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어리랏다 Apr 01. 2022

알맹이가 꽉 차있다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허울뿐인 알맹이만 아니라면

1. 결국에는 가격으로 평가받는 직장생활


결국에는 가격으로 평가받는다. 상품을 판매하지만, 직장 안에서 나 또한 경영주가 돈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늦게 알았다. 내가 사람이라는, 어찌 보면 알량한 자존심만 버리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내가 모든 삼라만상을 알지 못하기에, 이것이 진실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겪어온 직장이라는 편협한 사회경험 안에서는 사람도 결국 본인의 가격에 얽매이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도, '너는 전 직장에서 이 정도 받았으니까' 내지 '너 연차는 보통 이 정도니까'라는 참 타당한 이유로 가격이 매겨진다. 사실 직장인(적어도 나는)에게는 그러한 이유가 그렇게 합당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그냥 주니까 받는, 그런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그것이 맞는 가격인지, 옳은 가격인지, 평균인지, 평균보다 높은 지 낮은 지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 수중에 들어오는 나의 가격이 얼마인지만 궁금할 뿐이다. 


지나치게 회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상품과 직장인은 정말 대부분 일치한다. 상품의 품질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비싼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가가 망할 수 있다. 반대로 상품의 품질이 그렇게 좋지 않음에도, 실생활에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가격을 아득히 뛰어넘는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들도 존재한다. 인력시장에서의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단 구매하면 정말 일을 잘하고 소위 말하는 성과라는 것을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학력, 배경, 전 직장 등의 자신의 표면적 브랜드에 압도 당해 제 가격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품질에 맞춰 팔려해도 사지 않는다. 내용물을 보려 하는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 그 반대의 종류는? 그 또한 많을 거라 예상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일을 그렇게 잘하지는 않는데, 같이 오랫동안 일한 동료직원들에게 들어 보면 알맹이가 그렇게 튼실하지는 않은데 높은 가격을 받고 팔리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기업에 들어와 실제로 성과를 못 내더라도 일단 높은 가격에 앉혀 놓는다. 나중에 별로 알맹이가 없다 하여 내보낸다 한들, 그러한 사람은 곧 잘 다른 부유한 집으로 팔려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럴까?


결국에는 사람도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이다. '내가 알맹이가 없다면 이야기를 만들어 마케팅해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알맹이가 있을수록 그것을 알리기 위해 더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이 이미지를 잘 만들어 일단 사용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놓으면, 언젠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갈 테니 말이다. 즉, 실력을 키움과 동시에, 그러한 실력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나오는 선명한 질문,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뭔데?"


없다. 명확한 방법은 없다. 제품마다, 산업마다 마케팅하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 개개의 상품으로 볼 수 있는 사람 또한 그 사람에게 맞는 셀링 방법이 존재한다. 이는 자신이 계속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지 책 또는 누군가의 조언으로 완벽히 체득할 수는 없다(물론 그 결과를 얻기까지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또한 언젠가 누군가 그러한 위대한 법칙을 찾아내 공표한다 한들 그것이 모두에게 적용될 리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알맹이가 건실한지 아닌지 그것부터 구분해야 하는데, 오로지 팔 생각밖에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알맹이만 좋아서는 안된다, 셀링 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셀링을 하려면 알맹이가 좋아야 한다. 말장난 같지만 이는 정말 중요하다. 알맹이가 없이 셀링을 하게 되면, 행운을 만나 단시간 반짝할 수 있지만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그에 대한 리뷰가 쌓이기 때문이다. 다른 제품군으로 비교적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구성품과 달리 내 몸 한 덩어리는 도대체가 내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요행만 바란다면 파국으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내가 만난 사람 시리즈> 첫 번째로, 알맹이가 좋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하지만 결국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날개를 단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2. 알맹이가 꽉 찬 사람


1) A의 첫 직장 :  고졸로 여기 온 것은 행운


A는 고졸이다. 고졸이 뭐가 대수냐고? 고졸로써 직장으로 성공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 말한다면 인정하겠다. 아니다, 그래도 인정하려면 꽤나 많은 대화가 필요할 듯싶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고졸로써 직장에서 인정받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예 기업 공채 이름 자체가 "대졸 공채"인 시대를 살아왔으니까. (아, 여기서 내가 말하는 것은 사업으로 성공한 고졸들을 싸잡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으로써의 고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A는 스스로 잘 풀린 케이스라 생각했다. 고졸임에도 그래도 업력이 긴 굴지의 중견기업에 들어갔으니 본인은 첫 시작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덤덤하게 나에게 말해주던 당시, A는 그 중견기업을 그만두고 이직한 상태였는데 직장생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때 고졸로써 직장에서 성공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아팠다.


그가 중견기업에서 일한 횟수는 9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에 섰기에 꽤나 준수한 수능성적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유통 중견기업에 들어갔던 그는 처음에는 점포로 발령이 났는데 그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고졸을 뽑아주는 기업이 어디 있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성과를 잘 내도 항상 붙는 '고졸 치고는 잘하네'. 절대적인 기준으로 봐도 다른 직원보다 확연히 차이가 나는 매출 성과를 보여도 그 조건문은 항상 따라다녔다고 한다. 오히려 본인들보다 성과를 내는 그를 보며 사람들이 연줄이 있는 것 아니냐 의심했다고 한다.


그는 현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IMF 세대 때와 같은 격무를 하며 본사 직원 눈에 들어 본사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점포에서 마지막 날, 그에게 동료들이 진심을 담아 한 말은 '빽이 누구냐'라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극적인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만 생각보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난다. 나와 당신이 있는 직장 안에서도 이러한 말들이 오가고 있을 수 있다. (물론, 바로 옆에서 말들이 날아다녀도 듣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그는 본사로 발령 나서 승승장구 했다! 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놈의 고졸이라는 꼬리표는 정말 셀 수 없이 쫓아다녔다고 한다. 5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나도 '고졸인데 이렇게 잘 풀린다는 것은, 여기에 오래 다닌 것은, 계약직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다 "행운" 이다' 라는 말들이 그의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갔다고 한다. 돈을 벌어야 되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다른 곳을 알아볼 여유조차 없이 부여되는 업무 속에서 8년 동안 그가 올린 연봉은 300만원.


비율이 나눠져 있는 S를 받아도, A를 받아도 그의 연봉은 20만원, 50만원, 기준을 알 수 없는 두 자리 수의 금액만 올랐다고 한다. 친해진 급여담당 회계팀 직원이 와서 연차에 비해 너무 낮다고 걱정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더 가슴 아픈 것은 그 두에 붙는 '다른 고졸들에 비해선 많다'라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 가족들의 부양을 마무리했을 때 심한 슬럼프가 왔고, 끝까지 '밖은 춥다, 여기니까 널 받아준다'라는 만류의 말을 들으며 그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2) A의 두 번째 직장 : 성과평가의 배신


취업시장으로 나온 A는 밖이 생각보다 춥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잡다한 일들을 닥치는 대로, 때로는 2인분, 3인분까지 했던 그가 채운 경력기술서는 삐뚤빼뚤 할지라도 튼실한 알맹이로 가득 차 있었다. 연차가 높으면 보이는 '정말 이 일을 했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알맹이들이 배열은 엉성할 지라도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경력기술서를 보고 그와 면접 본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를 통보했다. (A는 자신의 직전 연봉이 너무 낮았기에, 이 가성비 때문에 뽑은 기업도 상당할 것이라 하였다)


그중 A가 선택한 기업은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로켓 기업. 성과로 평가한다는 기업이었다. 전 직장보다 연봉을 그렇게 까지 많이 높여준 것은 아니지만(경력 년수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것은 동일하다) 그래도 많이 올려주었고 '우리는 퍼포먼스로 평가하는 기업이다, 이번 연도를 잘 넘기면 그에 따르는 보상을 해주겠다'라는 말에 속아 일로써 증명하기 위해 두 번째 기업에 입사하였다.


사세가 빠르게 확장되는 기업인 만큼 일도 그만큼 많았다. 프로세스는 없었고 일은 많았고 기대되는 것 또한 많았다. A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실제로 성과도 내었다. 짧은 기간 안에 무작정 밀어붙이라는 상부 지시를 맞추기 위해 평일 2~3시간 동안 자며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실제로 동료들도, 리더도 모두 그의 노고에 감사하고 성과를 공개적으로 축하했다. 그렇게 그는 한 자리 수의 연봉 인상을 통보받았다.


정해진 연봉 인상률은 없다. 성과에 따라 보상하겠다. 지금 연봉은 낮지만 성과로 증명하면 충분히 기회가 존재하는 곳이다. '성과 평가'라는 달콤한 말에 취해 입사했던 그는 여기서 한번 더 무너졌다. 뭐가 문제일까, 결국 그 지긋지긋한 학력 문제일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전 직장 연봉일까. 연봉 통보를 받은 이후, 그는 왜 연봉이 이렇냐고 말할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성과와 현재 연봉과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회사가 내린 결정이 이 정도이니까 말이다.


꽤나 경쟁력 있는 회사 두 군데를 다녔고, 실제 굵직한 프로젝트들도 많이 수행한 그였기에 타 직장에서의 오퍼는 이따금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직장에 대한 기대와 애정, 성과평가에 대한 행복한 상상으로 인해 거절하던 그였다. 이제 그는 거절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 정도, 기대도, 상상도.


그렇게 그는 유망기업에서 온 채용제의를 수락했고, 한 달 만에 이직했다.



3) A의 마지막 이직 : 확신의 오퍼


그가 가게 된 세 번째 직장은 면접이 치열하기로 유명했다. 무던하고 진중한 성격에 그는 말주변이 없어 장시간의 면접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했던 장시간의 면접은 오히려 그에게 큰 기회가 되었다. 많은 것을 물어봐도 멈춤 없이 나오는 그의 확신에 찬 대답. 완전히 프로젝트에 몰입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민들과 그에 대한 자신만의 방법. 장시간의 면접은 그의 알맹이들을 볼 수 있는 장을 만들었고, 그 알맹이들은 4차까지 이뤄지는 면접의 문을 하나씩 열어 나갔다.


나와 전화통화를 하던 그가 갑자기 멈칫했다. 


"오퍼 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정적. 처음엔 놀란 목소리, 그다음엔 울먹이는 목소리. 그가 받은 오퍼는 두 번째 직장 연봉액의 거의 1.7배에 육박하는 금액. 10년이 넘는 그의 경력과 실력에 어찌 보면 당연히 받았어야 할 오퍼에 그는 참으로 행복해했다. 


퇴사 의사를 밝힌 뒤 두 번째 직장은 그제야 부랴부랴 그를 잡기 위한 금액을 제시했다. 받은 오퍼에는 모자라지만 그래도 놀랄만한 액수. 처음부터 그 금액을 제시했다면 오히려 감사하며 더 열심히 했을 것이라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줄 수 있었으면서..."

 


3. 알맹이가 꽉 차있다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포도알 하나하나를 속 꽉 차게 준비하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한다. 잠시 구경만 하고 갔던 이들도 이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사람들이 포장에 속아 산 후 도로변에 퉤하며 내뱉는 신 포도보다는 그 말로가 훨씬 확실하다.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실력을 길러야 한다. A도 결국엔 그가 가진 실력으로 인해 뒤늦게 빛을 발한 케이스다. 그의 행복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심란한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알맹이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실력을 키워라"


너무나 많은 이들이 숨 쉬듯이 내뱉는 말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듣고 자신의 실력의 정의를 내리고 키우려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은 정말 희소하다. 나 또한 그러하다. 실력을 기르고 있다 생각하지만 결국 요행을 바라는 경우가 제법 있다. 지름길을 찾는 그 시간 때문에 더 늦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더 빠른 길을 모색만 하다 끝나는 인생도 얼마나 많은가.


알맹이가 꽉 차 있다면 기회는 온다. 기회가 올 때 확실히 잡을 수 있기 위해선 포장도, 마케팅도, 의사소통 스킬은 두 번째다. 첫 째는 제 알맹이를 제대로 키우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