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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29. 2021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성지, 엘 찰텐에서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9

12월 16일


아침에 엘 찰텐으로 가는 버스는 시간보다 늦게 호스텔로 픽업을 왔다. 숙소마다 들러 손님을 태우는 시스템은 제시간을 지키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드넓은 평원에는 낮게 자라는 나무들이 바람을 맞고 서 있고 산은 까마득히 멀리 보였다. 


강 옆에 고즈넉이 서 있는 건물 앞에서 버스가 멈추고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바람이 많이 분다. 건물은 휴게소 같은 곳인 모양이었다. 안에 들어가서 커피를 사서 나와 밖으로 나와 햇볕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다. 건물 앞에 세계의 각 도시까지 거리를 표시해둔 표지판이 서 있다. 서울까지 17,931킬로미터로 도쿄 다음으로 두 번째로 먼 곳이다. 여기서는 유럽이 아시아보다 가깝다는 알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달린다. 길은 거의 일직선이다. 저 앞으로 산이 보인다. 버스는 산속으로 접어들었고 엘 찰텐에 도착해서 국립공원 사무소 앞에 멈추었다. 승객들은 모두 내려 사무소 안에 들어가 국립공원 트레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지도를 받아서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곧 터미널에 도착했다. 


엘 찰텐 El Chalten


엘 찰텐은 엘 칼라파테에서 북쪽으로 22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엘 찰텐을 설명하는 문구가 ‘The trekking capital of Argentian Patagonia’-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성지(수도) 쯤으로 해석하면 되려나-이고 글레시어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는 이 조그만 마을 근처에는 여러 개의 트레일이 있어서 온 세계로부터 많은 트레커들이 하이킹을 하기 위해 조그만 마을로 몰려든다. 


워낙 조그만 마을이기도 했고, 예약해 놓은 숙소가 터미널에서 멀지 않아 걸어가기로 했다. 걷기 시작했는데 정말 십 분쯤 후에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해놓고 나왔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볼 생각이었다. 숙소는 마을 초입에 있는데 마을은 큰길을 중심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식당에 들어가서 로크로라는 스튜를 먹었다. 


조그만 폭포 Chorrillo del Salto 


점심을 먹고 나와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마을 끝까지 가는데 한 삼십 분쯤 걸리는 것 같았다. 그 끝에 폭포로 가는 트레일이 나왔다. 트레일은 강을 따라가다가 산길로 접어들었고 얼마 가지 않아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는 조그맣고 아름다웠다. 물가에서 손을 씻었다. 물은 꽤 차가웠다. 나무 꼭대기에 새가 한 마리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날아갔다.

오는 길에 마켓에 들려 장을 봤다. 다음날 하이킹에 가져갈 점심 도시락을 사야 했고, 저녁도 만들어서 먹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소고기를 구워서 저녁을 먹었다.


12월 17일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오늘은 날이 흐리고 내일 날씨가 더 좋다고 해서 피츠로이를 보러 가는 것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토레 호수까지 가보기로 했다.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8시쯤 호스텔을 나서서 생각 없이 가다 보니 피츠로이로 가는 트레일 헤드가 나왔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라구나 토레로 가는 트레일 헤드는 거기가 아니고 트레일은 마을 북서쪽 Calle Riquelme에서 시작하였다. 마을을 되짚어 와서 9시가 좀 넘어서 트레일로 올라섰다. 


라구나 토레 Laguna Torre 트레킹 20km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아는 단어가 몇 개 있다. 스페인에서 순례길을 걸을 때는 좀 더 많이 주워 들었는데 다 까먹었다. 그 몇 개 안 되는 단어 중에 laguna는 호수, cerro는 산, calle는 street이다.  그러니까 ‘라구나 토레’는 토레 호수이고 그 호수에서 볼 수 있다는 쎄로 토레는 토레 봉우리쯤 될 것이다. 


라구나 토레 트레일은 토레 호수까지 갔다 오는 왕복 20 킬로미터 코스로 난이도가 좀 있는 코스라고 나온다. 호수에서 피츠로이와 더불어 유명한 봉우리인 쎄로 또레를 유빙과 함께 감상할 수 있고, 라구나 또레에서 마에스트리 전망대 Mirador Maestri까지 트레킹을 연장할 수 있는데, 이 길은 매우 가파르고 좁다고 하고, 마에스트리 전망대에서 빙하를 볼 수 있다고 안내 책자에 나와 있다. 나는 마에스트리 전망대까지 가지 않고 호수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가는 길에 다른 트레커들은 많이 보지 못했고, 트레일은 처음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였고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힘들이지 않고 잘 올라갈 수 있었다. 쉬지 않고 가다 보니 12시도 안되어서 호수에 도착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이 호숫가에 부는 강풍도 장난이 아니었다. 산골짜기를 불어내려온 바람이 호수에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고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데 뒤로 떠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서 있기도 힘들어서 호수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저앉아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바로 돌아서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라구나 토레

호숫가에만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것 같았다. 좀 내려오자, 빗방울이 흩뿌리다가 그쳤다. 올라갈 때는 그냥 지나쳤던 강가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트레일에는 올라오는 트레커들이 꽤 있었다. 내가 좀 일찍 출발했던 모양이다. 급할 것 없는 길이라 중간중간 쉬고 노느라 올라간 시간보다 더 걸려서 내려왔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하고 좀 쉬다가 버스터미널에 가서 내일 저녁에 바릴로체 Bariloche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장을 보러 갔는데 터미널 슈퍼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일요일이라서 일찍 문을 닫는 모양이다  마을 중심으로 내려가 보면 문을  식당이나 슈퍼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비가 오고 바람도 불고 해서 그냥 돌아왔다남아 있는 모든 음식을 털었다패스트리 미소국에다 남은 햄을 넣어서 끓여서 어제 해놓은 밥을 먹었다향신료 때문에 맵기만 하고 아무 맛도 안 났다. 그냥 한 끼 때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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