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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0대 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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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어리랏다 Mar 23. 2023

열심히만 살면 안 될까

안될 듯 싶다

1.

오늘따라 유난히 지친다. 재택근무를 벗어나 오랜만에 1시간 넘게 걸리는 오피스에 출근한 탓일까. 몸은 지치는데, 생각해 보면 계획했던 업무들을 모두 끝내지도 못했다. 집에 가서 하겠다고 노트북을 들고는 나왔지만 그 노트북은 아직도 가방 속에 접혀있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정해진 프로젝트 일정에 맞추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가겠지. 예전에는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바쁘기만 한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다. 열심히와는 다른, 의식이나 의지가 들어가 있지 않은 정신없는 삶.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흘러가는 시간을 유튜브나 노래에 담아 떠내려 보내는 일상.


2.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 정신없이 사는 것, 목적 없이 사는 것.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열심히 산다"라는 말은 좋은 의미라기보다는 대상자가 노력만 하고 결실은 못 맺는 전제를 깊게 깔고 있는 것 같아 그리 긍정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여기서 결실을 맺는, 잘 산다는 것은 결국에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수도원에서 살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타인과의 자리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말한다. 


3.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나 많은 부자들과, 수만 가지의 부자가 되는 방법들이 깔려 있다. 말 그대로 여름철 해수욕장 바닷가 쓰레기처럼 아주 널려있다. 그중 쓸만해 보이는 것들을 정성스럽게 호호 불어 고이 주머니에 넣는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인데, 보물인 줄 알았으나 희망 속에 다시 주머니를 까보면 쓰레기만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살아가겠다 외치고 있으나 슬쩍 주위를 둘러보면 나처럼 죄다 쓰레기를 고이 모시는 사람들이다. 


4. 

열심히 살지 말고 잘 살라고 한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 한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열심히 하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발을 들이밀면 결국 나의 열심은 잘한 것이 되는 것인데, 내 열심을 결과로써 증명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이루어진 성정을 잘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데 모두 소진시키고 있으므로 매일매일이 고단할 뿐이다. 


5. 

나는 그냥 열심히 살란다. 열심으로 살다가 열심으로 죽을란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 따라 살란다. 애초에 다른 방향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넌 참 열심히 사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제시간에 잠자리에 눕기는 그른 인생인가 보다. 그냥 생각 없이 열심히만 살면 되면 좋겠다. 나의 모든 행동이 빚어져 나오는 내일을 기대하고, 그 기대 속에서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일상을 떠나 그냥 다가오는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적당히 하며 내 나름의 기준으로 열심히 살아나가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6. 

어찌 보면, 이러한 궁상은 처절한 자기 합리화로 비출 수도 있는데,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면 그럴 듯싶다. 내가 원했던 삶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는, 나의 열심을 결과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열등감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쫓기듯이 살아가면서 정작 나를 쫓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뒤돌아 볼 생각도 안 하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서 말이다.


7.

그냥 열심히만 살면 그만이었으면 좋겠다.

남에게도 증명하고, 나에게도 증명하는 하루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사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는 같지도 않은 이유가 아니라,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던 없던 그 따위 것은 생각일랑 하지 않고 그냥 내 나름대로 시간 소모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 하루하루 다르게 늙어가는 몸뚱아리 보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바라보고 싶지 않다. 내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걸어가고 있는 다리와 움켜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손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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