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하루의 처음을 버티기 위해 붙잡은 건 책이었다.
24년 동안 일을 이유로 밀어내기만 했던 책이,
퇴직 후에는 나를 다시 붙잡아줄 줄 알았다.
처음엔 잘 될 것 같았다.
평균 이상의 독서량을 자랑하던 나였으니,
“이 참에 책 100권 읽어야지.”
그런 다짐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참 이상하다.
시간이 많아지니 마음이 흐트러지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니 오히려 의욕이 사라진다.
도서관에 나가보기도 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해지고,
혼밥하는 것도 괜히 불편해지고,
이유 없는 눈치가 하나둘 생겨났다.
결국 다시 집 서재로 숨어버렸다.
그러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이 집에 있어서 그동안 못한 대화도 좀 하고,
같이 어디 나가기도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왜 맨날 방에만 있어?”
그 말에 슬쩍 가슴이 찔렸다.
그날 이후로 책을 읽다 말고 일부러 거실에 나가서
말을 붙여보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독서 리듬은 끊어지고,
집중이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혼자 있어도 불편하고, 섞여 있어도 불편한…
묘한 시기였다.
그러다 어느 날 전자책으로
고명환 작가의 《고전이 답했다》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참 신기했다.
그 책이 나를 다시 흔들어 깨웠다.
문장이 술술 넘어가고,
고전의 지혜가 마치 지금의 나를 향해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책 말미의 문장.
“모든 존재는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
나 역시 이 우주에 필요해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그 필요에 맞게 살고 있는가?”
그 한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는 젊은 날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불태웠다.
미련맞게, 성실하게, 때론 무식하게.
그러다 ‘임원’이라는 이름을 달았을 때,
그 모든 날들이 보상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가 영원할 거라 믿었고,
꽃이 지는 시기를 알면서도 내 꽃은 예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은 예고 없이 온다.
내가 들었던 수많은 조언과 경고가
왜 그토록 멀게 들렸는지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까?
내 역할은 정말 여기서 끝난 걸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생의 계곡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계곡은 끝이 아니라 ‘다시 오르는 길’의 일부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바로 아하!의 순간이 오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나는 유난히 늦는 편이었다.
책의 내용을 잊어버리고,
마음은 흐리고,
머리는 둔해지고.
그래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읽다 보면, 또 읽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번쩍하고 켜지는 순간이 오겠지.
고전이 좋은 이유는
답을 주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니까.
그 와중에 외로움은 또 다른 얼굴로 찾아왔다.
“요즘 전화가 왜 이렇게 안 오지…?
핸드폰이 고장났나?”
먼저 퇴직하신 선배가 했던 말이
뒤늦게 가슴에 박혔다.
광고 문자조차 그리울 줄이야.
전화를 먼저 걸자니 괜히 상대가 불편해할까 걱정되고,
바쁘면 어떡하지,
안 받으면 나를 피하는 건가,
이런 바보 같은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약속이 많아 귀찮다며 피하던 내가
이제는 누구라도 불러주길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하루에 두세 번 약속이 잡히던 때가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그러다 불안한 마음이 일을 냈다.
모르는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다.
하나는 성공하고, 또 하나는 불안하고,
점점 금액은 커지고,
잠 못 이루는 날은 많아지고…
가장 두려운 건
“내가 틀린 선택을 해서
가족에게 짐이 되면 어떡하지?”
그 마음이었다.
조직에서 일하던 나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만만했고,
목표만 보며 달렸다.
주변의 상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적이 말해준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작은 배려 하나에도
마음이 찡하고,
하늘 한번 올려다보는 여유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과거의 나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조직에 최적화된 나’였지
진짜 나는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혼자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책 읽고 생각하며 고요한 시간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덮어두고
“활발한 임원”이라는 껍데기를 20년 넘게 쓰고 살았던 것이다.
고전이 주는 울림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변화는 극적일 필요가 없다.
천천히, 묵직하게, 깊어지는 쪽으로
나를 데려가면 된다.
오래된 톨스토이를 읽다가
갑자기 청국장 끓이던 어머니의 손길이 떠오르는 것처럼.
막혀버린 도로 한가운데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
순간 마음이 젖어드는 것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깎아내지만,
진짜 가치는 남긴다.
고전이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잠시 멈춘 지금의 시간도
언젠가 나를 더 깊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