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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Jun 21. 2022

스무 살의 나를 추억하며

Daily life

카톡 카톡

처음 보는 단톡방에서 알림이 울렸다.


초대된 사람들을 보니 대학 동아리 동기들이다.

20년도 전에 연락이 끊긴, 아니, 연락을 하지 않던 동기들.

무슨 생각으로 방을 만들었는지 20년 만에 일상의 대화가 이어졌다.

어색한 마음에 잠시 눈팅을 하고 있자니, 어떻게 알았는지 한 동기가 제주도에 사냐며 나의 안부를 물어 온다.


'어, 난 제주도에 살고 있어'


제주라는 단어에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다들 부럽다고 한 마디씩 한다.

제주도에 산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간간이 울리는 단톡방을 눈팅으로 일관하며 몇 개월간의 시간이 흘렀고, 한 동기에게서 개인 톡이 왔다. 

제주도에서 1년 살이를 하게 되었다며 만나자고 했다.


대학시절 1여 연간의 짧은 청춘의 기억을 공유했지만,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던 동기.

좋다 싫다를 떠나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다.


역시나 거절에 서툰 나는 내가 궁금하다며, 보고 싶다는 친구의 카톡을 외면하지 못하고 약속을 잡아버렸다.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엄마에, 무려 교수님이었다.


오랜만에 기억도 나지 않는 엣 시절을 소환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 동아리 시절을 떠올려 보자면, 입학하고 휴학하기까지 1년 반 가량의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이면 어른인 줄 알았던 철 모르던 청춘의 폭풍 같던 시간.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고 미숙했던가.


친구가 기억하는 나는 말이 별로 없고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왠지 신비로워서 말을 걸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동기였다고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당시 얼마나 혼자서 온갖 똥폼을 잡고 다녔던가 부끄러워졌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나는 세상만사 온갖 시름을 다 짊어지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어둠의 그늘 속에 분위기 잡는 게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는 갖가지 메탈 사운드의 록음악과 넥스트의 전집이 담겨 있었다. (당시 청춘들의 반항의 상징과도 같았던 록음악이 지금은 부모세대 아저씨 아줌마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것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빠른 생일에 또래보다 미숙했던 나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 탓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서툴렀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국민학교 때 한차례의 전학으로 따돌림을 경험한 후로는 더욱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른임을 가장한 채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이 굳어져 나에게는 늘 성숙해 보인다, 어른스러워 보인다, 애늙은이 같다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어리광쟁이 막내에 불과했던 나는 사람들이 보는 모습과 실제의 내가 다르다는 괴리감에 자아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기도 했다. 

어른스러운 가면을 쓴 내 모습도, 어리광쟁이 막내의 모습도 모두 '나'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30대가 훌쩍 넘어서였다. 


그러니 갓 스무 살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뭘 안다고 온갖 분위기를 다 잡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당시 복학생 선배랍시고 군기를 잡고 어른처럼 굴었던 그들도 생각해 보니 25~26살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아, 내가 나이를 먹긴 했구나 실감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뭘 모르는지 알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20대의 나는 세상을 다 아는 줄 알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말했고, 무서운 게 없다 말했다.

40대 지금의 나는 아직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못하는 건 할 수 없다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서운 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어른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난 어른이야'라고는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무엇이든 해답을 내어줄 수 있고, 무슨 상황이든 해결해 줄 수 있고, 겁나는 게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20여 년 만의 옛 동기를 만나기 전까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던가 떠올리지 않았던걸 보니 나에게는 정말 찰나의 지난 시간이었나 보다.


그렇게 이야기는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엣 시절에서 현재로 이어졌다.

친구는 예전부터 동경해온 제주도에 올 수 있는 기회가 되어 1년간 살게 되었다며, 나의 제주 정착기를 궁금해했다.


어떻게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와서 살 생각을 했냐며, 대단하다, 멋지다, 부럽다를 연발하는 걸 보면, 아직도 사람들에게는 제주도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20대처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며 시니컬하게 한마디 던지려다, 평범한 동네 아줌마처럼 수다스럽게 좋은 이야기들을 건네주었다.


어색할 줄 알았던 20년 전 동기와의 만남은, 똥폼을 잡던 20대의 나를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준 친구 덕에 나름 즐거운 수다의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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