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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항해 안내자 Aug 07. 2021

그러니까 어디다가 파냐고요

달걀을 팔려고 돌아다니다

달걀에 자신감을 가진 선생님들은 전화통을 붙들고 달걀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는 아니지만 내일학교를 후원하는 다양한 분들도 함께 해주었습니다.

달걀을 하나하나 예쁘게 닦아서 포장한다고 매일밤 모여 있는 것이었죠. 


"나 채린. 잘지내?"

"어, 채린. 어떻게 지내? 너 무슨 봉하마을에 갔다메? 시골은 공기 좋지?"

"봉하가 아니고 봉화. 안동옆에 있어. 거기서 대안학교 해. 지난번에 말했쟎아,"

"아.. 그랬나? 지영이랑 헷갈렸나? 너 그럼 대안학교 교사야? "

"응.. 그렇게 됐어. 그런데 너 달걀 좀 사라."

"그러고 보니... 야 임마. 지난번에 고구마 판거. 그거 먹느라고 죽을 뻔 했어. 크기는 좀 커야 말이지. 그런건 맛탕이나 하는건데. 그전에는 뭐 야콘한다고 그러고. 그전에는 무슨  매실 사라고 그러더니. 이번엔 달걀이냐. 뭘 좀 끈질기게 해봐라. 좀. 그리고 교사래매? 너, 그러니까 정체가 뭐냐 농사하냐 교사냐? 애들은 몇명이나 되냐? 그리고 달걀을 무슨 수로 사냐. 다깨질텐데..."

"아 뭐 이야기하자면 복잡하고. 그냥 좀 사. 안깨지게 택배로 보낼께. 우리 달걀 맛있어. 우리는 풀을 주거든. 겨울에도 풀김치를 담가줘서 맛이 아주 그만이야."

"닭들이 풀을 먹냐? 모이를 안먹고?"

"무식한 자슥... "

대화는 보통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끝은,

"알았어. 한달에 일단 스무개만 보내 봐. 맛있으면 다른데도 소개를 해볼께. 근데 하루에 천개씩 쏟아지는데 이렇게 해서 언제 다팔래?"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 다팔래'가 저도 궁금했습니다. 하루에 천개. 죽자고 전화를 돌려봤자, 30명의 친인척들을 다 돌려봐야 한달 3만개를 소화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슨 영업사원도 아니고 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안학교 한다고 시골에 틀어박혀서 십수년인데 알던 네트워크도 많이 끊어졌습니다. 어쩌다 반갑게 전화를 해도 저쪽은 무슨 다단계 시작한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산 속에 풀어놓으니 닭은 건강한데, 동네 소문이 나면서 매들이 하루에 한탕씩, 족제비가 한탕, 쥐들도 또 한마리씩 헤치우는 바람에 손실도 무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가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 올리면 수수료도 적고, 주문도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으니 좋다면서 그쪽으로 판로를 개척해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래. 이거야. 하고 또 스토어에 올렸지요. 어떻게 됐게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학교 달걀은 검색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네이버 검색에 걸리려면 블로그를 해야한다고 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한번에 왕창사게 해서 네이버에서 매출을 올려야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 해봤는데 별반 효과는 없었습니다.


적자허덕허덕은 여전한데, 또 누군가가 군청에서 마케팅 지원사업을 하니 거기 지원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또 거기 지원을 했는데 선정이 되었습니다. 마케팅 비용으로 1천만원이 지원되었고, 그것은 그대로 온라인 마케터 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깔끔한 온라인 숍 디자인을 해주고 인플루언서를 고용했는데 이것도 무슨 타이밍이 있더군요. 인플루언서들이 일시에 올려서 일주일 되는 시간까지 얼마, 한달 되는 시간까지 얼마 매출을 올려야 검색순위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진짜로 검색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매출은 당연히 증가했습니다. 한 건도 없던 달걀 매출들이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싸!!!! 이제 되는건가?


이렇게 홍보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만 명확히 우리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지원 마케팅비가 효과를 낸 다음 한달간 매출이 증가하더니 그다음부터는 다시 지지부진해졌습니다. 왜? 왜? 왜!!!! 우리는 다시 머리를 싸맸습니다.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한달 천만원 쓰면 다 될 줄 알았나요? 한달 2천씩 일년은 해야지요. 고정적으로 우선 순위에 올려놓아야 그다음부터 돌아가는 겁니다. 겨우 한달 1천만원 써놓고 팔리기를 바랍니까?


끝이 없는 마케팅 투자. 매달 1천만원씩을 홍보비로 쓸 정도라면 우리같은 소규모 농장들은 버티질 못할텐데... 그러면 대규모 농장들만 살아남는 구조인가? 우리는 적쟎이 당황했습니다. 블로그, 인스타 열심히 해서 매출을 올리는 농부들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시골의 대안학교란 일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건물 수리도 많고, 사건 사고도 많고, 교사를 아이들 보모로 생각하는 학부모 응대하고, 둘러보러 오는 손님들 맞이하고 나면 지쳐서 컴퓨터는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우리가 문제인가, 우리는 달걀팔아서 먹고살려고 하는게 아니라 학교할려고 하는건데... 우린진짜 건강한 닭키우는데... 우린 진짜 좋은 달걀 파는데... 해봤자. 그건 우리 생각일 뿐, 우리는 닭장안 병아리였습니다. 


우리가 키우는 병아리만큼이나 순진무구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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