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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Dec 02. 2024

11월의 끝과 12월의 시작

11월 27일 15:30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다. 전날 밤 자기 전에는 분명 비가 내리는 것처럼 지붕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났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온통 눈밭이었다. 간밤 새에 빗물이 언제 눈송이로 변했던 걸까. 아침에 일어나는 건 언제나 힘들다. 햇볕도 미약하고 쌀쌀해진 겨울 아침의 기상은 더 어렵다. 미적거리며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맞다, 밖에 아직도 눈이 내리지, 모자를 푹 눌러썼다.

  요새는 오전에 도서관 한 차례, 밥 먹고 오후에도 도서관을 간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아담한 도서관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도서관 가는 길은 초등학교를 끼고 있다. 운동장에서 벌써부터 애들이 나와 눈덩이를 던지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선생님이 하지 마세요, 그만하세요,라는 말을 내가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번씩 하신다. 내가 아직 교실에 있었으면 했을 법한 대사를 고스란히 하고 계신다.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는 건 이따금씩 지루해지곤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빨리 하고 쉬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면서도 밀려드는 지루함을 피할 길은 없다. 패드 위에 그림을 그렸다. 오는 길에 추워서 얼음인간이 되어버린 내 모습이다. 아무래도 이 날씨에 아이스 라떼를 마셨기 때문이겠지. 자랑할 데가 없어서 친구들한테 보여줬다. 혜민이가 잘 그렸다고 해준다. 혜민이는 정말 착한 친구다.


11월 28일 12:48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왔다. 계속하고 싶었는데 여러 이유로 무산되어 왔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기운이 달랐다. 파마를 해야만 하는 날, 오늘 나의 파마를 위해 온 우주가 힘을 모은 날, 오늘이 아니면 다신 파마를 하지 못할 것만 같은 날. 대충 그런 날. 그래서 파마를 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는다.

  예약은 하지 않았다. P의 인생에 예약은 사치고, 옵션이다. 미용실 사장님이 “점심시간인데.”라고 하셨다. 저런, 예상치 않은 1차 위기 도래. “그래도 그냥 앉아있어 봐요.” 난 잡힌 물고기가 되었다. 경험상,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난 안전탑승한 거다. 오예!

  어떤 파마를 하고 싶은지는 오래도록 연구를 해왔다. 나는 반곱슬에 숱이 많기에 할 수 있는 파마가 한정적이다. 몇 해 전, 객기로 히피펌을 했다가 고생을 깨나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마치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남아 아무리 히피펌을 다시 하고 싶어 져도 이성으로 억누르게 된다. 그래도 그때 히피펌을 한 건 잘한 짓이었다. 결과물과 사후 만족감과는 별개로 어차피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면 언젠가는 하게 되어있으니 그때 한 번 경험한 건 두고두고 생각해도 좋은 결단이었다.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거듭 돌린 결과, 엄선한 사진을 미용실 사장님께 보여드렸다. 사장님은 3초도 채 보지 않으신다. 제 향후 육 개월이 달린 일인데 조금만 더 자세히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사장님께 어떻게든 다시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사장님은 제 할 일을 하신다. 가운을 두르고 숱가위를 드신다. 아직도 내 마음은 조마조마한데 이미 칼집에서 칼을, 아니 숱가위를 빼셨다. 서걱서걱,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기도메타에 의존해야 한다. 사장님을 믿어야 한다.


12월 2일 11:40

  밝은 밤을 다 읽었다. 이 책은 화자의 증조모, 어머니, 그리고 화자의 삶이 400여 쪽에 서로 포개어져 있다. 슬픈 책이다, 눈물이 난다,라고 했던 책을 읽을 때마다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하여 밝은 밤도 다를 것은 없었다. 도서관 휴게실에서도 눈물을 조록조록 흘리고, 강남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물콧물을 뺐다. 가여운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일생을 따라가다 보니 400쪽도 채 되지 않는 책을 읽는데 일주일씩이나 걸렸다.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336쪽), 나는 하나의 레코드를 한 명의 배옥희 여사를 위해 담아 보관하고 생각이 나면 꺼내 본다. 내가 가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다채롭지 않다. 장면은 무수히 덧발라져 침침한 색채를 띠고 있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여러 차례 깁고 덧댄 흔적이 남아 이 기억과 저 기억 사이의 이음새는 잔뜩 벌어져 있기도 하다. 기억 속에서 왜곡점이 생겨나며 실제와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간다는 걸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작업을 이따금씩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새로이 채워 넣을 수도 없는 데다가 레코드에 새겨진 음양각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깎여져 나가기라도 할까 봐.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여름 방학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밤낮으로 선풍기가 돌아가던 여름날, 거실에서 배 깔고 드러누워  엄마가 일 나가 안 계신 날이 있으면 그 틈을 타 나는 숙제는 구석에 던져 놓고 만화책을 읽고는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엄마가 안 계신 틈을 타 어린 우리들 손에 닿지 않게 찬장 제일 윗 칸,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라면 한 봉지 꺼내 나랑 동생 먹으라고 끓여주시고는 했다. 할머니는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할머니 라면은 늘 맛이 없었다. 그때는 왜 맛이 그렇게 맹숭맹숭했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물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래서 할머니 라면의 국물은 군침 도는 반질한 붉은 색깔 대신 멀건 선홍빛이 돌았다. 나는 할머니 당신이 라면을 안 먹었기에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모르셨구나, 이제야 돌이켜 생각한다. 엄마 있으면 라면은 입에도 못 대는데 이게 어디냐며 동생이랑 나는 싱거운 라면을 그런대로 만족하며 먹었다. 할머니는 콧잔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우리들 얼굴을 보고서는 선풍기를 끌어다 우리 얼굴에 쐬여 주었다. 천천히 먹어, 하면서. 탈탈 돌아가던 선풍기, 밍밍한 라면, 얇은 면나시 위로 닿던 대나무 자리의 올록볼록한 촉감. 나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지나간 한 차례의 여름만으로 수십 번도 넘게 할머니를 떠올린다.

—우리 새비,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은 곳으로 가서 더는 힘들지 말구, 마음 쓰지도 말구, 새비 네가 그리워했던 사람들 모두 만나고 지내라(293쪽).

우리 할머니,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은 곳으로 가서 할머니가 그리워했던 사람들 모두 만나고 지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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