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말 혁신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애플이 M1 CPU를 탑재한 노트북을 출시한 것입니다. 기존에 CPU는 인텔의 것을 쓰고 있었는데 애플이 자체 CPU를 만든 것입니다. 자체 CPU를 만들었다는 것에도 사업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기존 13형 Macbook Pro에 들어가던 Intel CPU 대비 Apple M1이 2.8배의 CPU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애플은 이를 통해 타 회사의 CPU에 의존해야 하는 종속성에서 벗어났습니다. 훨씬 더 많은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때문에 타 경쟁 업체들을 압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플이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당연히 이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사실 컴퓨터를 만드는 것과 CPU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컴퓨터는 여러 업체가 만들어 둔 부품을 조립하면 됩니다. 부품을 조립할 때에도 부품마다의 스펙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스펙을 체크해 가며 적절한 조합을 만들면 됩니다. (이 때문에 노브랜드 컴퓨터, 노브랜드 노트북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조립이니까요)
CPU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컴퓨터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고, 이 경우의 수에서의 오류는 곧 품질이슈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원래 CPU에 대한 경우의 수를 충분히 따지고 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는 기업에서는 자체 CPU를 만드는 것이 너무 리스크가 크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다고 바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텔이나 퀄컴 같은 회사는 이미 쌓아둔 지식 자산을 가지고 기술력을 더 강화시킬 테니까요.
최초의 애플은 모토로라의 CPU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모토로라가 출시한 CPU가 실패하고, CPU의 선택지가 사라지자 1994년 Apple, IBM, Motorola로 이루어진 연합이 CPU를 제작하여 Power PC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발열 문제가 생기자, Intel의 CPU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고, 발열을 잡지 못하는 문제로 컴퓨터 디자인을 완성시키지 못하자 내부적으로 Intel CPU를 탑재한 테스트를 진행하다가 2006년 제품부터 Intel CPU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늘 CPU의 문제로 컴퓨터 성능에서 제약을 받자 애플은 자체적으로 CPU를 만들고자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 결심은 2008년 P.A. Semi라는 반도체 회사를 인수를 기점으로 본격화됩니다.
이 과정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기업의 역할이니까요. 하지만 애플은 이 모든 과정을 조직의 지식 자산(Knowledge Management, Knowledge-Base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으로 축적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자산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두고, 그러한 지식을 활용했습니다. 1994년 CPU 연합과 함께 했던 지식, Intel에게 CPU 제작을 요청하면서 쌓은 지식. 그리고 이런 지식들이 반도체의 발전과 맞물려 M1이라는 자체 칩을 만드는 것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조직이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조직에서 했던 시도들, 실패들, 경험들이 모두 자산으로 쌓여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지식 자산이 쓰일 수 있는 적절한 시기에 이르러 그러한 자산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러한 지식 자산을 축적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실패는 실패에서 끝나며, 조직의 비용으로 조직을 떠날 수 있는 구성원 개인에게 지식 자산을 쌓아주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구성원이 떠나면, 조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텀블벅 펀딩을 준비하고 있는데, 2년 반 전에 했던 텀블벅 펀딩에 대한 자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하나하나 다시 해가고 있습니다. 당시의 담당자가 아직도 남아 있긴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여러 경우의 수를 다시 따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지식 자산을 축적했다면, 텀블벅 프로젝트 론칭을 계획했을 때, 그때의 경험에 비추어 준비 기간과 준비 내용 그리고 소요 비용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프로젝트 준비 기간을 정확히 책정할 수 없었고, 준비 내용 또한 준비를 하면서 이슈 사항을 새롭게 마주하다 보니 러프하게 잡아 둔 준비기간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단순히 창업을 '놀이'나 '장사'의 수준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된 순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우리 조직이 앞으로 겪을 모든 실패를 우리 조직의 자산으로 만들어두자는 것이었습니다. 노션과 컨플루언스, 아사나 등 여러 가지 툴을 활용해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저의 역량의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제가 원하는 형태의 지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또 장기적으로 이를 조직의 자산으로 데이터화시켜 활용하기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티키타카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여기에 이를 구축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조직원들이 마주하는 업무 이슈를 파악하고 그 당시의 해결 방향을 피드백의 형태로 정리해 두고 이를 업무 스프린트 목표와 프로젝트에 연결시켜 해당 프로젝트를 확인하면, 그때 당시 실패의 원인과 시도했던 해결책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애플도 처음엔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애플도 처음엔 텀블벅을 해봤음에도 다시 할 때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시간을 걸리고 있는 우리와 같은 상황을 겪었을 것입니다. 잡스도 매번 유사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진절머리가 났을 것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모든 이슈 사항을 남겨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생각에 닿았을 것입니다. 모토로라의 CPU가 실패하고 Power PC CPU 제작 연합을 만들었던 1994년이 IT 기업들이 지식관리시스템을 고민하기 시작한 1990년대와 맞물려 있다는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계실 많은 대표님들, 이사님들, 팀원분들도 스타트업의 시작에 함께하고 계실 것입니다.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데는 여러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유니콘이 대기업으로 지속하기 위해선 지식 관리 시스템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시스템의 지식에서 관련된 영역에서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발굴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티키타카 서비스를 통해 어떻게 지식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 더 구체적인 글을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궁금하시다면 언제든 저나 저희 티키타카 홈페이지에서 문의 부탁드립니다. 직접 찾아뵙고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오늘의 글은 가인지 캠퍼스의 '가인지 경영'이라는 책에 있는 '지식이란 재생산이 가능한 성과를 말한다'는 구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개월 간 가인지 캠퍼스의 필진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가인지 캠퍼스의 콘텐츠를 통해 도움 받고, 더 좋은 글을 통해 스타트업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