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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칠일 Nov 23. 2021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어

내 삶을 구성하는 '아'




"점심으로 버거킹 어때요?"


열한 시 반. 팀장님의 말에 사무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외투를 챙기며 일어난다. 버거킹? 꽤 괜찮은 메뉴다. 하지만-


"전 오늘 따로 먹겠습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지갑과 핸드폰을 챙기며 팀장님께 말한다. 저번  부터 눈여겨보던 샐러드 가게가 있다. 오늘은 그곳에서 여유롭게 혼자만의 점심을 보내고 싶다. 팀원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 문을 연다.


'아무거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명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이지만 어색함, 예의, 혹시라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속엣말을 꺼내지 못해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라고 말하면 나는 눈을 마주치고 짓궂게 물어볼 것이다.

"아무거나란 메뉴는 없어요. 진짜 원하는 게 뭐예요?"


필요 이상의 긴장을 몸에 달고 살았던 사회초년생 시절엔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 내게 점심메뉴를 물어보면 뭐든지 다 잘 먹을 수 있다는 표정으로 '아무거나 괜찮다'며 씩 웃었고, 그것이 곧 능숙한 사회인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요 이상의 배려였다.


유난히 국밥을 좋아하던 선배와의 반복되는 국밥 순회에 결국 참지 못하고 오늘은 따로 먹겠다고 얘기해버린 날이 있었다. 각종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겨우 입 밖으로 꺼낸 소심한 용기였는데, 너무나 순순히 '응, 그래요.'라 말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머릿속의 무언가가 탁-하고 풀어진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예전부터 가고 싶던 초밥집에서 점신 특선 세트를 시키며 생각했다. 나의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은 회사생활. 적어도 먹는 것에 있어선 나의 줏대를 똑바로 하고 살자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의 거절에 악의를 품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니 앞으로는 '아무거나'라는 말로 나의 선택을 남에게 넘기는 일은 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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