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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훈 Aug 19. 2021

블레이드 러너: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feat: 고전에 흥미 없는 당신에게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인류 역사에 무수히 던져진 질문이다. 인간들은 과거부터 자신과 다른  집단을 차별해 왔다. 이는 인간이란 종족이 살아가는 방식 같은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 여성 차별 등 사람들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존재라면 그들을 자신과 다른 더 낮은 존재로 규정하고 차별해왔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남미 원주민들을 발견하고 한 일을 알고 있는가? 그들은 원주민들이 그들이 믿는 종교(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 규정하며 학살했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시작했다. 종교를 통해 자신의 집단을 타집단과 달리 선택된 집단이라 생각하거나 다른 집단을 진정한 인간이 아니라고 바라보면서 인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오면서 이는 거의 사라졌지만 미래에는 이 질문이 또다시 그것도 더 큰 문제로 다가올 예정이다. 바로 안드로이드란 존재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란 인간을 닮고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로봇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 A.I에 나오는 데이빗이나 에이리언 시리즈에 등장했던 데이빗 8 등이 있을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최대한 도울 수 있게 인간과 비슷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매우 흡사하며 몇몇 부분에선 우리를 뛰어넘기까지도 한다. 또한 인간과는 출생방식또한 달라 많은 논쟁을 부를 것이 분명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소개하지 않고 이런 서론을 길게 한 이유는 블레이드 러너가 이 안드로이드란 존재를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러한 안드로이드들을 과연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아야할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작품은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으로 영화에는 아이 로봇, AI 등이 있을 것이고 TV프로그램에는 그녀, 안드로이드나 플라스틱 메모리즈 등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앞서 말했던 작품들과 꽤나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단순히 나온 년도의 차이라면서 그저 일찍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블레이드 러너를 높게 평가하는 것 만은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특유의 미장센과 여러 절묘한 극적 장치, 무엇보다도 인간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어떻게 인간을 규정했고 또 어떤 미장센들을 보여주었는지를 한번 분석하겠다.

 

여기서부터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스포가 담겨져있습니다. 단순 소개글은 윗부분까지니 주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을 본 사람이라면(파이널 컷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 판본을 말한다. 이전에 나온 극장판과는 큰 차이를 갖고 있다.) 궁금해할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릭 데카드의 정체와 종이로 접은 유니콘의 의미이다. 사실은 레플리칸트이며 자신이 처리해야하는 레이첼과 함께 도망가기 전 데카드는 바닥에 떨어진 유니콘을 발견한다. 이는 데카드의 꿈에도 등장했던 유니콘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데카드가 레플리칸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추측은 할 수 있으나 확신은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 사실을 관객들이 확신하지 못하도록 연출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데카드가 레플리칸트임이 확실하게 밝혀진다면 영화의 주제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레플리칸트들의 대장 로이와의 전투씬으로 가보자. 이 때 마지막에 로이는 데카드를 구해주고 수명이 다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장면을 개인적으로 해석하자면 레플리칸트였던 로이가 인간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태것 자신의 수명을 뛰어넘는 것만이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만 생각해 계속해서 사람들을, 자신의 창조주였던 타이렐마저도 죽였던 로이가 데카드를 살려줌으로서 타인에게 공감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인간임을 깨닫고 데카드를 살려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이는 마지막 죽기 직전에 데카드를 살려줌으로서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데카드가 레플리칸트임이 영화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면 로이가 데카드를 살려주는 이 장면이 단순히 자신과 같은 레플리칸트여서 살려주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감독은 직접적으로 데카드가 레플리칸트임을 밝히지 않고 간접적으로 레플리칸트일 가능성이 있다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나타낸 것은 아닐지.


 나는 데카드가 로이에게 구원되고 나서 하는 행동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데카드는 로이에게 구원받고 나서 자신이 퇴역(살해)해야할 레이첼을 데리고 도망친다. 자신의 일까지 버리면서 레이첼을 데리고 도망친 이유에는 사랑,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로이에게 구원되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본다. 로이에게 구원받으면서 데카드에게 변화가 생긴 것이다. 영화는 로이를 인간 중심의 사회의 종말을 가져다줄 존재이면서 더불어 데카드와 레이첼처럼 인간과 레플리칸트의 새로운 관계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레플리칸트와 인간이 대립하는 세계가 될 것인지, 아니면 레플리칸트와 인간이 서로 화합하는 세계가 될 것인지는 영화에서 보여주지는 않으나 그것은 영화의 주인공 데카드의 선택, 즉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이는 데카드를 구해줌으로써 데카드에게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로이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꿈으로서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해 내었다. 그리고 이 영향은 계속해서 다른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면서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그 물결은 파도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은 로이의 그 작은 행동 하나이다. 로이는 수명이란 유한성을 행동을 통해 극복해낸 것이다. 바로 타인을 구하는 이타적이면서 인간적인 행동 하나로. 과연 이런 로이를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을 구분짓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수명이나 생물학적 정의 등이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는 강조한다. 인간을 구분짓는 것은 아주 작은 이타적인 행동 그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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