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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28. 2021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8

12월 14일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 


엘 칼라파테로 가기 위해서는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아침에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버스 터미널에서 프란세스 캠핑장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던 일본 여자를  만났다.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었는데 어제 트레킹을 끝내고 그녀 역시 엘 칼레파테로 간다고 했다.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한국사람이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같은 회사를 다니던 친구랑 같이 퇴사를 하고 함께 여행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온 젊은 사람들은 퇴사나 이직을 결정하고 온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남미를 여행할 만큼 길게 휴가를 내기는 힘든다는 점도 있을 테고 한국의 직장생활이 힘든 탓도 있는 것 같다.  


여행을 오기 전에 알아보니까 아르헨티나는 입국 비자가 있어야 해서 미리 비자를 받아 왔다. 한국은 비자 면제인 것을 보면 한국의 여권 파워가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버스가 칠레 국경에 도착하자, 모두 내려서 출국 도장을 받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바로 아르헨티나 국경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 아르헨티나 국경에 도착했다. 다시 내려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칠레 국경에서 버스 서류에 문제가 생겼는지 버스 기사가 서류를 들고 한참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대기하면서 기다려야 했기 때문인지 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보다 늦게 여섯 시간 만에 엘 칼라파테에 도착했다. 


우수아이아 Ushuaia에 갈까? 말까?


엘 칼라파테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우수아이아로 가는 버스시간표를 알아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미리 확정된 일정은 토레스 델 파이네의 트레킹 밖에 없었다. 트레킹을 마치고 남는 보름 정도의 시간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떠돌아볼 작정이었고, 엘 칼라파테에서 얼마나 있을지 여기서 어디로 갈지 결정된 것은 없었다. 

Image by Mica Hernandez from Pixabay 가보지 못해서 남의 이미지를 가져와 보았다.

우수아이아. 여기저기 많은 땅끝들이 있지만, 남미의 땅끝이라고 불리고 남극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영화 <해피투게더> 양조위가 혼자 찾아가던 그 빨간 등대가 있는 곳이었다. 그 등대로 보고 싶어서 우수아이아에 갈 생각이었다. 우수아이아의 숙소는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예약을 해둔 터였다. 그런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엘 칼라파테에서 새벽 3시에 버스에 타면 저녁 7시 30분 도착한다. 16시간 넘게 가면서 칠레 국경을 넘어갔다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야 하고 페리도 타야 한다. 갈 때는 버스를 탄다고 해도 올 때도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싶다. 비행기를 탈 수도 있지만 비행기는 비싸서 결정을 못하고 물음표를 달아놓는다. 


엘 칼라파테 El Calafate


푸에르토 나탈레스 터미널에서 같은 버스에 탔던 일본 친구랑 택시에 합승했다. 공항에서 엘 칼라파테 시내까지는 가깝지고 멀지도 않았다. 일본 친구가 예약한 숙소도 시내여서 택시에서 내려 헤어지고 예약해 둔 호스텔로 왔다. 호스텔은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사람들도 많았다. 


엘 칼라파테에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린다 비스타라는 곳이 유명해서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돌아와 예약사이트에서 찾아보니 이미 예약이 다 차서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한국음식 한 번 먹어줘야 하는데 아쉽다. 


호스텔에서 모레노 빙하를 다녀오는 투어와 엘 찰텐을 다녀오는 버스 왕복 편을 호스텔에서 예약했다. 우수아이아를 가려면 엘 찬텐에서 다시 엘 칼라파테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 찰텐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투어와 버스를 예약하느라 미리 바꿔온 아르헨티나 페소를 다 써버려서 환전을 하려고 다운타운 쪽으로 나갔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한적한 시골 마을 같았는데, 엘 칼라파테는 규모도 좀 더 크고 도시스럽고, 관광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다운타운이라고 할만한 큰길을 따라 가보았는데 어디에나 있음 직한 환전소는 보이지 않고 은행이 있길래 ATM에서 돈을 찾기로 했다. 영어는 안 나오고 스페인어만 나와서 한참 들여다 보고 감으로 눌러서 무사히 돈을 찾았다. 여행의 덕력이 늘고 있다.  


이것저것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오후가 다 가고, 마켓에서 장을 봐서 호스텔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르헨티나는 소를 많이 길러서인지 소고기의 종류가 세분되어 있다. 스페인어로 된 라벨로는 어떤 부위인지 알 수가 없어서 대충 보기에 안심 같은 고기를 샀다.


12월 15일


모레노 빙하 투어


페리토 모레노 빙하 Perito Moreno Glacier를 보러 갔다. 아침에 호스텔로 픽업을 온 여행사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 글레시어 국립공원 Los Glaciares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버스로 올라온 국립공원 직원에게 입장료 500 아르헨 페소를 지불했다.  


모레노 빙하는 빙하 자체의 크기도 엄청나고 빙하가 바다를 향해 계속 자라고 있다고 한다. 계속 빙하가 부서져서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빙하를 걷는 트레킹 투어도 있지만, 크람폰을 하고 얼음 위를 걷는 일이 꽤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트레킹 대신 보트를 타고 빙하를 구경하기로 했다.  


날이 흐리더니 보트에 오를 때부터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트를 타고 빙하 가까이 다가갔지만, 선실 밖은 춥고 바람이 불어서 오래 있지 못하고 선실로 바로 들어왔다. 바다로 빙하가 자란다는 것이 신기했다. 보트는 빙하 앞까지 가서 빙하를 옆으로 보고 천천히 가다가 아치 모양으로 서 있는 빙하를 보고 돌아왔다. 


비만 오지 않으면 어디 죽치고 앉아 빙하가 떨어지기를 기다려보겠지만, 비가 와서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사 킬로미터 길이의 전망 대길을 비를 맞으며 걸었다. 빙하를 보며 걸을 수 있도록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진 조성된 길로 나무로 된 보드웍이었고 간간이 계단도 있어서 사진도 찍고 하면서 걷다 보니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지만 빗속에 걷다 보니 윈드 쟈켓이 축축해졌다. 


공원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는데 비가 와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호스텔에서 같이 버스를 타고 간 한국 여자 친구들을 거기서 다시 만났다. 점심을 사 먹으려 보니까 음식이 부실해 보이는데 비싸기까지 해서 그냥 커피만 사서 가져간 음식이랑 쿠키를 나눠 먹었다.

떠나는 시간에 맞춰 나와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돌아오면서 손님들을 숙소에 내려주느라 여기저기 들리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걸려서 호스텔까지 가지 않고 다운타운에서 내려서 호스텔까지 걸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비치자 도시 저편에 무지개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였다. 빙하 투어를 같이 갔던 한국 친구들과 근처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호스텔의 같은 방에 묵는 젊은 영국 여자가 우수아이아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우수아이아가 어땠는지 물었더니 마젤란 해협으로 가는 유람선도 날씨가 나빠서 못 타고 할 게 없어서 지루했다고 한다.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우수아이아를 다녀오자면 적어도 사흘 이상 걸리고 장시간 버스를 타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빨간 등대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계획을 변경하기로 쉽게 마음이 정해졌다. 세상 끝의 빨간 등대는 그냥 언제가 가보기를 바라는 꿈의 장소로 남겨놓고 엘 찰텐에서 바로 북쪽으로 올라가서 바릴로체에 가기로 했다. 


계획을 바꾸면서 우수아이아에 예약해 놓았던 숙소를 취소했다. 하루 전에 취소하는 거라 취소수수료를 내야 했고 엘 찬텐까지 왕복 버스 티켓을 빙하 투어와 패키지로 묶어서 싸게 구입했기 때문에 편도만 취소가 되지 않아서 엘 찰텐에서 돌아오는 버스 티켓도 포기해야 했다. 돈을 날리면서 배우는 것은 예약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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