든 공부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이걸 보면 이것도 재미있어 보였고 저걸 보면 저것도 재미있어 보였다. 하루종일 공부해도 지치지 않았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무언가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면 프로그래밍이 천직인 줄 알았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1석 2조의 횡재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항상 '어떤 일이든 업이 되면 항상 즐거울 수가 없다' 라는 말로 나와 본인을 위로했는데, 그 말이 가장 와닿은 해였다. 퇴근하고 나면 컴퓨터를 쳐다 보고 싶지가 않다. 그냥 누워서 생각을 비우고 도파민에 절여지는 게 편하고 좋다. 이게 게으르다고 욕할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모두가 열심히 살 수는 없으니 나라도 균형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밤이 많아진다.
그리하여 오늘은 우울한 연말을 맞이했다.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자유보다는 간섭이 더 좋은, 어느 20대 중반의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애매한 연말이다. 전세집으로 이사했다며 부모님이 구해주셨다는 친구 하나 둘의 얘기를 들으며 한 없이 찌질해지는 연말이고, 자신의 오랜 연애가 너무 안정적이라 설렘이 없다는 또 다른 친구의 얘기에 옹졸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