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가 생각하는 외계인 침략
외계인이 있나요?
천문학도로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바로 이거다.
그나마 '별자리 운세' 어쩌구... 하는 질문이 아닌 게 어디냐마는, 이 또한 당혹스러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공식적인 천문학계의 입장이지만, 답은 "우리도 모른다".
'외계인이 있다고 믿나요?'라는 질문도 곤란하다.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 해줄 수는 있지만, 과학자는 관측된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적 믿음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외계인의 존재를 상정하고 연구를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은 바람에 불과하며, 그 어떤 답변도 사견에 불과하다.
아직은, 아직은 모른다.
대중매체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천문학적 소재는 외계인일 것이다. 가장 고전적인 스타트랙, ET, 콘택트를 넘어서 트랜스포머, 토이스토리, 마블 영화 등의 영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에서 소개된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은 이미 흔하다 못해 클리셰가 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여타 SF가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확장되었다는 특징을 가지는 것과 다르게 외계인이 등장하는 작품은 그 시작부터 제작자의 상상의 한계를 시험한다.
외계인은 어떻게 생겼는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소통하는가?
자가용(?) 우주선은 있는가?
지구의 생명체와 같이 탄소 대사를 하는가?
화장실은 가는가? 매일 가야 하는가?
지구를 침략하러 왔는가?
인간과 소통 가능한 수단을 갖고 있는가?
일부는 외계인이라는 생명체 그 자체에 대한 지식적 물음이지만, 일부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생존의 부림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 인간밖에 없다면 그것은 크나큰 공간 낭비다(feat.칼세이건)"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면 어떡하지?' 따위의 위협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지구 내에서 새로운 종을 찾기 위해 탐사하는 생물학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에 대한 경고를 하진 않는다. 물론 곰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이 생물학자를 해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인류 전체에 대한 위협은 아니니까.외계인이 정말 지구를 침략하러 올까? 그것이 외계인에게 가치있는 일일까?
익명의 외계 종족이 고도로 우주 여행 기술을 가져서 지구로 올 수 있다고 해보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4.39광년 떨어져 있는데, 이 말은 지구에서 그 별까지 빛의 속도로 4.39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지구로부터 10광년 이내에는 외계인이 살 수 있을 만한 별이 3개(알파 센타우리 A, B, 시리우스)밖에 없다. 그러니까 적당히 가까운 거리인 20광년 정도에 외계 종족이 산다고 하자. 우주에서 이 정도 거리는 옆 동 아파트에 사는 엄마 친구네 집 까지의 거리 정도다.
외계인 청년 알랄라 씨는 윌리윌리 종족의 천문학과 대학원생이다. 최근 '침략할 만한 행성찾기'라는 국책 사업을 맡게 되었다. 알랄라 씨는 아주 신이 나서 하루 20시간 씩 일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알랄라 씨는 아주 훌륭한 천문학자이고, 윌리윌리는 아주 훌륭한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라는 것이다. 알랄라 씨는 윌리윌리 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100개 정도의 목록을 뽑고 각각 관측을 했다. 흐린 날을 제외하고 매일 열심히 관측과 데이터 분석을 한 알랄라 씨는 식 현상을 이용해 1년 만에 모든 별의 행성 개수를 알아냈다. 식 현상은 쉽게 말해서 전구 앞에 벌레가 알짱거리면 빛이 가려지는 것처럼 별 앞에 몇 개의 행성이 돌아다니는 지를 세는 방법이다. 알랄라 씨가 관측한 별에는 평균 5개 정도의 행성이 있었다. 이제 이 행성들에 생명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각 행성을 정밀 관측했다. 알랄라 씨는 끼니도 거르면서 열심히 관측과 데이터 처리를 한 끝에 5년 만에 물이 있는 행성 하나를 찾아냈다. 약 20광년 떨어진 푸른 색의 행성이었다. 안타깝게도 알랄라 씨는 과로로 사망하고 만다.
애국심이 넘치는 청년 삐로롱 씨는 푸른 행성 탐사대에 지원했다. 고 알랄라 씨가 발견했던 푸른 행성에 생명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탐사였다. 최신형 우주선은 무려 0.1c (빛의 속도의 0.1배)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 참고로 0.1c = 30,000 km/s 인데, 지구에서 가장 빠른 제트기의 속도가 2km/s 정도이다. 이제 삐로롱 씨가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200년의 시간이 걸린다. 지구에 침만 뱉고 돌아와도 왕복 400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일단 삐로롱 씨가 살아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안타깝게도 삐로롱 씨는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2.795km를 뛰고 사망한 그리스 병사처럼 '지구에 생명이 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사망한다.
삐로롱 씨가 돌아온 지 약 10년 쯤 후, 윌리윌리에서는 지구를 침략하기 위한 군대를 파견한다. 200년을 열심히 날아가서 핵폭탄을 3개 쯤 터트린 후 다시 돌아온다. 역시 침략에 400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탐사대도 모두 사망한다.
이제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지구로의 이주를 준비한다. 이주를 하면 200년이 지나기 때문에 우주선에서 삶의 반을 보내야 하지만 (지구인으로 따지만 50년을 자동차에서 지내는 것) 무언가 가치있는 일이지 않을까 믿으며 우주선에 몸뚱아리와 200년 치 식량을 꾸겨 넣는다.
이렇게 아주 러프하게, 심지어 윌리윌리 들에게 친절하게 계산을 해도 최소 1+5+400+10+400+200 = 1016년이 지나야 지구를 침략하고 이주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알랄라 씨는 아주 운이 좋았는데, 지금까지 30년간 나사에서 발견한 별이 4100개, 행성이 5500개 쯤 되는데도 물이 있을 만한 변변찮은 행성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가 더 멀리 있었다면 발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우리 천문학자보다 훨씬 좋은 관측 기술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실제로는 혼자서 1년 내내 좋은 망원경을 끼고 있을 수 없다. 다른 천문학자들도 관측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윌리윌리 종족의 수명이 400년 이상이어야 한다. 만약 지구로부터 20광년보다 멀리 떨어진 별에 사는 종족이라면, 그 거리만큼 더 오래 살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윌리윌리들이 지구를 침략하려면 1000년 +a 와 4세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윌리윌리들은 이 긴 여정을 시작할 것인가? 정부는 계속해서 이 사업을 지원해줄 것인가? 1000년이면 신라도 세워졌다 사라졌을 시기인데, 윌리윌리들의 국가와 종족은 건재할 것인가?
이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서 굴린 알랄라 씨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당장 내 몸 하루 건사하기도 힘든데 뭘. 그리고 여생동안 천천히 외계행성 탐사를 할 생각을 하며 점심으로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