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0대 궁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어리랏다 Jan 09. 2024

비둘기가 더 즐겁겠다.

1. 이 글은 왜 쓰나?

차라리 비둘기가 더 즐겁겠다. 구구구구. 꾸룩꾸룩. 실제로 더 즐거워 보인다.


지금 내 상황을 한마디로 정해보자면, "공(空)"이라 할 수 있다. 공! 0! 영! 비어있다. 그렇다고 허무하냐? 그건 아니다. 허무함과는 무언가 확실히 다르다. 오늘은 짧게나마 내 삶을 스스로 돌아보는, 다시 튀어 오르기 위한 회고를 해보려 한다. 


거창하게 회고라 써보고, 인생의 복기라 다짐도 해보지만 애초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오늘 아침 눈 내리는 거리를 걷다가 마주한 비둘기 때문이므로 그다지 큰 결심이 서서 적는 글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몰아치는 20대 후반, 30대 초를 향한 인생의 쓴 맛 폭격이 가히 엄청났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지금! 이 뒤죽박죽 되어 있는 마음속을 조금이라도 정리하고자 글을 쓴다. 


과거를 짧게 돌아보고, (2)

현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돌아본 후, (3)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정해보려 한다. (4)   




2. 나의 과거는?

나의 과거는 큼지막한 변곡점은 없었다. 치열하게 살아오긴 하였으나 무언가 계기가 있었거나, 한 번에 기억나는 변곡점은 없다. 굳이 정리를 위해 나눠 보자면 지금은 본격적인 경제생활을 하기 전과 후로 나누는 것이 적당할 듯싶다. 


(1) 본격 경제생활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나름대로 정한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 경제생활을 시작한 이후 대학을 거쳐 직장생활을 거칠 때까지 일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군대 휴가 나와서도 놀 돈이 부족해 하루는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뒤 그 돈으로 놀러 갔으니 정말 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본가와 멀리 떨어진 타지 대학에 일부러 가면서 나의 돈에 대한 환장*은 나의 생활습관이 되었다. 짧게 요약하면, 나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와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차근차근 투자하기보다는 눈앞에 바로 잡을 수 있는 돈을 손에 쥐려는 경주마 같은 삶. 그런 일상을 보냈다. 


다양한 전공과 체험, 아르바이트, 조교, 프로젝트, 공모전. 이 한 몸 불태울 수 있는 만큼 다양한 활동을 했고 나름대로 성취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분명히 그러한 활동을 하는 목표가 제각각이지만 꽤나 진솔하게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어느 것도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인생의 꼭 이루어야 하는 장기적인 목표는 가지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도 딱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내가 다음 행보를 결정할 때는 항상 나의 가치, 즉 돈으로 환산되는 나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도움이 되는지를 꼭 생각했었다. 물론, 최종결정이 항상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향으로만 간 것은 아니다. 자아실현 내지 성취감, 고양감이 더 드는 선택을 한 적도 많았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갈구하는 마음이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2) 본격 경제생활 후

감사하게도 경험 삼아 넣어 본 중견기업에 졸업도 하기 전에 합격했기에 취준생의 아픔은 없었다(그렇다고 사회생활을 빠르게 시작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2~3년 정도 취직이 늦었다).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한 후 나의 삶의 질은 꽤나 좋아졌다. 본가인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며 자취하는 남들보다는 빠른 속도로 돈을 모았고 커리어를 쌓으며 연봉과 목돈을 불려 나갔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펀드와 주식을 했었는데, 모으는 돈을 계속 주식계좌에 넣다 보니 그 금액이 생각보다 커졌다. 사회생활 1년 반 정도 지나가니 투자 순익 포함한 모든 현금자산이 5000만 원이 있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쓰고 싶은 것 다 쓰면서 현금이 이 정도 모인 것을 보면서 내 자신감은 탑처럼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탑은 결국 바벨탑이 되어 고꾸라졌다. 


구구절절 여차저차 이렇게 투자를 했다 저렇게 망했다 나열하는 것은 나의 정신건강에도, 또 지나가다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의 정신건강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에 짧게 요약하자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자 소탐대실(小貪大失)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그릇에 넘치는 물을 붓다 그릇이 쓰러져 깨져버렸고(과유불급), 조그마한 것 가져보려 아등바등하다가 벼랑으로 떨어져 버렸다(소탐대실). 제 몸 박살 나는지 모르고 제 눈에 환하게 보이는 전구를 향해 달려들다 결국 바스러지는 날벌레. 그 수많은 날벌레 중에 하나가 나였다. 쪼~~그마한 돈 쉽게 벌어보겠다고 현금 자산에 대출을 껴 죽음의 저글링을 아주 대담하고 대범하게 했다. 쾌걸 사내대장부가 여기 있었다(가 없어졌다). 안전망 없는 외줄다리 저글링은 역동적이고 스릴 넘치는 몇 가지 이벤트를 거치면서 용두사미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이 월급쟁이라는 말이 좋다. "월급의 노예", "월급은 마약" 뭐 유사한 말이 난무하는 시대이긴 하나 누군가는 월급을 주며 사회를 이루고 있고 또 누군가는 월급을 받으며 기분 좋게 살아가고 있는데 직장을 나오라 마라 하는 것은... 제안은 할 수 있으되 정답이라 강요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인생의 정답이 있냐 없냐는 관 뚜껑 닫을 때까지 모른다.  




3. 나의 지금은?

(1) 일단, 대출 빚은 거의 다 갚았다.

1년 보다 조금 더 됐을 때,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의식적으로 보게 되었다.*  전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오고 뒤이어 그것을 뛰어넘은 득도의 자괴감이 찾아왔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딱 이 한 문장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왜냐하면 그날을 기점으로 빚을 갚으려고 N잡, 부업 닥치는 대로 했기 때문이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틈날 때 부업을 하면서 시중에 나온 핫하다는 부업 시도는 정말 많이 했다. 한 달에 백만 원은 안되더라도 몇 십만 원 정도는 꾸준히 벌어 열심히 빚을 갚았다. 최근 퇴사를 하며 받은 퇴직금을 모두 올인하여 평균 이자율 연 6%의 고난도 대출원금 퀘스트는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다. 거의 안 남았다. 


*보려고 한 게 아니라 저절로 보인 거니 보게 된 것이 맞다. 


(2) 무직이다.

빚을 빨리 갚는 것이 목표였고 일단 돈을 벌어야 했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했다. 죽자 살자 했고, 그래서 빚을 거의 다 갚게 되었다. 빚이 별로 남지 않았을 때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가 장기간 업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에 접었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 현재 무직 백수다.  


(3)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는데, 지금 내 상태는 맨 처음 적어 놓았던 것처럼 "비어져 있는 상태, 공(空)"의 단계다. 그 어느 것도 행동으로 바로 옮기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하기 싫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데, 무슨 말이냐면 관심이 가고 흥미로운 것은 여전히 많지만 그~~ 렇게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한테 말해보니 번아웃이라고 하는데, 막 힘들거나 우울하거나 괴롭거나... 여타 일련의 부정적인 감정은 크지 않은 것을 보면... 아니, 그냥 이런 상태가 번아웃인가?  


결론: 나는 현재 모아 놓은 돈은 없고 무직이며 딱히 뭔가 계획은 없는 상태다.  



4. 앞으로의 계획

계획! 아 계획!!  


나는 매 년, 월, 주, 일을 계획 세우던 사람인데, 올해부터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 계획을 세울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명확하지 않은 지금 계획을 어떻게 세울 수 있나. 우리 가족은 매 년 서로의 계획을 말하는 시간을 갖는데 올 해 연말 모임에서 나는 "2024년은 계획이 없고, 당분간은 세울 계획도 없다"라고 말했다.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냥 아무 생각 없다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계획은 없을지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은 매일매일 치열하게 하고 있다. 현재 계획이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 어느 것도 할 수 있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하고 있다. 다사다난, "나"라는 세계를 뒤흔드는 재해들을 지나고 보니 방향이나 계획, 더 나아가 꿈을 정할 때에도 자신만의 신념 내지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야 즉흥적인 선택이 줄고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 그리고 그다음 내일을 하나씩 살아나갈 때 아래와 같은 신념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려 한다.   


[1] 기회는 세 번이 아니다. 수 천, 수 만이다.

기대 수명은 날이 갈수록 느는데, 왜 인생의 기회는 항상 세 번일까.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월급은 만년 동결인 현 세태를 꼬집는 명언 아닐까? 잘되면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고, 안되면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일까? 아니다. 나는 기회는 도처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잘 준비하고 열심히 찾다가 나와 꼭 맞는 기회들을 챙겨가면 된다. 기회는 수 천, 수 만이기에 꿈을 향한 도전은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다. 마음먹고 요행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나와 딱! 맞는 기회는 언제든지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다.   


[2] 내가 살아온 모든 하루는 경험이고 자산이다.

"성공할 때까지 하면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이 말은 너무나 유명한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우리나라 표현으로는 "기우제 성공률은 100%. 올 때까지 하니까"와 동일하다 볼 수 있다. 내가 살아온 하루는 성공을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선 기록과 복기가 필수적이다. 이 말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도전하자라는 다짐과도 연결된다.  

 

[3] 사람은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죽는다. 내일이 될지, 200년 후가 될 지, 당장 이 글을 쓰고 난 뒤가 될 지 시기만 다를 뿐 사람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다. 이 생가을 마음에 품는다면 인생이 나에게 제시하는 선택지를 바라볼 때 조금은 여유로울 수 있다. 한 번 사는 삶. 전생이 있다 한들 의미 없다. 기억도 안 나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저 억겁의 우연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소중한 생명의 불씨를 소모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이 생각을 마음에 품으면 모든 일에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게 된다.   


결론짓자면, 나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나가던 죽음이라는 끝을 마음속에 품고 여유롭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모든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들고 지금 하는 선택과 행동들이 결국 내일의 나를 만들 것이기에 여유롭지만 긴장을 풀지 않고 살아야 되는 것이다.  



5. 글 마무리

역시, 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다. 


하고 있던 모든 경제활동을 중지한 후, 단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불과 어제저녁까지도! 한데, 이렇게 글을 쓰고 정리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갈 기운이 생겼다. 생각은 역시 밖으로 꺼내 정리를 해야 실재하게 된다.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는다. 오늘도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써보려 한다. 


현재 나의 상태가 힘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실로 기복이 넘실대는 감정 속에 살고 있다. 앞서 적었듯이 오늘 아침 구구구구 소리 내며 거리를 누비는 비둘기를 보며 "차라리 네가 나보다 더 즐겁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그럼에도 고뇌하고 생각하며 나아가야지. 그게 사람인 걸...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걸... 


아 한 가지 진짜 명확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재미있다 생각하고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면 못한다. 지금까지 한 모든 선택이 그래왔다. 정말 너무!! 느어어어무 하기 싫은 일은 안했다. 회사에서 시켜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갔지 곧이 곧대로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잘만 살아지더라. 앞으로도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선택과 행동이라면, 좋아하는 일들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과 아픔의 조화로운 순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