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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피 May 25. 2022

색 찰흙

  요즘 네 살배기 딸아이는 찰흙 놀이에 푹 빠져있다. 색 색깔의 찰흙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몰락거리며 본인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간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이건 눈사람이고 이건 아이스크림이야’라고 제법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는 딸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을 수 없다.     


  어리지만 신중한 성격의 딸은 여러 가지 색깔의 찰흙을 쓸 때에도 함부로 색을 섞는 일이 없다. 특히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은 꼭 분홍색으로만 남아주기를 바란다. 엄마의 욕심으로 다양한 색을 섞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길 바란 적도 있다. 하지만 넌지시 제안을 할 때면 오히려 마음을 다잡는다는 듯, 한 가지 색을 다 쓰고 나면 다른 색을 꺼내기 전에 다시 통에 담아 뚜껑을 닫아두곤 한다.


  어쩌다 실수로 다른 색의 찰흙이 섞여버리면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쉽지 않다.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찰흙은 처음에는 서로 돋보이려는 듯 한 덩이 안에서도 각자의 색을 뽐내지만 이내 서로 치대고 뭉그러지고 구르다 보면 하나의 색으로 융합이 되어버린다. 몸집도 전보다 커지고 완전히 달라진 색으로 재탄생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최근 새로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도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새로 만난 친구들 중에는 노란색을 띠고 있는 친구도 있고,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의 친구들도 있다. 아직 어려 새하얀 색을 띨 것만 같은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는 건 흥미롭다. 하긴, 같은 배에서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둘째가 갓난아기 때부터 제 누나와 달라도 한참 달랐던 걸 보면 자신만의 색깔은 타고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각자의 색을 뽐내다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아이 고유의 색과는 다른 색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친구의 말투를 따라 하고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원래의 성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면 처음에는 그것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항상 보던 아이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아 낯설게 느껴진다. 이내 새로운 색으로 빚어진 아이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가장 친한 친구인 남편과 말투나 행동이 많이 비슷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벌써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며 서로를 서로의 색으로 물들였고, 그건 마치 엉켜버린 두 가지 색의 찰흙 같다. 처음엔 두 색의 대비가 뚜렷해 좀처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다.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말이나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때로는 신기했고 때로는 당황스러웠다.      


  눈앞에 어질러진 물건은 그 자리에서 바로 치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내가 청소는 주말에 몰아서 하기를 원하는 남편과 타협점을 찾기란 결혼을 되돌리는 것보다도 어렵게 느껴졌다. 한 사람이 포기하고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음에는 규칙을 정해 보기도 하고 한쪽이 다른 쪽을 위한 일방적인 양보를 강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달라진 우리를 보게 되었다. 남편의 색으로 물든 나와, 나의 색으로 물든 남편의 행동은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더 이상 타협점을 찾으려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곳에 도달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취향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집이 가장 좋은 집돌이였다. 그에게 여행이란 힘들고, 귀찮고, 기회비용이 큰 사치스러운 취미였다. 반면 나는 조금이라도 멀리 가기 위해 가진 돈을 모으고 모아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 기차에서 잠을 때우는 배고픈 여행자였다. 학생일 때의 우리는 방학마다 바다와 대륙을 사이에 두고 지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되 강요하지 않는 것이 그 시절 우리의 타협점이었다. 세월을 돌고 돌아 찾은 현재의 타협점은 함께하는 여유로운 여행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며, 이동을 최소화하고, 동네의 맛집을 탐방하는 것을 주된 하루의 일과로 삼는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변화는 가위로 도려내듯 깨끗하게 잘릴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려 어디까지가 원래의 나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사람의 영향인지 구분 짓기 힘들다. 남편이 아니었어도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곁에는 늘 그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자아가 완성되기 전인 어린 시절 만난 상대가 주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과, 어엿한 성인 대 성인으로 만나 완성된 서로에 더해져 바뀌어 나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인지도 모른다. 자아라는 커다란 탑을 쌓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지탱해 주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모여 나를 지탱해 주기도 한다. 서로의 절대적인 영향력 속에 그 시간 나를 만든 인연들을 빼고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 때의 나를 완성시킨 이들이 더해져 지금의 길로 이끌려 왔다.     


  여러 인연들과 함께한 일련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나를 다른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물론 모양도 바꿔 놓는다. 새로운 색이 더해지기도 하고 같은 색이 반복적으로 입혀지며 점점 진한 색채를 띄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차별화된 고유의 색을 갖게 된다. 마주한 인연과 경험이 녹아내려 남겨진 발자취만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 과정 속에 나라는 사람이 완성되어 간다.


  예순 즈음의 배우자의 모습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새 남편에게 물들어온 나의 색이 꽤나 마음에 든다. 자연스럽고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물들여 갈 것이다. 두 가지 색의 찰흙이 섞여 조화를 이루듯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물든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제와는 다른 빛깔의 오늘과, 앞으로 물들게 될 새로운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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