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 스레드 생태계
스레드 뒷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어로 잡담을 해보려고 계정을 새로 만들었는데,
첫 피드를 열어본 순간 방향 감각을 잃었다.
피드가 전부 일본어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원래 생활 터전이 일본이라 그런지
알고리즘은
“이 사람은 일본어를 원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일본어 계정은 따로 있었고, 한국어를 원했기 때문에
곧바로 단순한 해결책을 떠올렸다.
“한국어 사용자를 몇 명 팔로우하면
피드도 자연스럽게 바뀌겠지.”
지금 생각하면,
이 세계가 그렇게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이건 스레드 전체의 본질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이 내 피드에 우연히 보여준 한 조각의 풍경일 뿐이다.*
나는 평소 좋아하던 분야 중 하나인 ‘철학’을 검색했고
팔로워 수가 많은 계정을 하나 팔로우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세계관과 맥락을 가진 사람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클릭이
내 피드 전체의 각도를 바꾸어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알고리즘은 그 한 번의 터치로
나를 “철학적 격투를 즐기는 사람”으로 분류해 버렸다.
피드는 순식간에
지적 회초리 생태계로 변했다.
스레드는 참 이상한 풍경을 보여준다.
물론, 이 장면이 스레드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본 조각은 묘하게 공통된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말을 거는 듯하지만
실은 허공을 향해 말한다.
누군가에게 도달하려는 문장이 아니라,
‘도달했다고 가정된’ 문장들이 배치된다.
“그 표현은 틀렸습니다.”
“철학은 그렇게 소비하는 게 아닙니다.”
“맥락을 이해하세요.”
“편견을 남에게 전가하지 마세요.”
맞은 사람도 없는데
싸운 흔적만 남아 있었다.
회초리는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예컨대 가벼운 인사말 하나가
정교한 문법 논증으로 바뀌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그 말의 옳고 그름보다 더 궁금했던 건
왜 누군가에게 그 문장은
‘교정’을 요청하는 신호가 되었는가였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언어는 삶을 위한 도구인지,
혹은 불안을 임시로 정리하는 기술인지
잠시 헷갈렸다.
내가 본 조각에서는
그 불안의 기척이 문장의 가장자리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순간들이 유난히 많았다.
물론 모든 장면을 불안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정확성에 대한 애정,
전문성의 작은 자기표현,
직업적 습관 같은 요소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교정의 말은 때로는 타인을 위한 것이고,
때로는 말하는 사람 자신의 세계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대중의 질문을 환대하고
사유의 문턱을 낮추려는 분들도 많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분들이 아니라
‘철학’ 그 자체보다
‘철학의 자격’을 지키는 데 더 익숙해 보였던 태도다.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개념 시험지를 건네는 방식,
대화라기보다 심문에 가까운 말투,
지식을 나누기보다
자격을 검증하려는 욕망.
그건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패턴처럼 반복되는 태도였다.
심리학도 비슷했다.
누군가 가벼운 고민을 적어두면
금세 ‘조언’과 ‘해석’이 몰려왔다.
그중 일부는 위로이지만,
어떤 말들은
상대를 돕기보다
말하는 사람 자신의 불안을 다루려는 문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 역시
내 관찰에서 생긴 해석일 뿐,
모든 장면에 적용될 보편적 진단은 아니다.
스레드는 묘하게 동물적이다.
하이에나가 냄새를 구분하듯
여기에서는 특정 단어가 곧 신호가 된다.
철학 냄새가 나면 문지기가 등장하고,
심리 냄새가 나면 즉석 상담가가 출현한다.
맞춤법 냄새가 나면 교정 병력(?)이 슬며시 대기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냄새도 피하지 못하는
초식동물 같은 존재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풍경이 조금 버거웠다.
스레드가 싫은 게 아니라,
특정한 태도만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내 피드의 기울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도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생태계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왜 불안은 교정 욕구로 번지는지,
왜 권위적인 말투는 달콤한지,
왜 사람들은 서로를 가르쳐야 마음이 편한지,
왜 온라인에서는
지적 폭력이 쉽게 미학이 되는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이 풍경을 분류하고 해석하고 있었다.
문지기의 태도를 관찰하면서
또 다른 방식의 문턱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모순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구조를 인지하며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인정하게 되었다.
이 계정은 조용히 망했다.
하지만 나는 이 세계를 계속 바라볼 것이다.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는 현대인의 내부를 비추는 구조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특별한 관찰자여서가 아니라,
누구나 잠시 물러서면 보이는 풍경일 것이다.
스레드는 가까이 있을 때보다
한 발짝 떨어져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구조를 드러낸다.
알고리즘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조각들을 던져주는 것일까.
혹은, 내 시선은 왜 유독 이런 풍경에만 머무는 것일까.
망해버린 내 계정은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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