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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어리랏다 Nov 06. 2023

[사랑] 예상되어도, 예상되지 않더라도

문 너머 걸어나오는 너를 보며

이제 내려갈게, 이제 나가. 라고 말하는 너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그 새를 못참고 담배 하나 문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 10년이 넘게 물고 있는 이 담배는 주머니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담배 연기 너머 들리는 익숙한 너의 발끄는 소리. 터벅터벅 내려 오는 너가 신은 슬리퍼 소리.

현관 자동문이 열리면 왠지 귀찮은 듯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온다.


예상되었던 얼굴이지만, 막상 보니 더 반갑다.

그렇게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을 걸 지는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실로 더 반갑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순간 속에서도,

미처 대응하지 못할 불완전한 순간 속에서도, 

너의 얼굴을 느끼고 있노라면 항상 마음 속이 가득차고는 한다. 

너무 미워 죽을 것 같다가도, 그 안에 이상한 연민이 가득 들어차고는 한다.


20대와 같은 불같은 사랑의 감정은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서로 몸 부대끼는 것이 전부일 뿐이라도,

함께 나란히 산책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 찬다.


예상되어도, 예상되지 않더라도

갑작스러운 순간이 닥쳐도, 원치 않는 아픔이 올 지라도

걷다가 멋쩍게 내 팔뚝에 손을 끼고 걸어가는 너와 맞닿아 있다보면 

마음이 온통 따듯한 봄 꽃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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