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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칠일 Mar 02. 2023

아직 잠들기엔 배고픈데

내 삶을 구성하는 '아'



실내 온도를 25도로 맞춰놓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베이지색 도톰한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당겨 포근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하루 동안 긴장하며 살았던 몸이 이완되며 힘이 쭈욱 빠진다. 자, 이제 잠에 들기만 하면 되는데-


꼬르르르르륽


우렁찬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린다. 배고픔의 신호는 책이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우아하지 않다. 본능에 충실한 위장의 소리는 아무리 배에 힘을 주고 참아본다 한들 멈출 생각을 않는다. 어서 잠들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asmr을 들으면 이 배고픔도 잠잠해질까 싶어 서둘러 유튜브를 켠다.


아, 이런.

하필 가장 먼저 보이는 영상의 제목이 '묵은지가 오지게 맛있는 솥뚜껑 삼겹살집, 최고의 가성비 생삼겹살'이라니. 순간 눈보다 먼저 반응한 배가 천둥소리를 일으킨다.


꼬륽르르륽꾸르르르를릉꼬르르르르르르르르읅


그래 내가 졌다 졌어.


먹는 것을 참 좋아한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맛있는 안주와 술을 주제로 한 일본 드라마 '와카코와 술'을 보거나, 유튜브로 골목 맛집을 찾아다니는 채널을 연속 재생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살펴볼 때도 '음식', '요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오면 괜히 한 번 펼쳐본다. 먹는 행위만큼 즉각적인 행복이 또 있을까. 어쩌면 평생 먹는 즐거움과 건강 사이에서 고뇌의 줄타기를 하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사이에서 나름 요령껏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이렇게 찾아오는 야식의 카운터 펀치는 너무나 강력하다. 잠시 문 앞에 서서 내 일주일을 돌아본다. 샐러드도 주 2회 먹었고, 인스턴트식품도 이번 주는 많이 참았다. 오늘만 제외하면 저녁 8시 이후로 군것질한 적도 없다. 이 정도면 야식이라는 길티 플레져를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 내 모습은 영락없는 답정너 같지만, 허기 앞에 장사 없다. 그래, 딱 하루만 먹자!




"어? 아빠?"

"아 그게..... 만두가 먹고 싶길래...... 너도 하나 먹을래?"




그날 밤, 주방에서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는 두 개의 젓가락질 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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