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6
이번 한 주는 너무 길었다.
특히 주말에 LCS 파이널을 보느라 시카고에 다녀왔더니, 시작부터 에너지 탱크가 텅텅 비어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자정이 훌쩍 넘었고, 저녁을 안 먹고 온 탓에 배가 고파 라면을 심야에 끓여먹었더니 잠도 달아나 한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월요일은 오전 강의가 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했고, 빽빽하게 미팅을 잡는 바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매번 늦어서 죄송하다고 사과. 집에 오자마자 그냥 쓰러졌고 그 때부터 한주 내내 비실비실했다.
어제 (목요일)는 정말 얼마나 피곤했냐면 팔을 드는 것조차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쳐버렸던 것 같다. 7시에 수업이 끝나고 와이프를 기다리는데, 그냥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저히 서서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드러눕고 싶었다. 저녁 때 과행사도 간다고 해놓고 그냥 안 갔다. 온몸이 아픈데 가긴 어딜가.
그 와중에 환절기 느낌이 물씬 나게 싸-해져서 목도 아프고 코맹맹. 코로나는 자가진단키트에 의하면 아닌데 "진짜 아닌가?" 생각이 계속 든다. 수요일 강의에 엄청 아픈 학생이 온 것도 도움은 안되는 듯. 아파서 수업 안 오면 점수 깎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나와준 친구가 물론 고맙긴하다.
지난주에 드디어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를 전부 읽었다. 지난주 내내 계속 떠오르는 책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한 때는 기술이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일할 것을 강요하게 되었다고. 그 와중에 우리는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제 스스로의 속박이 되어, 몸이 부서지도록 쉼없이 일할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게 된다. 그러니 백화점으로 물건을 사러 나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하루배송이 필요하고, 장보러 갈 시간을 줄여야하니 새벽배송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코로나 사태도 기여했을 것 같다. 미국의 경우에는 점점 공공장소가 사라져가는 것도 한몫했을테고.) 내가 스스로를 시간의 노예로 만드는 사이에, 누군가는 내 시간을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 하고, 그렇게 죽어나간다. 단지 내가 쿠팡을 안 (못) 쓴다고 해서 이 노동문제로부터 내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 나도 이번 학기는 혼자 2-3명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수업도 듣고, 강의도 하고, 시험 공부도 하고, 과 행사도 주최하고. 다른 사람들은 한 학기가 아니라 몇 년에 걸쳐하는 일을, 나는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일하겠다는 일념으로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많은 일을 준다. 그렇게 나는 또 또 비인간적으로 빨라지는 세상에 기여한다.
오늘 꿈을 꿨다. 한국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항공사에 줄을 섰는데 도통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승무원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지금 한 명이 2-3명의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니 짜증이 사라졌다. 대신 부끄러웠나? 이렇게 일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기업에게 분노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