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돌아오는 길

2편. 다짐이 무너진 날

by 윙크살짝

낯선 하루의 처음을 버티기 위해 붙잡은 건 책이었다.

24년 동안 일을 이유로 밀어내기만 했던 책이,

퇴직 후에는 나를 다시 붙잡아줄 줄 알았다.

처음엔 잘 될 것 같았다.

평균 이상의 독서량을 자랑하던 나였으니,

"이 참에 책 100권 읽어야지."

그런 다짐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서재에 꽂힌 책들을 봤다.

약 800여 권.

읽은 책도 있고, 안 읽은 책도 있고,

반만 읽은 책도 있었다.

'이제 시간 많으니까 다 읽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첫 일주일은 괜찮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서재로 갔다.

책을 꺼내 펼쳤다.

집중이 잘 됐다.


한 권, 두 권.

'이거 괜찮은데?'

하지만 사람은 참 이상하다.

시간이 많아지니 마음이 흐트러지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니 오히려 의욕이 사라진다.

둘째 주부터 책이 안 읽혔다.

펼치면 졸렸고, 읽으면 딴생각이 났고,

집중하려 하면 핸드폰을 보게 됐다.

'왜 이러지?'

집에서 안 되니 도서관에 나가보기로 했다.

오전 10시, 도서관에 갔다.

평일 오전 도서관은 한산했다.

시험준비하는 ㆍ학생 몇 명, 나이 드신 분들 몇 명.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런데...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해졌다.

점심시간이 되니 더 어색했다.

혼밥 하는 것도 괜히 불편했고,

이유 없는 눈치가 하나둘 생겨났다.

'왜 나 혼자 여기 있지?'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은데...'

결국 다시 집 서재로 숨어버렸다.

그러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이 집에 있어서 그동안 못한 대화도 좀 하고,

같이 어디 나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다닐 줄 알았지...

그런데 왜 맨날 방에만 있어?"

그 말에 슬쩍 가슴이 찔렸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집에 있었지만,

늘 서재에만 있었다.

아내와 대화도 안 하고, 같이 나가지도 않고.

그날 이후로 책을 읽다 말고

일부러 거실에 나가서 말을 붙여 보기도 했다.

"뭐 해?"

"응, TV 보고 있어."

"아, 그래..."

그러면 다시 독서 리듬은 끊어지고,

집중이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혼자 있어도 불편하고,

섞여 있어도 불편한...

묘한 시기였다.

한 달이 지났다.

읽은 책은 몇 권이었을까.

10권? 15권?

100권은커녕 한 달에 10권도 못 읽었다.

'이게 뭐지?'

회사 다닐 때는 바빠도 책을 읽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은 많은데 책이 안 읽혔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회사 다닐 때는 책 읽는 시간이 '귀했다'.

바쁜 와중에 틈을 내서 읽으니까,

그 시간이 소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책 읽는 시간이 '흔했다'.

언제든 읽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읽지 않게 됐다.

그리고 또 하나.

회사 다닐 때는 누군가 나를 '끌고 갔다'.

회의, 보고, 결재, 미팅.

그 틀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나를 끌고 가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그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서재에 혼자 앉아 있었다.

책장을 봤다.

800여 권의 책들.

'다 읽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막막해졌다.

그래도...

책을 놓을 수는 없었다.

책이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으니까.

비록 하루에 한 페이지밖에 못 읽어도,

한 줄밖에 기억 못 해도.

그래도 책을 펼치는 것.


그게 나를 지탱하는 방법이었다.


"고전이 건넨 한 문장"


그러다 어느 날,

전자책으로 고명환 작가의

《고전이 답했다》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참 신기했다.

그 책이 나를 다시 흔들어 깨웠다.

문장이 술술 넘어가고,

고전의 지혜가

마치 지금의 나를 향해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며칠 동안 책이 안 읽혔는데,

이 책은 달랐다.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이 책은 왜 이렇게 잘 읽히지?'

그리고 그 책 말미의 문장.

"모든 존재는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


나 역시 이 우주에 필요해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그 필요에 맞게 살고 있는가?"

그 한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는 필요한 존재인가?'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 다닐 때는 필요한 사람이었다.

팀이 나를 필요로 했고,

조직이 나를 필요로 했고,

협력사가 나를 필요로 했다.

"상무님 결재 부탁드립니다."

"상무님 의견 주세요."

"상무님 없으면 안 됩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젊은 날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불태웠다.

미련 맞게,

성실하게,

때론 무식하게.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휴가 때도 전화받고.

그러다 '임원'이라는 이름을 달았을 때,

그 모든 날들이 보상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가 영원할 거라 믿었고,

꽃이 지는 시기를 알면서도 내 꽃은 예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은 예고 없이 온다.

내가 들었던 수많은 조언과 경고가

왜 그토록 멀게 들렸는지 지금은 알 것 같다.

"임원생활 생각보다 빨리 끝나요."

"퇴직 준비 미리 하세요."

"2막 인생 생각해 보세요."

다 들었다.

하지만 남 얘기 같았다.

'나는 아닐 거야.'

'나는 다를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똑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까?

내 역할은 정말 여기서 끝난 걸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생의 계곡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계곡은 끝이 아니라

'다시 오르는 길'의 일부다.

지금 내가 계곡에 있는 거라면,

이제 다시 올라가면 된다.

어디로?

어떻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 것.

고전이 좋은 이유는 답을 주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니까.

《고전이 답했다》는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필요에 맞게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이 나를 흔들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바로 아하! 의 순간이 오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나는 유난히 늦는 편이었다.

책의 내용을 잊어버리고,

마음은 흐리고, 머리는 둔해지고.

그래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읽다 보면, 또 읽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번쩍하고 켜지는 순간이 오겠지.

오래된 톨스토이를 읽다가

갑자기 청국장 끓이던

어머니의 손길이 떠오르는 것처럼.

막혀버린 도로 한가운데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

순간 마음이 젖어드는 것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깎아내지만,

진짜 가치는 남긴다.

고전이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잠시 멈춘 지금의 시간도

언젠가 나를 더 깊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책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