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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20. 2021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O 트레킹을 시작하다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3, 토레스 델 파이네 O 트레킹

12월 6일(트레킹 1일 차)


아침을 먹고 기내용 가방은 호스텔에 맡기고 당일로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간다는 같은 방에 묵은 젊은 일본 여자와 택시를 같이 타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7시에 도착했다. 터미널 안은 거의 대부분 여행객들이었고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버스들은 비슷한 시간에 여러 대가 떠나는 같았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Torres del Paine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사무소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렸다. 모든 버스는 아마르가 호수 Laguna Amarga옆에 있는 국립공원 입구 사무소 앞에 멈추었다. 모든 여행객들은 내려서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고 안내 비디오를 시청해야 했다. 비디오는 산불에 관한 것으로 몇 년 전에 여행객의 실수로 산불이 나서 공원의 일부가 타버렸고 하면서 산불을 내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입장료는 당일로 보고 가던 며칠씩 트레킹을 하던 동일한 가격을 내야 했다. 하루만 보고 가겠다고 내기는 좀 비싼 것 같았다. 같이 갔던 일본 친구는 예약을 안 하고 왔는데 예약이 다 차서 예약이 안되어 그냥 당일로 보고 갈 거라고 했다. 입장료를 받는 직원이 며칠 동안 있을 건지 숙소는 예약을 했는지 확인을 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트레킹 코스는 길이에 따라 Q, O, W라는 이름라고 부르는데 이는 각 루트의 모양을 딴 이름이다. 가장 많이 하는 W 코스는 셔틀버스를 타고 토레로 가서 왼쪽 꼭짓점에서 시작하거나, 아니면 버스를 타고 Pudeto에 가서 까따마린이라는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파이네 그란데로 가서 오른쪽 꼭짓점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O 트레킹은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W코스의 두 출발점 중 하나로 가면 된다. Q 트레킹은 O 트레킹에서 Las Carretas 구간을 더하는 것이다. 이 트레일은 파이네 그란데에서 어드미니스트레이션까지 연결하는 트레일이다. W코스와 Q코스는 까따마린을 한 번은 타야 한다. 그런데 O코스를 토레에서 시작하면 까따마린을 타지 않고 돌 수 있어서 나는 이 코스로 돌기로 했다.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공원 지도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지도를 달라고 하니 지도가 떨어졌다고 했다. 돈은 엄청 받으면서 서비스는 별로 인 것 같다.


사무소 앞에서 토레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를 내리자 앞에 조그만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 안에는 커피숍과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트레킹을 할 준비를 했다. 기념품 가게는 내려와서 둘러봐도 될 것 같았다. 그 건물 뒤편에 토레 산장 Torre Refugio이 보여서 들어서 안내데스크에서 공원 지도를 얻었다.


토레 산장-세론 캠핑장, 12km/4시간


열 시 십분 토레 산장을 떠나 걷기 시작했다. 당일 관광을 오는 사람들과 W코스를 도는 사람들은 모두 왼쪽으로 나있는 길로 가고 세론 캠핑장으로 향하는 오른쪽 트레일을 걷고 있는 사람은 있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뒤편에서 젊은 서양 커플이 걸어와서 나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길은 힘들지 않고 숲을 지나가고 넓은 초원도 지나갔다. 가는 길에 버드 와칭 Bird watching을 하고 있는 중년 부부를 만났다. 처음에는 가만히 서 있길래 뭐 하나 싶었는데 숲에 있는 새를 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에게 새가 어디 있는지 손으로 가르쳐 주었다. 한국에는 새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여기서는 새보러 다니는 것이 취미의 하나로 여겨진다. 


날씨도 맑고 햇볕도 따뜻하고 길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농장이 있음 직한 나무 팻말의 입구를 지나고 좀 걷자 확 트인 벌판 건너편에 세론 캠핑장 Campamento Serón 이 보였다. 12킬로미터를 네 시간 정도 걸었다.  


세론 캠핑장 Seron


캠핑장에는 나를 지나쳐 지나가던 커플도 있고 이미 도착해 있는 트레커들이 있었다. 텐트가 아직 준비가 안돼서 기다린다고 했다. 나도 같이 나무 그늘에 앉아 하릴없이 벌판을 보다가 하늘을 보다가 했다. 


벌판을 바라볼 수 있는 제일 앞쪽 텐트를 배정받았다. 이인용 텐트라 혼자서 굴러다녀도 될 것 같다.  텐트 패드가 꽤 높이가 있고, 텐트 안에도 두꺼운 슬리핑백 패드가 있어서 배기지도 않고 좋았다. 화장실 옆에 샤워실도 있고 뜨거운 물도 나왔다. 씻고 나자 더 이상 할 일도 없었다.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텐트 안에 들어가 있는데 텐트 안은 햇볕을 받아 더웠다. 

텐트 안에서 뒹굴거리다가 일곱 시에 저녁을 먹으러 식당 건물로 갔다. 식당 안에는 가이드와 함께 그룹으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틈에서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 정치 이야기가 나와서 열 받을 뻔했다. 캐나다인이라서 그런지 미국인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 열받을 때가 많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텐트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동네는 해가 참 길다. 열 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12월 7일(트레킹 2일 차)


텐트에서 자니까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해도 일찌감치 떠올라 해가 떠도 시간은 일렀다. 한참을 더 누었다가 여섯 시 반에 일어나 가방을 정리해 놓고 씻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어제 내가 지나쳐온 새를 보고 있던 부부는 브루스와 메리엇으로 호주 멜벤에서 왔다고 했다. 꽃과 새를 관찰하는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있는 머리를 땋은 칠레 사람이 가이드이고 어제 큰 짐을 메고 나를 지나쳐가던 사람이 포터라고 했다.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받았다. 파우치에 샌드위치와 음료수와 쿠키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세론 캠핑장-딕슨 산장 18km/6시간


텐트에서 배낭을 꾸려서 뜨거운 물도 식당에서 얻고 물도 채운 후 출발했다. 브루스와 메리엇 부부도 나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해서 한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 가파는 언덕을 한 번 치고 오른 다음에 강 옆으로 난 길로 걷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빨리 걷다 보니 어느새 혼자 걷고 있었다. 

큰 백팩을 멘 젊은 여자가 나를 지나쳐 가고, 어제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본 중년의 두 남자도 나를 지나쳐 갔다. 강 옆을 따라 걷는 길은 너무 아름다워서 좀 쉬면서 보고 싶었지만, 앉기만 하면 모기떼가 달려들어서 앉아서 쉴 수가 없었다. 


열한 시 십분. 코리온 Corion이라는 대피소 비슷한 곳에 도착했는데 캠핑장 예약 서류를 보자고 해서 보여주고 장부에 이름과 몇 월 며칠 몇 시에 지나간다는 기록을 해야 했다. 일조의 체크포인트인 것 같았다. 


옆에 테이블이 있어서 좀 이르긴 했지만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모기가 너무 많아서 샌드위치를 반만 먹고 다시 출발했다. 가는 길은 개울도 많이 건너고 뻘밭도 지나야 했다. 


그렇게 두 시간쯤 걸었는데 아까 나를 지나쳐 갔던 중년 남자 둘이 딕슨 산장까지 삼 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앞에 앉아 쉬고 있었다. 잠시 인사만 하고 나는 물만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한 시간이 좀 안돼서 딕슨 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산들이 빙하를 이고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넓은 초원에 산장이 있었다. 

딕슨 산장 Dickson Refugio


체크인을 하고 바로 씻고 점심때 먹지 못한 샌드위치랑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미소국을 먹었다. 좀 뒤에 온 중년 남자들은 스페인에서 왔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해서 짧게 이야기를 하고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식사가 안된다고 했는데 어제 세론 캠핑장에서 만났던 그룹이 도착했고 그 사람들은 산장에서 만들어준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왜 안된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돈을 내고 먹겠다고 해도 될 것 같았지만, 샌드위치도 먹어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저녁 늦게 오늘 토레에서 출발해서 딕슨까지 왔다는 젊은 일본 남자가 들어왔다. 내일 그레이 산장까지 바로 간다고 했다. 젊어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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