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어렵지 않은 질문이 되기까지
이전 직장 사수님과 '크레페'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했었다. 메인 채널은 인스타그램, 서브 채널은 노션. 마음에 있는 것들을 기록하는 목적의 계정이었다. 지금은 취향을 소개하고 큐레이션 하는 분들도 많고, 관련 서비스도 무궁무진하지만 그때는 흔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들부터 차근차근 기록하며 언젠가는 모두의 취향을 전시하는 날이 오기를 바랐는데 아쉽게 현생에 치이다 보니 접게 되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해?'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늘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답해왔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서는 빛이 난다. 그런 분과 이야기 나눌 때마다 상대적으로 이것저것 넓고 얕게 찍먹하는 나는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안다. 취향이 뚜렷한 사람과 취향이 블러해도 다양한 색을 아우르는 사람에게 각자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특히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면서는 후자의 성격이 짙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경험을 통해 다양한 레퍼런스를 많이 모아두는 게 보물이 되는 직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은 '취미'와 '취향'에 대한 것이었다. 좋아하고 즐겨하는 게 없는 건 아닌데, 소개하려고만 하면 말문이 턱 막혔다. 갑자기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내 취미는 뭐지?', '독서..라고 하면 뻔해 보이려나?', '좀 색다른 취미 없나?'. 요즘에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고민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망설이진 않는다. 독서든 달리기든 요가든 넷플릭스든 좋아하는 데 그럴싸한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취향은 설득의 영역이 아니니까.
'크레페'라는 채널 이름은 음식 크레페에서 유래한 게 맞다. 크레페라는 음식이 얇은 밀가루를 얇게 부쳐 겹겹이 쌓아 만들듯이 각기 다른 취향이 겹겹이 쌓여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닮았다고 느껴졌다.
크레페를 운영하며 소개했던 취향을 모아봤다. 초안을 작성하면 존경하는 금손 사수님이 피드백을 주시고, 다듬어 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취향을 찾아가는 모든 분의 여정을 온 마음 담아 응원한다.
책은 무조건 종이책, 장르는 무조건 SF 소설. 이렇게 만든 소설이 있다.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SF는 무조건 때려 부수고(?), 머나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김초엽 작가님의 이야기는 낭만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우빛속에 수록된 단편 중 '감정의 물성'이라는 작품이 있다. '우울', '불안', '행복'. 이런 감정들이 돌의 형태로 시장에서 팔리고 실제로 엄청난 인기를 끈다는 내용이다. 감정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물성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져본 적이 없어 꽤 놀랐다. 감정을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과정에서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거겠지? 감정도 결결이 이해해야만 온전히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감정의 물성'이라는 독특한 상품으로 구현한 게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을 시작으로 여러 SF 소설들을 찾아 읽고 있다. 같은 하늘, 같은 사물을 봐도 다르게 보이고, 상상력도 샘솟고(?). 기분 탓이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믿는다!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 지루한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SF 소설 5권을 골라봤다. 후-딱 읽을 수 있으니 추천!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허블)
핑크색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야 한다. 부모님이 입혀주시는 게 곧 스타일이 됐던 시절, 부모님은 늘 중성적인 패션을 고집하셨다.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좋아했지만 옷장에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무채색의 카라티, 청바지, 운동화뿐이었다. 시대를 앞서가신 걸까? 하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자아를 갖고 패션에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무조건 컬러풀한 옷, 특히 핑크색을 고집했다. 어쩌면 작은 반항?에서 시작된 고집이 이제는 취향으로 자리 잡았다.
색을 고를 때 80% 정도는 핑크색을 선택한다. 마음에 드는 핑크색이 아닐 때만 다른 컬러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다. 주로 진달래 핑크색, 마젠타 핑크색, 연핑크색을 좋아한다. 특히 마젠타 핑크는 너무 좋아해서 어떤 아이템이든 보이면 바로 사는 편. 친한 주변 지인들은 그 색을 보면 종종 나를 떠올리곤 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핑크색 티를 입고 핑크색 노트와 볼펜 등을 챙겨 나가는 날은 내내 기분이 좋다. 핑크색이 원래 인간의 분노와 공격성을 낮춰주는 힘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핑크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앞으로 100년 정도는 화가 없이 살 것 같다. 핑크 만세!
- 프렐류드스튜디오 컴포지션 노트
- CLIPEN 클립펜
- 삼성 노트북(NT910S3K)
- 꼴라주바캉스 로고 알파벳 에어팟 케이스
짜릿하거나 소름 돋는 아이디어랑은 좀 다른 느낌이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고 자극도 덜한 아이디어. 대단한 반전이 있거나 스케일이 크지도 않다. 쉽게 말하면 "이런 스토리도 참 좋네"라던가, "이런 표현 방법은 참 좋네"하는 것들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자체로도 기분 좋은 아이디어가 담긴 작품들을 소개한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88세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33세 사진작가 JR이 같이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기획이나 소재도 신선하지만, 주인공 둘이 나누는 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들이 참 좋다. 소박하고 조용조용한 다큐멘터리. 긴박함도 없고 위기도 없고. 대신 그만큼 보는 사람이 영화에 개입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 과정이 이 영화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나 더 추천하면 Patator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터의 작품들도 좋다. 스톱모션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들을 보여준다. 소재들의 신선함도 많은 아이디어를 준다. 작가는 "I love to give life to whatever doesn't move."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이 간결하고 자신감 넘치는 소개가 참 좋다.
콘텐츠를 업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무감으로 콘텐츠를 말 그대로 '소비'하게 되는 때가 많다. 이런 순간에 앞에 소개한 콘텐츠들은 나에게 콘텐츠가 얼마나 각별한 영역인지에 대한 근거가 되어준다. 이런 그럴싸한 이유가 아니어도 그냥 재미있으니 추천한다.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Everyday Experiments: Full Bloom | Apple (Youtube)
무언가를 창조하기 전에 영향을 끼치는 감각 혹은 자극.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영감의 정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고, 때로는 영감을 주기도 한다.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삶의 모토이지만, 아직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어려운 만큼, 영감을 받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는 그저 나뭇잎이 떨어지는 사실에 주목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계절의 변화를 생각하며 떠나간 인연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영감을 받는 순간 역시 모두 다르니, 정답은 없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따금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글에는 손도 못 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집에서 기타를 친다.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다 보면 그 가요의 화자에 몰입하게 되는데, 그때의 감정이 영감을 줄 때가 있다. (물론 스트레스도 풀린다.)
이렇듯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음악 영화는 최고의 영감 주머니다. 노래를 부를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여 간접적으로 카타르시스를 겪음으로써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음악을 통해 영감을 얻는 분들, 혹은 얻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은 아래와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꼭 보시면 좋겠다.
- 고고70
- 과속스캔들
- 스쿨오브락
- 싱 스트리트
- 어거스트 러쉬
- 위플래쉬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가방. 키티버니포니의 로고 디자인이 박힌 부드러운 면 소재의 꽤나 큰 에코백이다. 일반 에코백에 비해 크기는 크지만 두께가 두껍진 않아서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아 가장 자주 드는 가방이다. 유일한 단점은 때가 빨리 타 가끔 누렇게 변한 끈을 마주한다는 것. 그래도 크고 디자인이 예쁘다? 끝이다.
키티버니포니 에코백은 우연히 길에서 어떤 분이 메고 계신 모습을 보고 반해 찾아다녔다. 깔끔한 디자인에 수납력도 좋아 보여 찾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뭐든 핑크색을 고집하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가방은 무난한 색에 패턴이 독특한 디자인이 끌린다. 몇 주 써보고 너무 만족해 동생에게도 영업했다. 동생은 오늘도 들고나간 것 같다. 물론 나도.
나는 미니백을 싫어한다. '이 구역의 투머치 패커는 나다'라고 자신할 정도로 챙기는 물건이 많다. 노트북, 읽을 책, 다이어리, 펜 한 자루 등 큼직한 물건들로 이미 미니백은 물 건너갔다. 나갈 때는 주로 에코백을 많이 든다. 이상하게 백팩은 싫다. 가끔은 어깨가 끊어질 것 같기도 하고, 가방이 가득 차 모양도 이상해지는데 말이다. 아직 마음에 드는 백팩을 못 찾아서일까?
요새는 다양한 브랜드에서 에코백을 출시하는 것 같다. 브랜드 굿즈로 자주 만들어지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크기 별로 여러 개 갖고 계시면 생각보다 유용한 상황이 많다. 잠시 외출할 때, 장을 볼 때, 여행 갈 때, 예쁜 소품으로 쓰고 싶을 때 등등. 나도 한두 개씩 모으다 보니 어느새 옷장 한켠이 가득 차버렸다. 그래도 무언가 좋아하는 아이템들로 가득 찬 공간을 보면 어김없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향을 설명하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달달한 편에 속하는 것 같다. 플로럴 계열인가 싶다가도 약간의 우디 향이 나기도 한다. 꽃으로 가득 둘러 쌓인 따뜻한 식물원에서 날 것 같은 향이다. 지미추 향수는 바틀이 오묘한 색이라 예쁜데 뚜껑은 참 못난 것 같다. 그래도 지속력은 꽤 좋은 편이라 들고 다닐 일이 없어 좋다.
단 하나의 향수만 뿌릴 수 있다면 이 향수를 선택하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향수이기 때문이다. 사게 된 계기도 독특하다. 올리브영에서 지미추를 시향하고 난 뒤 강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모르는 분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어떤 향수 쓰세요?"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그 사람의 향을 묻는다니. 얼마나 궁금하고 기억에 남았으면 그랬을까 하니 다시 뛰어가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향수라기엔 비싸지도 않고 흔하다. 그래도 아직 5년 동안 이 향수를 대체할 수 있는 걸 찾지 못한 걸 보면 영원히 함께할 친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이 향으로 남고 싶다. 꽃이 막 피는 것 같은 향. 처음으로 사 가장 많이 뿌린 향수이다 보니 향을 맡으면 떠오르는 기억들도 많다. 결국 오늘도 집어 들게 된다.
아라시야마는 교토 서쪽의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라시야마 산과 아타고 산이 만드는 협곡 사이를 지나는 강이 넓게 펼쳐지는 지역이다. 교토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곳이라 료칸과 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나는 그중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등장했던 대나무 숲인 치쿠린을 잊지 못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이곳이었으면 좋겠다. 푸르른 숲과 온통 초록색이었던 풍경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2018년 7월에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는데 굉장히 더운 날씨였음에도 대나무숲인 치쿠린만은 참 시원했다. 사실 대나무 숲을 처음 가본 건 아니었다. 담양 죽녹원, 섬진강 대나무숲 등 몇 군데 정도 가봤다. 그럼에도 치쿠린을 잊지 못하는 건 정말 예뻤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였던 풍경, 빽빽하게 솟은 대나무들 사이로 보였던 자그마한 하늘. 조금 더 시원할 때, 한 번 더 교토에 간다면 가장 먼저 가고 싶다.
치쿠린을 인생 여행지로 꼽을 줄은 몰랐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방콕 등도 다녀왔는데 여행지와 사랑에 빠지는 건 정말 찰나의 순간인 것 같다. 푸르른 대나무숲 사이로 작게 보이는 구름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다시 눈에 담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원두 맛을 구별하거나 커피 맛집을 찾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지만 맛있는 라떼를 마시면 꼭 그 집은 기억해두고 있다.
원래는 커피를 싫어했다. 아메리카노 특유의 쓴맛을 견딜 수가 없어서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입에 남는 씀씀한 느낌도 별로였다. 그럼에도 커피에 손을 대게 된 건 인턴 때였다. 말똥말똥해지려고 한두 번 카페인의 힘을 빌렸는데 생각보다 자주 찾게 됐다. 시험공부할 때도 안 마셨던 커피를 짧은 회사생활 동안 배웠다. 여전히 아메리카노는 싫어하지만 이젠 달달한 커피류는 즐길 수 있다.
종종 친구들은 아메리카노를 싫어하는 나를 두고 '아직 애기다'라고 하는데 쓴 커피보다는 단 커피로 세상을 배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바닐라 라떼 한 잔 사러 나가야겠다. 문득 메뉴가 고민되면 찾아주면 좋겠다.
언뜻 보면 그냥 낙서 같아 보이기도 하고, 막 그린 거 같기도 하다.
표현이 가벼워 보이나 가볍지만은 않다. 오히려 간단한 드로잉만으로 풀어낸 그림들은 너무나도 직관적이라 무엇을 표현하는지 알아보기 쉬웠다. 다른 수많은 예술 작품보다 그런 그림들이 나에겐 더 쉽게 와닿았다. 그래서 낙서 같은 그림들이 더 눈에 띄었다.
키스해링의 작품, 10 꼬르소꼬모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여러 카카오톡 이모티콘에서도, 얼마 전에 갔던 피크닉 '정원 만들기' 전시의 포스터에서도 그런 간단한 드로잉들이 더 눈에 띄었다.
언제부턴가 이런 디자인이 좋아졌다. 굳이 복잡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 가장 좋은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이 그림들은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인도 브랜드 HEM의 인센스 스틱이다. 인센스 스틱이라고 하면 낯설지만 향이라고 하면 익숙하다. 길이는 약 23cm 정도라 1개당 약 30분 정도를 피울 수 있다. 꼭 불을 붙여두지 않아도 박스 뚜껑만 열어두면 방 안 가득 은은하게 디퓨저처럼 사용할 수 있다. 환기하면서 사용하지 않으면 뇌 구석구석(?)까지 아파지니 그 점만 유의하시면 좋겠다.
인센스는 ‘불태우다, 밝게 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Incendere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알아보면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수천 년 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향을 피워 오염된 생활공간을 정화했다. 오늘날에도 종교의식과 질병 예방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을 위한 명상, 발향의 목적으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향을 피운다’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많은 브랜드에서 인센스 스틱을 출시하고 자주 볼 수 있게 되면서 달라진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랬다.
HEM 인센스 중에서는 ‘레몬그라스’와 ‘포레스트’를 가장 좋아한다. ‘참파’ 같이 무거운 향은 좀 버거웠다. 환기해도 머리 아플 때가 있어서다. 인센스 자체가 디퓨저보다는 강한 향을 뿜기 때문에 너무 무거운 향은 부담스러웠다. 은은하게 퍼지는 가벼운 향이 좋다. 레몬그라스는 이름 레몬 향과 풀 향이 6:4 정도의 비율로 난다. 인센스 치고도 상큼한 타입이라 가장 자주 손이 간다. 포레스트는 숲, 풀, 나무 향은 아니다. 갓 빨래한 옷에서 날 것 같은 보송보송한 냄새라 아이들 옷에서 맡아본 향 같다. 마음까지 청량해지는 향이라 독서할 때나 자기 전에 피우는 걸 좋아한다.
HEM 인센스 스틱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지인에게 받았다. 역시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는 없는 게 없다. 인센스하면 가장 유명한 나그참파 인센스는 올리브영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올리브영에 갔다가 인센스 스틱까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종류는 몇 가지 없지만 인센스 향이 궁금하다면 어디에나 있는 올리브영에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끔 인센스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받고 싶을 때는 홍대 해피히피도 자주 간다. 종류가 정말 많아 인센스에 입문하는 분부터 조금 더 새롭고 좋은 향을 찾는 분들도 만족하실 것 같다. 인도에서 건너온 인센스 홀더나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향' 자체를 좋아한다. 인센스도 좋고, 향수나 디퓨저도 좋다. 사 모으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향들은 떨어지기 전에 챙겨 두고 있다. 향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엄마가 아낌없이 부어 쓰는 섬유 유연제만으로도 불쾌한 향은 안 났.. 어느 순간 향수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브랜드에서 시향도 해보면서 좋아하는 향을 찾게 됐다. 그렇게 한두 개 구매해서 쓰다 보니 내 향이 됐다. 향으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일은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선명한 것 같다.
좋아하는 향은 우디, 시트러스 계열이다. 우디와 시트러스라니 상당히 다른 향이긴 하다. 워낙 숲과 나무를 좋아해서인지 우디 향은 어느 브랜드를 맡아도 다 좋았다. 내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고. 특히 자라의 에보니 우드를 애정한다. 시트러스는 주로 향수보다는 디퓨저나 인센스 같이 방을 환기하는 용으로 자주 쓰는 것 같다. 최애 시트러스 향은 비오템 오 비타미네 퍼퓸드! 바르거나 뿌리면 인간 레몬이 되는 느낌이라 가벼운 자리에 자주 애용한다.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이 있듯 향도 많이 맡아볼수록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 같다. 비 올 때는 ‘유칼립투스’, 괜히 우울할 때는 ‘화이트 세이지’, 생각이 많을 때는 ‘더 문’ 같이. ‘나는 이런 향이 좋고, 이런 향이 싫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아닐까. 좋아하는 향과 음악이 함께하는 밤은 조금 더 길 것 같은 느낌이다.
조만간 인센스 스틱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오려고 한다. 향 하나로 기분 전환도 되고, 취미 생활도 되니 꼭 좋아하는 향 하나쯤은 가져보면 좋겠다.
쿨한 청록색에 반해 데려왔는데 덕분에 화장대가 한결 깔끔해졌다. 가볍고, 접었다 펼치기도 편하다. 수납력에 더해 은은한 인테리어 효과도 줘서 좋았다. 여러 색을 구매해 층층이 쌓아서 가구처럼 써보고 싶은데 방에 더 이상 공간이 없다. 미니멀 리스트는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방을 뒤집어 청소하고, 정리하는 편이다. 유일하게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는 취미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쓸고 닦고 정리하다 보면 고민이 잠시 흐려지는 것 같다. 원래는 러닝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몸이 너무 힘들어서 자주 하진 못한다. 끄적이다 보니 나는 늘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인테리어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예쁜 소품들을 야금야금 모으다 보니 방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번 정리하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그나마 폴딩박스의 도움을 받아 나름 질서가 잡혔다. 여전히 취향 저격 소품들을 보면 홀리듯 결제부터 하니 곧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삶은 풍족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통장은 가난하고 엄마의 잔소리는 따갑지만.