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가 가고 싶은 평행세계
!!WARNING!! 이 글은 50%의 과학과 50%의 뇌피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일 하세요?"
처음 본 사람과 으레 하는 호구 조사에서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항상 먼저 경고를 한다. 저에게는 두 가지 금기어가 있는데요, 하나는 '외계인이 있나요?'고 다른 하나는...
"평행 우주가 있나요?"
- 이 질문을 백천만 번 들은 천문학도의 회고
물론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듣고 싶어 하는 답이 있다.
"네, 어쩌면 평행 세계의 당신은 다른 직업을 가졌을 수도 있고, 돈이 더 많을 수도 있으며,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을 수도 있어요. 과학이 발전하면 언젠가 평행 세계에 가볼 수도 있겠네요!"
따위의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답변 말이다.
시작부터 초치고 싶진 않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평행'이라는 단어는 "나란히 있어서 아무리 연장해도 만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노력을 해도 그렇다면 평행 우주는 무엇이 평행인 걸까?
우선 우리의 우주와 시공간적으로 평행할 것이다. 그말인 즉슨 세계 3차 대전 이후 멸망한 평행 우주의 내가 우리들에게 경고를 하러 건너올 수도 없고, 내가 평행 우주에 놀러가 미래 기술을 탐험하고 올 일도 없다.
타임라인이 우리 세계와 같다는 보장도 없다. 어떤 평행세계에서는 아직도 공룡이 치고박고 싸우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세계에서는 이미 인간이 멸종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정보의 전달 역시 평행하다는 점이다.
우리 세계에서 가장 주요한 정보의 습득은 시각적 정보 전달로 이루어진다. 저기 100m 밖에서 화가 난 교수님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면 우리는 시각적인 정보를 습득해 '튄다'라는 액션을 취한다. 여기서 '교수님이 다가온다'라는 시각적 정보가 '빛'을 매개로 해 나에게 도달한다. 반면 어떤 평행 세계에서 교수님이 아무리 대학원생인 당신을 괴롭히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 데미지를 받지 않는다. 교수님이 날뛰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정보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평행세계와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고 하자. 예컨대 양자 터널링 어쩌구....같은 원리로 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평행 세계의 아무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훔쳐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평행 세계에서 당신의 대응물(counterpart)을 찾을 수 있을까? 즉, 다른 세계의 나를 찾아볼 수 있을까?
평행 세계를 들여다 본 당신은 영혼의 반쪽을 찾기 위해 온 지구를 샅샅이 살펴본다. 먼저 당신은 현재 집 주소와 직장, 그리고 평소 동선을 확인해본다. 아무 곳에서도 당신의 모습을 찾지 못하자 실망을 하는 잠시, 이사를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그 다음에는 초월적인 속도로 한반도에 사는 5천만 국민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당신과 같은 이름, 소속, 성격을 가진 사람은 커녕 똑같이 생긴 사람조차 찾지 못했다. 아, 혹시 해외 유학이나 파견을 나간 걸까? 하지만 전 세계를 아무리 뒤져도 천재이거나, 부자이거나, 다른 직업을 가진 당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신이 기대했던 평행 우주의 '나'는 어디로 가버린걸까?
우리는 확률이 마치 이산적(discrete; 불연속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확률은 연속적이다. 당신이 여자, 또는 남자일 확률이 겉보기에는 1/2 처럼 보이지만, 부모의 유전 형질, 건강, 잉태 환경 등 수많은 우연과 확률의 연속으로 결정된 산물이다. 당신의 키가 170cm라고 해도 다른 세계에서 당신의 키는 150cm에서 190cm 중 랜덤한 숫자가 될 수 있고, 당신의 허리 사이즈 또한 25인치에서 30인치 사이의 랜덤한 숫자가 될 수 있다. '김자라'라는 이름을 가진 미생물일 수도 있는 한편, 인간이 (영화 아바타처럼) 파란색의 피부를 가진 3미터 짜리 거인일 수도 있다. 당신이 기대한 의사나 법조인 같은 직업이 인류사에 출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지구라는 행성이 태양계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다른 세계의 당신이 당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확률, 우리와 같은 시대와 같은 배경에서 살아갈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물론 0에 가깝다는 것은 확률이 0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의 관습이고, 실질적으로는 0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처피 평행 우주가 있던 없던 우리는 그 존재를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오히려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평행 세계의 나는 세상의 모든 굴레를 던져 버리고 띵가띵가 놀면서 베짱이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