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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Jul 05. 2022

엄마들이 물놀이를 마다하는 까닭

Daily life

6월의 이른 폭염은 사람들을 바닷가로 불러 모았다.

우리도 이른 여름휴가를 즐기러 바다로 향했다.


함덕의 해변은 해수욕장 개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우리처럼 바다를 찾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해변이라고 더 시원하기는커녕 쏟아지는 햇살로 더위가 극심했지만, 바닷물에 몸을 풍덩 담그니 주룩주룩 흐르던 땀과 함께 짜증도 싹 날아가 살 것 같았다.


기상예보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답게, 온다던 장마는 오지 않고 공기 중에 습기만을 가득 뿌려놔 해변의 열기와 함께 층층이 구름을 쌓아 올리며 바람결에 거센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대부분 잔잔하고 맑은 제주의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재미로 놀았었는데, 오랜만에 키를 넘기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놀고 있자니 어린 시절 동해의 바다가 떠올랐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강원도가 고향이시라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 큰집에 들를 겸 동해 바다로 여행을 갔었다.


그때마다 어린 세 딸들과 모래놀이를 하고 물놀이를 함께 하던 건 아빠였다.

같이 놀자며 엄마에게 칭얼대 봤지만 엄마는 물에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을 해보니, 엄마는 바다에 들어가서 놀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물 밖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세 딸들을 지켜보고,

놀다가 지쳐 물밖로 나오면 간식을 챙겨주고,

우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늘 더운 모래사장에서 자리를 지키셨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모래성을 쌓으며 놀기도 하고 물가에서 조개를 잡으며 놀기도 했다.

당시 동해의 바다는 가만히 서서 발가락으로 꼬물꼬물 모래를 헤집기만 해도 조개가 딸려 나왔다.


한 번은 아빠에게 업혀 물속에 들어갔는데 아빠는 나를 업은 채로도 헤엄을 참 잘 치셨다.

그런데,  아빠는 나를 업었다는 사실을 잊으셨는지 갑자기 그대로 잠수를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다리로 아빠를 꽉 잡으며 아푸 아푸 허우적거렸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게는 길게만 느껴졌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빠는 물속에서 조개를 한 줌 가득 따 가지고 나오셨다.

나는 다시 아빠의 등을 꼭 잡으며 나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몇 번을 더 물속으로 잠수를 하셨으니, 아빠는 등에 매달린 나도 잠수를 잘할 거라 생각하셨나 보다.


그렇게 잡아온 조개들은 바로 엄마에게 전달되었다.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해감을 하고 보글보글 끓여주셨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한참의 물질을 끝낸 아빠는 모래사장을 파고 누우셨고, 우리는 그 위로 모래 이불을 덮어 드렸다. 그리고 엄마가 건넨 밀짚모자 하나를 아빠의 얼굴 위에 얹어 놓았다.

아빠는 그 혼잡한 동해의 모래사장에서 코를 골며 한참을 주무셨다.

누가 밟고 지나갈까 그 옆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조용히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어린 나에게는 바닷가 물놀이 보다, 엄마 아빠 옆자리에 있는 것이 편안했던 모양이다.


다섯 식구가 모두 동해의 바다에서 놀던 때는 아마도 10살 전후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언니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띄엄띄엄, 나중에는 아빠, 엄마, 나 셋만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셋이서만 동해의 바닷가를 찾은 어느 해인가, 그제야 엄마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셨다.

거센 파도가 치는 동해 바다에서 엄마와 둘이 손을 잡고 파도를 폴짝폴짝 뛰며 한참 물놀이를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그 물놀이를 신랑과 둘이 즐기고 있다.


제주도에 함께 온 첫해 신랑은 무릎 정도의 깊이 까지 밖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물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우리는 풀등에 앉아 찰방거리며 물을 튀기다 돌아가곤 했다.

그래도 꾸준히 튜브와 구명조끼 수경과 마스크 등 장비를 늘려가며 해마다 바다와 친해진 결과, 지금은 가슴 높이까지도 거뜬히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신랑은 이제 스노클링 마스크를 끼고 함덕해변의 돌 틈 사이를 누비며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가 물고기를 찾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런 신랑과 이른 6월의 물놀이를 즐기며 파도를 타고 있자니 옛날 동해의 그 바다가 떠오르는 건 정말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탓인가 보다.


해변가에 그늘막을 치고 아이스박스에서 간식을 꺼내며 홀로 앉아있는 누군가의 엄마들을 보니 엄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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